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혼모는 ‘시민’이다①] '고립'에서 ‘공동체’로 가자
[미혼모는 ‘시민’이다①] '고립'에서 ‘공동체’로 가자
  • 김선미·진주원·이유진 여성신문 기자
  • 승인 2018.07.10 11:14
  • 수정 2018-07-27 12:4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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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혼모들이 아이들과 함께 제주시내의 한 카페에서 모임을 갖고 있다. ⓒ이유진 여성신문 기자
미혼모들이 아이들과 함께 제주시내의 한 카페에서 모임을 갖고 있다. ⓒ이유진 여성신문 기자

미혼모 정책 방향에 대한 고민

사회적 관계에서의 어려움 토로

자조모임은 사회적응의 중요한 발판

복지정책과 함께 인식개선 고민해야

우리는 시민으로 이 사회에 살면서 ‘시민됨’을, ‘시민의 권리’를 인정받고자 한다. 미혼모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우리사회의 미혼모들은 이웃 시민들과 어우러져 살고 있으면서도 ‘외딴 섬’에 사는 듯한 마음의 거리를 느낀다. 복지 제도와 정책은 어제보다 다소 나아졌을지 모르지만, ‘편견’과 ‘차별’의 대상으로서의 미혼모의 위치에는 큰 변화가 보이지 않는다. 아이를 낳아 기르는 일은 결혼을 했든 안했든, 배우자가 누구이든의 문제가 아니다. 그 자체로 존중받아야 할 일이다.

여성신문은 미혼모 당사자들을 만나 그들의 이야기를 직접 듣기로 했다. 맨 처음 ‘제주도’로 향했다. 육지와 떨어진 섬 제주에 사는 미혼모들의 목소리에는 일맥상통하는 것이 있었다. 우선 가족과 지인으로부터 도피하기 위해 제주를 찾은 미혼모도 있지만, 좁은 제주 사회에서 시선을 피하기 위해 육지로 떠난 미혼모들도 있었다. 외롭더라도 차라리 모르는 사람들 속에서 아이들을 키우는 편이 낫다고도 했다. 모두 살고 싶은 곳에서 살 자유를 누리는 것이 아닌 이웃의 시선과 연결되어 있다. 미혼모들에게도 자신의 삶과 아이에 대한 문제가 우리 사회 시민의 그것과 같을 수는 없는 걸까. 여성신문은 미혼모 관련 정부 정책과 각 지역에 거주하는 미혼모와 시설 등을 취재하며, 미혼모도 사회적 관계 속에서 ‘시민임’을 인정하고 인정받을 수 있는 방법들을 찾아보고자 한다.

“미혼모들에겐 특히 비빌 언덕이 필요하다.”

이번 기획 취재를 시작하며 만난 미혼모시설 A원장의 말이다. A원장은 출산 후 12년 만에야 미혼모라는 사실을 주변에 밝힌 미혼모 B씨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원래 밝고 적극적인 성격인 B씨는 미혼모시설에서 아이를 출산한 후 열심히 돈을 모으며 씩씩하게 생활했다. 그런데 아이가 초등학교에 진학할 무렵 고향으로 이사를 간 후로 성격이 변해갔다. 다른 학부형들에게 미혼모라는 사실이 알려질까봐 불안감에 시달렸고 해가 갈수록 심해졌다. 아이에게도 ‘아빠는 외국에서 돈벌고 있다’고 반복했던 거짓말도 이젠 고통스러워졌다. 미혼모시설 가까이 살던 당시와 달리 주변에 마음을 터놓을 사람도 없다는 것도 문제였다. 결국 수년 간 맘고생 끝에 어쩔 수 없이 ‘커밍아웃’을 택했다.

우리 사회의 미혼모 정책은 삶의 질이라는 측면에서 과연 제대로 방향을 잡고 있을까. 현재 미혼모가족 지원정책은 저소득한부모 가족 속에서 통합적으로 시행되고 있다. 미혼모 지원 정책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뉠 수 있다. 미혼모시설을 통한 산·전후 관리와 저소득 모자가정에 대한 지원이다. 여기에다 국가가 재앙으로 여기는 저출산 문제의 타개책 중 하나로 미혼모자가 주목을 받으면서 미혼모 복지 정책도 ‘한부모가족지원법’을 중심으로 한층 강화될 것으로 예상된다.

 

복지정책에 한정된 미혼모 정책은 통계청의 ‘국민 삶의 질’ 지표에 근거해 들여다보면 일부 영역에 머물러 있음을 알 수 있다. 통계청이 삶의 질을 측정하는 영역은 12개나 된다. 가장 기본적으로는 동심원의 가장 안쪽에는 ‘개인’이, 중간에는 ‘사회적 관계’, 그리고 맨 바깥쪽에 ‘환경적 조건’이 위치한다. 개인의 차원에서는 교육을 통해 지식과 일할 능력을 갖추고 있고 경제적 여유와 복지혜택을 누리며 건강한 삶을 영위할 수 있어야 한다. 사회적 관계에서는 시민참여, 가족·공동체, 문화·여가를 강화해야 한다. 환경적 조건으로는 안전하고 지속가능한 환경을 말한다.

취재 과정에서 만난 다수의 미혼모들은 B씨처럼 사회적 관계에서 어려움을 토로했다. 미혼모 C씨는 교육대학원을 졸업하고 임용시험에 합격했지만 교사 사회에서 적응하지 못할 것이라는 생각에 교직을 포기했다. 결국 미군부대 앞 음식점에서 청소직원으로 취업했다. 미국인 문화 속에서 일을 하면 차별받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미혼모 D씨는 우수한 성적으로 국립대학의 중어중문학과에 들어가 졸업했다. 그러나 미혼모라는 신분을 밝히면 취업이 잘 되지 않을 것이라는 부정적인 생각을 가지면서 애초에 취업 준비를 포기하고 카페에서 일을 하고 있다.

한국여성정책연구원이 2009년 전국 48개 기관 430명의 미혼모를 대상으로 벌인 실태조사 결과를 보면, 미혼모 10명 중 9명(89%)은 ‘우리 사회의 미혼모에 대한 편견과 차별이 심각하다’고 답했다. 이처럼 외부의 낙인으로 인해 배제되거나 또는 편견을 내재화하면서 가족과 사회 공동체 속에서 관계의 어려움을 느끼고 있고 그들과 분리되는 특수한 상황에 놓여있다. 가족은 개인에게 정서적·육체적 및 재정적 보살핌과 지원을 제공하는 근본적인 원천이며, 이웃과 친구공동체는 사회적 연계의 중요한 근원이 된다. 무엇보다 자존감에 중요한 영향을 미친다.

미혼모의 삶의 질을 높이기 위해서는 미혼모 정책을 통해 개인의 복지 강화와 함께 사회적 관계 영역이 병행돼야 한다. 그 첫 번째가 인식 개선이다. 궁극적으로는 미혼모들의 사례처럼 자신이 미혼모라는 사실을 공개하고도 차별받지 않고 사회 구성원으로 당당하게 살아갈 수 있어야 한다. 현재는 미혼모 입소시설이나 미혼모부자 거점기관에서 이들을 위한 프로그램을 제공하고 있지만 한계가 있다.

미혼모 당사자가 중심이 된 자조모임은 사회에 적응하고 함께 살아가기 위한 중요한 발판이 될 수 있다. 사회와 미혼모가 서로를 알아갈 수 있고 미혼모가 스스로 편견과 차별을 극복하는 중간 과정이다. 한국미혼모가족협회 김도경 대표는 “누구에게도 미혼모라고 속시원히 얘기할 수 없었던 당사자들이 모였고, 첫 몇 달 동안 당사자들끼리의 교류는 돈으로 값을 매길 수 없는 심리치료 효과가 있었다”고 말한다. 미혼모단체 인트리는 미혼모 뮤지컬을 제작했다. 미혼모들이 직접 대본을 쓰고 무대에 올라 연극을 하면서 사회로 나가는 용기를 얻었다는 소감이 주를 이룬다.

여성신문은 미혼모의 삶의 질을 높이기 위한 연재 기획을 시작한다. 다양한 환경에 놓인 미혼모 당사자들로부터 이야기를 듣고 미혼모 지원 시설과 지방자치단체의 현황을 파악해 미혼모 지원 정책의 개선점을 제시할 예정이다. 또 한국사회보다 입양률이 현저히 낮은 일본의 미혼모 관련 정책도 들여다보고자 한다. 특히 미혼모 당사자와 사회의 인식 개선 방안이 되는 미혼모 당사자의 자조모임 사례를 구체적으로 소개한다.

※본 기획물은 언론진흥재단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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