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병진 사건에서 새롭게 터져나오는 말을 보면 원고는 아마도 성격이 즉흥적이고 말을 자유롭게 하는 사람인 것 같다. 아마 그 생활도 자유로웠을 것이다. 그런 여성이니 성폭행을 당하지 않았으리라고 생각할 수도 없다. 언제나 그렇지만 그녀도 성폭력 사건에서 다른 여성들처럼 숱한 사회적 편견에 부딪쳐 고통을 당했을 것이 뻔한 일이다.

“백지에 줄이 간 사람(주병진)과 이미 기스(흠집)가 많이 난 곳에 한 줄 더 금이 그어진 사람(상대 여성)은 다르다”는 개그우먼 이경실의 발언만 보아도 그렇다. 그런 인신공격성 발언을 같은 여성이고 공인인 사람이 당당히 말할 수 있는 사회현실이 원고에게 부당한 작용을 할 수도 있다.

매 재판마다 주병진과 가까운 연예인들이 재판장에 참관하고 주병진을 응원했다. 더구나 주병진은 필사의 노력으로 자신에게 씌워진 불명예를 씻으려 했다. 돈과 명성과 남성에게 유리한 사회문화, 그리고 그런 문화에서 자란 사람들로 구성된 재판부…. 이 여성의 유일한 증인인 친구들까지 무슨 이유인지 진술을 번복해 버렸다.

주병진은 자신이 제기한 항소심에서 무죄판결을 받았다. 어쩌면 이 여성이 주병진을 성폭행범으로 몰았을 수도 있다. 그러나 또한 아닐 수도 있다. 은밀한 공간에서 이루어지는 성폭력 사건의 진실은 아무도 모른다. 오직 정황증거나 진술증거의 채택결과에 의해 판결이 이루어진다. 증거와 증거의 채택유무의 결과인 것이다.

그동안 성폭력관련 재판이나 과정은 대부분 여성에게 일방적으로 불리하게 작용되어왔다. 수많은 성폭행 피해여성들이 여론의 난도질과 경찰 및 재판부의 남성중심적 사고에 의해 이중의 성폭행을 당해왔다.

한양대학교 사회학과 심영희 교수에 의하면 99년부터 올 6월까지 ‘여성의 전화’에 접수된 여성 성폭력 피해자들의 상담사례 150건 중 76건이 검찰 수사관들의 언어적 성폭력을 고발한 사례였단다. 성폭력 피해자들이 검찰 수사과정에서 수사관들의 편견, 피해내용에 대한 반복적 질문, 고압적 수사자세 등으로 또 한번의 성적 수치심을 겪고 심지어 “화대 받은 것 아니냐”, “좋아서 했지” 등의 말로 인해 고통을 받았다고 한다. 공정한 입장에서 인권을 지켜줘야 할 수사관까지 이러하니 하물며 다른 사람들은 어떠하겠는가? 그 다른 여성피해의 예는 <여성신문>을 검색하면 수두룩하게 나온다.

아무도 진실은 모른다. 예를 들자면 차에 따라 들어간 것만으로 화간이라 보는 시각을 가진 사람들이 삽입 당시, 혹은 진행 중에 거절한 여성의 의사에 반한 행위를 어찌 성폭행이라 보겠는가?

주병진은 승소했고 성폭행 혐의를 벗었다. 그러나 모범적인 공인으로 알려진 주병진이 자기보다 훨씬 나이 어린 여성을 자신의 차에서 태워 성을 배설한 사실은 남는다. 황수정과 주병진을 비교하자면 마약만 빼놓고 그 도덕성에서 황수정이 오히려 우월할지도 모른다. 적어도 그녀는 자신이 좋아하는 남성과 관계를 맺었으므로. 하지만 주병진은 성폭행 가해자란 혐의로부터는 자유로울 수 있어도 성 배설자라는 자신의 행위로부터는 그리 자유롭지 못할 것이다. 그는 신사도 모범청년도 아니고 여성의 몸을 단지 쾌락의 도구로 삼았던 남성인 것이다.

< 선덕 / 여성문화동인 ‘살류쥬’ 동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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