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가 공공기관 화장실에 비상용 생리대를 비치하는 정책을 검토 중이다. ⓒ민주주의 서울 홈페이지 캡처
서울시가 공공기관 화장실에 비상용 생리대를 비치하는 정책을 검토 중이다. ⓒ민주주의 서울 홈페이지 캡처

서울시, 누구나 필요하면 쓸 수 있게

공공기관 화장실에 생리대 비치 추진

“여성에게 생리대는 생필품...공공지원체계 마련”

온라인 투표결과 90% 이상 찬성

갑자기 월경이 시작됐을 때, 생리대가 급히 필요할 때, 화장실에서 생리대를 손쉽게 가져다 쓸 수 있다면 어떨까?

서울시가 공공기관 화장실에 비상용 생리대 비치를 추진한다. “생리대가 여성들에게 생필품이라는 사실에 주목해, 저소득층이라는 특정 대상 지원을 넘어 새로운 공공 생리대 지원체계를 마련”하겠다는 구상이다. “생리대는 인권의 문제이고, 긴급한 상황에서 생리대가 필요한 시민에겐 공공의 지원이 필요하다”는 게 취지다.

‘누구나’ 생리대를 가져다 쓸 수 있도록 공공기관 화장실에 비치하는 일은 아직 세계적으로 드문 시도다. 원미혜 서울시 여성가족정책실 늘푸른여성팀장은 “공공기관에서 먼저 법령 제·개정-예산 마련-시범 사업-사업 확산 모델을 만들어나가면 국내에서도 점차 (월경과 여성 인권 문제에 관한) 논의가 활발해지지 않을까 싶다”라며 “우선 올해 하반기에 시립 여성청소년 시설을 대상으로 시범사업을 진행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말했다.

시민들도 호응하고 있다. 서울시 홈페이지에서 지난달 19일부터 한 달간 투표가 진행 중인데, 7월 11일 오후 기준 ‘찬성’ 의견이 93%(1290표)로 압도적이다. 다음은 찬성 댓글의 일부다. “월경도 결국 ‘생리’ 현상입니다. 신체적으로 시민의 약 50%가 겪는 생리적으로, 그리고 그만큼 일상적으로 겪는 현상에 선택적 복지라는 잣대를 들이대야 할까요? (...) 휴지가 무료일 수 있다면, 생리대도 당연히 무료일 수 있습니다.” (전모 씨) “생리라는 게 시간 맞춰 정확하게 나오지 않습니다. 전혀 예상하지 못한 때에 생리를 하게 돼 당혹스러웠던 경험, 아마 생리를 하는 여성분들이라면 누구나 겪어보셨을 겁니다. 공공기관 화장실에 배치하는 비상용 생리대는 그때를 위한 최소한의 복지라고 생각합니다.”(윤모 씨)

 

서울시가 운영하는 ‘민주주의 서울’ 웹사이트에서 지난달 19일부터 공공기관 화장실에 비상용 생리대 비치 정책을 두고 한 달간 투표가 진행 중이다. 7월 11일 기준으로 찬성표가 압도적으로 많다. ⓒ‘민주주의 서울’ 웹사이트 캡처
서울시가 운영하는 ‘민주주의 서울’ 웹사이트에서 지난달 19일부터 공공기관 화장실에 비상용 생리대 비치 정책을 두고 한 달간 투표가 진행 중이다. 7월 11일 기준으로 찬성표가 압도적으로 많다. ⓒ‘민주주의 서울’ 웹사이트 캡처

지난 3·8 세계여성의날을 맞아 서울시 여성가족재단이 연 토크쇼에서도 “화장실 비누·물·휴지는 공짜로 사용할 수 있는데 생리대는 왜 안 되나. 무료 생리대 자판기를 설치해 달라”는 시민 제안이 나왔다. 이날 박원순 서울시장은 “뉴욕이 생리대 자판기를 만들었는데 서울이 왜 못하겠는가”라며 ‘생리대 자판기’ 정책을 검토하겠다고 말한 바 있다. 지난해 제주여성인권연대가 여성 283명을 대상으로 한 ‘생리대 정책 마련을 위한 설문조사’ 결과, 78.4%가 “생리대를 준비하지 못해 곤란한 경험을 한 적 있다”고 답했다. 91.5%는 “공중화장실에 생리대 자판기 설치가 필요하다”고 답했다.

전 세계적으로 생리대는 여성의 건강권·재생산권 등 기본권의 문제라는 인식이 높다. 한국에서도 ‘깔창 생리대’ 파동, 여성들의 생리대 시위, 일회용 생리대 유해물질 검출 파문 등이 이어지면서 제도적 지원이 필요하다는 요구가 확산되고 있다.

미국 뉴욕시는 2016년부터 800여개 공립 중·고등학교에 무료 탐폰 자판기를 설치했다. 지난 3월 뉴욕주의회에는 정부기관, 패스트푸드 음식점 등의 공중화장실에 생리대나 탐폰을 무료로 비치하는 법안이 상정됐다. 위스콘신주도 학교 등 모든 공공 건물 화장실에서 월경 용품을 무료로 제공하는 법안을 발의했다. 지난해 스코틀랜드도 학교와 대학에 무료 생리대 자판기를 설치하기 시작했다. 호주 시드니에서도 2016년 공공기관 생리대 무료 제공 법안이 발의됐다.

국내에서도 대학생들이 화장실에 무료 생리대함을 비치해 호응을 얻었다. 지난해 11월, 서울예대 광고학과 학생들은 영등포역 화장실에 노숙인 등을 위한 나눔 생리대함을 설치했다. ‘공짜 생리대이니 금방 없어질 것’이라는 우려와 달리 많은 시민들이 생리대를 기부하면서 반년이 지난 지금도 생리대함이 운영되고 있다. 한동대 사회복지학과 학생들도 지난해 학내 여자화장실 5곳에 저소득층 학우들을 위해 무료 생리대를 비치했다.

 

 

2017년 11월 서울예대 광고학과 학생들이 KTX 영등포역 화장실에 노숙인 등을 위한 나눔 생리대함을 설치했고, 시민의 호응을 얻어 반 년 넘도록 유지되고 있다. ⓒ서울시 제공
2017년 11월 서울예대 광고학과 학생들이 KTX 영등포역 화장실에 노숙인 등을 위한 나눔 생리대함을 설치했고, 시민의 호응을 얻어 반 년 넘도록 유지되고 있다. ⓒ서울시 제공

한편, “생리대 비치도 좋지만 일단 생리대를 ‘생필품’으로 가격을 낮춰 달라”는 의견도 있다. 한 시민은 서울시 홈페이지에 댓글을 남겨 “생리대 가격이 너무 비싸다. 의약외품에서 생필품으로 전환하면 판매가격이 떨어져 모든 여성에게 혜택이 있을 뿐 아니라, 무료 비치된 생리대를 양심 없이 가져가는 일도 줄어들 거라 생각한다”고 주장했다. 

서울시 측은 이번 생리대 비치 정책이 더욱 풍부한 논의로 이어지길 바란다고 밝혔다. 원 팀장은 “여성은 살면서 상당한 시간을 월경에 쓰는데 여성들의 월경 관련 문제는 너무나도 알려지지 않았다. 여성의 건강뿐 아니라 이동권, 학습권 등 일상생활과 연관된 문제다. 이런 문제가 자꾸 공론화돼야 그 필요가 더 알려지고 모델이 확산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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