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면 끝나겠지’ 시작한 파업

13년째 복직 투쟁으로 이어져

 

서울역 앞마당에 처진 파란색 천막 앞에 ‘44일’이라는 종이가 나부끼고 있었다. KTX 여승무원들이 무기한 천막 농성을 시작한지 44일째라는 이야기다. 30도를 넘나드는 한낮의 더위에 천막 안 공기도 뜨거웠다. 작은 선풍기로는 끈끈한 습기와 무더위를 식히기에 턱없이 부족했다. 이런 곳에서 KTX 해고 여승무원 김영선(37)씨는 아침부터 오후까지 쉼없이 방송과 신문사 인터뷰에 응하고 있었다. “입에서 단내 날 정도로” 했던 이야기를 반복하고 있지만, 그는 거절하지 않고 또 다시 인터뷰에 응했다. 어떻게든 ‘우리 문제’를 더 많이 알려야 한다는 책임감 때문이다.

김씨도 함께 투쟁하는 동료들처럼 KTX가 첫 직장이었다. 2004년 당시는 ‘철도청’이 채용하는 줄만 알고 지원했다. 그는 “대학 졸업반 때 항공사 스튜어디스를 준비했었는데 항공사 공채가 진행되지 않아 KTX 승무원에 지원했다”고 했다. 당시 KTX 승무원 채용에 언론의 관심이 뜨거웠다. 면접 보던 날에는 뉴스에도 나왔고 신문에 난 사진을 보고 군대에 있는 동생이 전화 왔을 정도다. 김씨는 “부모님은 철도청 공무원이 된다며 좋아하셨고 주변에서도 축하 인사를 받으면서 자부심도 느꼈다”고 돌이켰다. 하지만 승무원 교육을 받으면서 승무원들은 철도청이 아닌 ‘홍익회’ 소속 기간제 근로자라는 이야기가 들리기 시작했다. 그는 “당시 교육을 담당하던 철도청 소속 교수들은 불안해하는 승무원들에게 철도청이 공사로 전환되면 정규직으로 전환되고 정년을 보장할 것이라고 이야기했다”고 말했다. 정부의 공무원 증원 억제정책으로 인해 철도청 인원을 늘릴 수 없기 때문에 한국철도공사(코레일)로 전환되면 정규직으로 전환해줄테니 유관단체인 홍익회에 있으라는 의미였다. 그러나 2005년 철도공사로 전환됐지만, 약속은 지켜지지 않았다. 철도공사는 오히려 승무원들을 홍익회에서 분리된 한국철도유통으로 전환했고, 계약된 2년이 지난 2006년에는 KTX관광레저라는 공사 자회사로 옮겨 가라고 했다. 이에 승무원들은 직접 고용을 요구하면서 2006년 3월 1일 파업에 돌입했다. 공사는 2006년 5월 여승무원 280여명 전원을 해고했다.

김씨는 파업을 하고, 복직투쟁을 하는 동안 “‘왜 우리는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라는 생각을 많이 했다”고 했다. “억울한 게 너무 많았던 것 같아요. 이게 왜 내가 이렇게까지 해야 되지? 당연한 건데. 이런 것 때문에 시작했던 것 같고요. 그러다보니까 한 달이 되고 100일이 되고 3년이 되고 벌써 13년이 넘은 것 같아요.”

그는 그동안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으로 지난 2008년 ‘철탑 투쟁’을 꼽았다. 2008년 8월 당시 승무원 2명이 서울역 앞 40m 조명탑에 올랐다. 3년 동안 이어진 파업에도 사태 해결의 기미가 보이지 않자 선택한 “마지막 전략”이었다. 2008년 8월 27일 당시 KTX열차승무지부장 오미선씨와 승무원이 오르기로 한 뒤 조합원들에게 고공농성 소식을 알리자 동료들은 한없이 눈물을 흘렸다고 했다.

김씨는 1심 소송 중에 웨딩플래너라는 새로운 직업을 가졌다. 손놓고 있을 수만은 없었다. 소송이 이기면서 결혼과 임신도 했다. 하지만 대법원에서 1·2심 판결을 뒤집으면서 다시 투쟁을 이어가야 했다. 그는 임신 8개월까지 1인 시위에 나섰고, 출산 후에도 100일 만에 시위 현장으로 복귀했다. 20~30대를 시위 현장에서 보내고 엄마가 된 그는 천막 농성장에서도 네 살난 딸의 어린이집 하원 시간이면 여기저기 도움을 요청하느라 발을 동동 구른다. 김씨는 “농성 현장에 나오면 아이 하원 시간에 아이를 데리러 가지 못하고, 회사에도 휴가를 내야 한다. 책임질 가족과 일이 생기면서 예전에 비해 투쟁이 쉽지는 않다”면서도 “하지만 여기서 멈출 수는 없다”고 했다. 최근 코레일 측이 언론보도를 통해 승무원들에게 다른 보직으로 특별채용하겠다고 밝혔지만, 실제로는 승무원들 측과는 어떠한 접촉이나 제안은 없었다고 했다. 그는 ‘KTX 승무원’으로 돌아가기 위해 13년을 싸워온 만큼 끝까지 ‘원직 복직’을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는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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