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큐멘터리 ‘파도 위의 여성들’ (Vessel) 포스터
다큐멘터리 ‘파도 위의 여성들’ (Vessel) 포스터

전 세계적으로 임신중절 합법화 운동의 상징은 옷걸이다. A와 그 얘기를 하다가 A가 한 말이 생각난다. “난 그걸로는 못 해봤다.... 좀 무섭다.” 한부모 시설에서 만난 A는 자가 임신중절 시술을 해 봤다고 내게 털어놓았다. A는 데이트 성폭력 피해자였다. 한 알에 5만원어치인 독한 약을 몇 주 동안 먹었다고 했다. 무슨 약인지, 어떤 효과를 언제 어떻게 불러오는지, 애초에 돈 값을 하는 약인지도 모른 채 먹었다고 말했다. 어쨌든 A의 자가 시술은 실패했다. 약의 부작용 탓이었는지는 모르겠으나 죽을 고비를 가까스로 넘겼다고 했다.

B에게도 비슷한 경험이 있었다. B의 남자친구는 ‘노콘 섹스(편집자주 : 콘돔을 착용하지 않고 하는 섹스)’ 판타지를 가진 대책 없는 남자였다. 월경 주기를 비껴간 시점을 잘 계산해서 성관계를 하면 콘돔이 없어도 문제없을 거라고 B를 설득했단다. 단 한 번의 섹스로 임신했을 때 B는 고작 대학생이었다. 약을 살 돈이 없었고 아르바이트를 늘려서 시술 비용을 모으는 데에 수개월이 소요됐다. 남자는 그 사이에 군대에 갔다. B가 겨우겨우 시술을 받을 수 있을 만큼의 돈을 모았을 무렵엔 이미 늦어 버렸다.

B와 A는 아이를 키우며 살고 있다. 요즘 A는 혼자 아이를 키우면서 살기가 힘들다고 “죽고 싶다, 아 살기 싫다”는 말을 입에 달고 지내지만, 아이와 끝까지 함께할 거라고 늘 강조한다. B는 긴 시간 우울증 치료를 받았지만 잘 극복해냈고 이제는 육아에 열심이다.

나는 A와 B가 죽지 않고 계속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에 감사하다. 동시에 그들이 겪었던 고통이 이 땅에서 되풀이되고 있다는 사실에 마음이 참담하다. 임신중절이 불법인 국가의 여성들은 전문가의 도움조차 없이 안전하지 않은 공간에서 불법 시술을 직접 시도하다가 과다출혈이나 쇼크 상태에 이르거나 죽어나간다. 옷걸이나 뾰족한 막대기로 임신중절을 시도하다가 사망한 여성들도 많다. 그런 방식으로 10분마다 한 명꼴로 여성들이 죽어가고 있다. 1년으로 치면 그 수는 4만 7000명에 이른다.

고통 받고 죽어가는 여성들을 도우려고 법의 바깥에서 활약해온 여성들이 있다. 네덜란드 산부인과 의사인 레베카 곰퍼츠가 대표로 시작한 프로젝트 ‘파도 위의 여성들(Women on Waves)’이다. 이들은 임신중절이 불법인 국가의 영해를 벗어나, 그 나라의 법이 적용되지 않는 국제수역으로 배를 타고 가서 시술을 한다. 창의적인 방식으로 임신중절을 합법적으로 할 수 있는 공간을 확보해낸다. 그것도 임신중절 시술에 대한 세간의 편견과는 거리가 있는 방식으로 말이다. 이들은 임신 주수 등 특정 조건만 충족한다면, 몸에 칼을 댄다거나 흡입술 등 복잡한 의료 처치를 거칠 필요 없이 WHO가 승인한 임신중절 유도약인 미페프리스톨과 미소프리스톨 복용만으로도 충분하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파도 위의 여성들’의 활동과 임신중절에 관한 여러 정보를 담은 동명의 다큐멘터리 영화(원제 Vessel)가 최근 한국에서 여러 번 상영됐다. 영화는 임신중절이 불법인 국가의 여성들에게도 ‘낳지 않을 권리’가 있음을 강조한다. 임신중절할 권리는 “몸을 함부로 굴린 년들”의 요구가 아니라, ‘내 몸은 내 것’이라는 당연한 명제를 믿는 모든 여성의 권리라고 이야기한다. ‘여성을 돕는 여성들’의 존재와 힘을 담았다는 것만으로도 아름다운 영화다. 곰퍼츠는 최근 한국의 ‘낙태죄 폐지’ 운동에 힘을 실어주고자 방한했고 직접 시위에 동참하기도 했다. 영화 중 한 기자가 곰퍼츠에게 임신중절 경험이 있는지를 묻는다. 곰퍼츠의 답이 오래 기억에 남을 것 같다. “당신은 국제사면위원회 활동가에게도 고문당한 적이 있느냐고 물어보나요? 저는 임신중절 경험 여부를 떠나서 여성들을 돕기 위해 나선 겁니다.”

이게 세계의 흐름이다. 그런데 한편에서는 ‘낙태죄’ 폐지를 요구하고, 기로에 선 여성들을 도우려는 여성들을 향해 ‘살인자’라며 비난하는 목소리도 여전히 들려온다. 태아의 생명 존중이나 저출산 위기를 논하면서, 왜 임신과 출산의 당사자인 ‘여성의 생명 존중’이나 임부나 아이를 기르는 여성이 매일 겪는 성차별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는가? 구태의연한 논의가 반복되는 동안 여성들은 국경을 넘어서, 파도를 넘어서 서로를 지키기 위해 싸우면서 한 발 한 발 나아가고 있다. 아일랜드에서, 아르헨티나에서 ‘낙태죄’가 폐지되는 모습을 지켜봤을 그분들께 묻는다. ‘네 이웃을 사랑하라’는 교회의 가르침은 왜 여성에게는 적용되지 않는가? 아이가 그렇게 소중하다면 왜 우리 아이들을 피도 눈물도 없는 경쟁과 소수자 혐오가 판치는 좁다란 세계로 밀어 넣는가?

저작권자 © 여성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