인터뷰 조은희 서울 서초구청장

4년 전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서울 서초구청장 선거가 새누리당의 여성우선전략공천지역으로 지정되지 않았더라면 이번 선거에서 자유한국당은 서울에서 완패했을지도 모른다. 또 한국당은 여성 기초자치단체장을 한명도 배출하지 못했을 가능성도 있다. 서울 25명의 구청장 중에서 유일한 자유한국당 후보로 당선된 조은희 서초구청장은 4년 전 여성 공천 덕분에 선출직 공직자의 길을 걷게 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조 구청장이 이번 지방선거에서 당선된 후 가장 많이 들었던 인사가 “고맙다”는 말이었다. 세 글자 속엔 ‘보수의 씨앗을 남겨줘서’, ‘일 잘하는 구청장이 계속해서 서초를 이끌게 돼서’라는 의미가 담겨있다. 그렇지만 정당이나 지역에 상관없이 여성들도 한번쯤 조 구청장에게 고맙다는 한마디 건네봄직 하다. 가뜩이나 기울어진 선거구도 속에서 당당하게 재선에 성공하면서 여성 전략 공천은 배려가 아닌 정당한 권리의 회복임을 드러냈다. 즉, 여성 정치인이 적은 것은 정당에서 공천을 받지 못했기 때문임을 몸소 입증한 것이다.

지난 11일 서초구청에서 마주한 조 구청장은 새로운 보수의 상징으로 주목을 받는 것에 크게 부담스러워했다. “보수당 출신의 정체성을 가진 사랑받는 구청장일 뿐, 혼자 보수의 깃발을 들고 혼자서 뭘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은 해본 적 없다”고 잘라 말했다. 이하 일문일답.

새로운 임기에 임하는 각오가 남다를 것 같다.

서초에서 12년 만에 재선구청장으로 만들어 주시고, 서울시 25개 자치구 중에 홍일점으로 지지해 주신 구민 여러분께 진심으로 감사드린다. 서초에 사시는 분들이 잘 뽑았다 말씀하실 수 있도록 두 번째 4년도 주민의 마음 읽는 행정을 펼치겠다.

당선이 확정되는 순간 무서운 기쁨을 느꼈다. 나 혼자 됐다고 마냥 기뻐하기 어려운 상황인데다 앞으로 겪어야 할 일, 풀어나가야 할 문제, 역량을 발휘해야 할 것, 주민들로부터 받는 기대 등 어느 때보다도 책임이 따르는 만큼 두렵고 무거운 마음이 앞섰다. 꽃다발이 있었어도 목에 걸 수가 없는 상황이었다. 앞으로 더 낮고 겸손한 자세로 일하겠다.

서울 구청장 선거에서 보수 후보로는 유일하게 당선됐다. 국민이 원하는 보수는 과연 어떤 모습일까.

민심은 ‘내 삶에 보탬이 되는 행정’을 원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세월이 바뀌었다. 주민 한 사람 한 사람이 주인이 되는 시대가 왔다. 주민들로부터 위임받은 권한, 영향력을 주민들의 생활에 도움이 되게 써야 한다. 주민들은 영향력이 내 생활에 얼마나 도움을 주는냐, 내 마음과 나의 불편함을 어느 정도 이해하고 있느냐를 지켜보고 있는 것이다.

보수나 진보라는 이념을 떠나 개개인의 삶에 따뜻한 실익을 주는 ‘사랑하는’ 영향력, 사회의 문제를 해결하는 실력을 가진 ‘유능한’ 영향력이어야 한다. 사랑이 없는 유능함은 단절을 가져오고, 사랑만 있고 유능함이 없다면 혼란을 주기 때문이다.

비록 이번 선거에서 보수가 외면을 받았지만 새로운 출발점에 섰다고 본다. 사람이 먼저다 하는데 저는 생활이 먼저다. 보수당 출신 구청장으로서 주민의 삶에 도움이 되는 ‘생활보수’의 길을 가고 싶다.

주민들에게 휴대폰 번호를 공개해 소통하고 있는데, 기억에 남는 메시지를 소개해달라.

투표날 많은 분들이 문자나 카톡을 보내 주셨다. 그 중에서도 췌장암 4기로 투병 중인 어머니를 모시고 한 표 보태고 왔다는 메시지가 가장 뭉클하고 짠했다. 어머니가 그냥 있으려니 걱정돼 가슴 속에 췌장배액 주머니를 감추고 투표장을 다녀왔다며 사진을 보내주시면서 ‘끝까지 힘내라’고 격려도 해주셨다.

또 그동안 관심이 없었는데 이번만큼은 투표했다는 분, 정작 자신은 여당 지지자인데 구청장은 2번 찍었다는 분 등... 한 분 한 분의 문자마다 진솔한 속마음이 전해졌다.

역대 지방선거에서 여성이 광역단체장에 한명도 없고 기초단체장 226명 중에는 여성이 4년전 9명에서 오히려 8명으로 줄었다. 이같은 상황을 어떻게 보시는지.

초등학교 교장 선생님을 비롯해 검사·판사 임용에서 여성들이 휩쓸고 있는 현실과는 달리 정치에서만은 여성의 진입 장벽은 여전히 높다. 남성 중심적인 정치 문화가 만연해 있는 과정에서 여성 인재풀이 없다고만 할 게 아니라 여성 정치인을 키우기 위한 인센티브를 모색해야 한다.

제 경험으로 보면 서울시 여성가족정책관을 거쳐 서울시 최초 여성부시장(정무부시장)을 지내면서 구청장의 일이 굉장히 매력적으로 다가왔고 역량을 발휘해보고 싶었다. 그런데 공천을 어떻게 받느냐 경선을 하느냐 이럴 때 저는 가정주부였고 술도 못 마시고, 동창이나 학연, 지연 중심으로 만들어가는 정치 네트워크가 너무나 남성 중심적이다 보니 도전하기가 쉽지 않았다. 만약 4년 전 서초가 ‘여성 우선 전략공천 지역’이 아니었다면 저도 공천을 받기 어려웠을 것 같다.

비례대표 후보 공천처럼, 지역구 선거에서도 여성공천 30%를 의무조항으로 하는 쿼터제나 경쟁력 있는 여성후보를 당선가능지역에 전략 공천하는 시스템 등이 제도가 되면 여성 정치인의 길을 만드는 기본 토양이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기울어진 운동장을 균형있게 하여 언젠가는 쿼터제가 없어지는 날이 정치계의 진정한 양성평등이 온다고 본다.

아이키우기 좋은 서초구를 만들겠다고 공언하고 많은 정책을 추진하셨다. 지난 4년간 국공립어린이집을 두 배로 늘려 ‘국공립 어린이집 제조기’라는 별명도 얻었다.

저는 일하면서 아이를 키운 ‘워킹맘’이었고, 시댁과 친정이 지방에 있어 도움을 받기 어렵다 보니 요즘 말하는 ‘독박육아’의 서러움을 잘 안다. 그래서 서초구의 후배 엄마들에게는 ‘독박육아’ 경험을 물려주고 싶지 않았다.

취임해서 보니 서초구의 국공립어린이집은 32곳뿐이었다. 국공립어린이집은 어린 자녀를 둔 부모라면 누구라도 선호하는 시설이다. 검증받은 우수한 보육시설을 갖춰 믿고 맡길 수 있고 보육료도 저렴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서초구 보육수급률(어린이집 총 정원을 어린이집 보육이 필요한 영유아 수로 나눈 비율)은 57%로, 서울시 자치구 중 최하위였다. 어린이집 대기자가 국공립어린이집의 경우 많게는 2000여명에 육박했다. 민선 6기 ‘국공립어린이집 2배 확충’을 목표로 내세운 것 그 때문이다. 비싼 땅값과 임대료 등 여건이 어려웠지만, 2016년 ‘2018년 서초구 보육수급률을 75%로 끌어 올리는’ 내용을 뼈대로 한 ‘서초보육 마스터플랜’을 수립했다.

2014년 6월 32개소에 불과했던 국공립어린이집은 현재 72개소다. 1988년 서초구가 생긴 이래 30년간 1년에 한 곳 정도씩 만든 셈이라면, 구청장이 되고선 ‘1년에 10개씩’ 총 40곳을 늘렸다. ‘한 달에 한곳’ 꼴로 문을 연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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