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왼쪽부터) 장수연 MBC 라디오 PD, 조남주 작가, 난다 작가가 지난 6일 서울 마포중앙도서관에 모여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마포중앙도서관 제공
(왼쪽부터) 장수연 MBC 라디오 PD, 조남주 작가, 난다 작가가 지난 6일 서울 마포중앙도서관에 모여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마포중앙도서관 제공

‘일상의 성평등’ 만들어가는 사람들 ⑦

페미니스트 작가 3인

조남주·장수연·난다 작가

6일 마포중앙도서관서 북토크

“육아·업무 줄다리기에 괴로운 여성들…

성차별적 사회 구조 고민하고 바꿀 때”

“일 잘한다는 얘기도 많이 들었는데, (아이를 낳고 나니까) 10원도 못 버는 사람이 돼 있더라고. 나는 아무것도 아니더라고.” (조남주 작가)

“남편은 아기를 능숙하게 돌봤다. 본인이 맡은 육아 시간엔 정말 성실했다. 그러나 내가 엄마가 되는 속도를 따라잡진 못했다. (...) 나는 트랙을 떠나지 못하고 있는데, 내게 바톤을 넘기고 혼자 지나가는 남편에게 화가 났다.” (난다 작가)

“엄마로 사는 건 왜 이렇게 힘들까요. 아이와 더 많은 시간을 함께하지도, 일에 충실하지도 못해서 괴롭죠. 아이는 아이대로, 할머니는 할머니대로 힘들고. 잘못한 사람이 아무도 없는데 모두가 불행할 때, 이건 내 잘못이 아니라 시스템의 문제라는 걸 깨닫게 되죠.” (장수연 작가)

지난 6일, 세 페미니스트 작가가 서울 마포구 마포중앙도서관에 모여 이야기를 나눴다. 베스트셀러 소설 『82년생 김지영』, 최근 새 소설 『그녀 이름은』을 펴낸 조남주 작가, 워킹맘의 고충을 담은 에세이집 『처음부터 엄마는 아니었어』를 펴낸 장수연 MBC 라디오 PD, 결혼·출산 이후의 일상을 담은 웹툰 『어쿠스틱 라이프』의 난다 작가다. 마포중앙도서관이 제23회 양성평등주간을 기념해 연 행사로, 관객 400여 명이 모였다.

 

(왼쪽부터) 장수연 MBC 라디오 PD, 조남주 작가, 난다 작가가 지난 6일 서울 마포중앙도서관에 모여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마포중앙도서관 제공
(왼쪽부터) 장수연 MBC 라디오 PD, 조남주 작가, 난다 작가가 지난 6일 서울 마포중앙도서관에 모여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마포중앙도서관 제공

세 작가는 엄마들이다. 딸아이를 사랑하지만 ‘엄마라면 ~해야 한다’는 고정관념은 거부하는, 자신의 욕구와 권리를 존중받길 원하는 여성들이다. 이들은 한국 사회에서 ‘엄마’이자 ‘여자’로 사는 일이 얼마나 고되고, 외롭고, 때론 황홀한지 이야기하고 맞장구쳤다.

“아이를 낳은 이후로 그 어느 때보다도 열심히 사는데도, 투입한 노력과 체력에 비해 만족스러운 결과물이 나오질 않았어요. 대체 왜 이렇게 힘든지 스스로 납득하기 위해 글쓰기를 시작했죠. 시어머니도 남편도 도와주는데 왜 이렇게 힘든지, 내가 육아 과정에서 어떤 상처를 받았는지 등을 복기하려고 썼어요.” (장 PD)

“저는 원래 싸움을 피하는 데 능숙한 사람이었지만, 아이 문제로 남편과 싸울 땐 참지 않았어요. 싸워서 남편이 육아를 분담하도록 설득했어요. (...) 애가 어릴 땐 울기만 해도 너무 예뻤는데, 이젠 화가 나는 거예요. 처음엔 당혹스러웠어요. 그렇게 사랑했던 아이를 왜 멀리서 바라보고 있을까? 그러나 아이가 점차 제게서 독립해 나간다는 증거라고 생각해요.” (난다 작가)

“딸을 키우면서 엄마 생각이 많이 났어요. 엄마가 이래서 그랬구나 싶기도 했고, 왜 그랬지 원망스럽기도 했죠. 딸과 함께 있을 때면 너무나 예쁘고 애틋해요. 이 시간이 지나가면 딸이 저랑 안 놀아줄 것 같아서요. 시간이 흘러 제 딸이 30대, 제가 60대일 때 우리가 서로를 이해하며 좋은 시간을 공유할 수 있을 거라는 희망을 갖고 살아요.” (조 작가)

 

(왼쪽부터) 장수연 MBC 라디오 PD, 조남주 작가, 난다 작가가 지난 6일 서울 마포중앙도서관에 모여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마포중앙도서관 제공
(왼쪽부터) 장수연 MBC 라디오 PD, 조남주 작가, 난다 작가가 지난 6일 서울 마포중앙도서관에 모여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마포중앙도서관 제공

돌봄 노동의 여성화, 직장 내 성차별, 성별임금격차 등에 관한 문제의식도 공유했다. “많은 이들이 간호와 같은 돌봄 노동은 ‘여성의 일’이라고 생각하잖아요. 그런데 돌봄 노동 환경은 열악한 경우가 많아요. 돌봄 노동에 종사하는 여성들부터 돌봄을 받아야 하지 않나 싶어요. 여성들이 일은 열심히 하는데 정치를 잘 못 한다는 생각도 많이 했어요.” (조 작가)

“남성 웹툰 작가들이 (임금 협상 테이블에서) 여성 작가들은 상상도 못 한 금액을 던지더라고요. ‘난 이거 아니면 안 한다’며 밀고 나가기도 헤요. 많은 남성들이 ‘이건 내 회사’라는 ‘사장’ 마인드로 협상에 임하는데, 그런 적극적인 태도가 협상할 때 무척 유리하게 작용하더라고요. 저도 최근 들어 ‘내가 작업을 이끄는 존재’라는 자세로 임했더니, 일에 대한 책임감도 생기고 훨씬 즐겁게 일하게 됐어요.” (난다 작가)

“제가 돈을 벌고 남편이 육아를 맡으면서 느낀 건데, 육아엔 분업이 없어요. 많은 아빠들이 돈 벌어오는 걸 육아의 일부라고 생각하는데, 그건 그냥 회사에서 시간을 보낸 거죠. 아빠들은 육아휴직을 해야 해요. 육아휴직 해도 안 잘리는 회사에 다니는데도 하지 않는다면 직무유기죠. (...) 여성 PD들은 임신·출산하면 최소 3~6개월간 육아휴직을 쓰는 반면 남성 PD들은 거의 안 써요. 육아는 남녀가 함께할 일이라는 인식이 생기지 않는 이상, 직장과 사회 내 성차별은 바뀌지 않을 거예요. 여성들에게만 직장 내 어린이집 우선 지원권을 주고, 출산휴가·육아휴직 사용을 보장하는 것도 결국 여성에게 육아 부담을 지우는 일이죠.” (장 PD)

‘일하는 엄마’가 되면서, 세 작가는 자연스레 페미니스트가 됐다. 사회의 기준에 자신을 맞추려 갈팡질팡하기보다 자신만의 길을 가겠다는 다짐도 나눴다.

“페미니즘을 알고 난 후 제 인생을 통째로 복기해봤어요. (...) 다른 엄마들이 육아 문제로 힘들다고 얘기하는 걸 보며 ‘자기가 선택한 일인데 불평이 많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제 육아 고민도 친구들에게 말하지 못했죠. 이제 많은 엄마들이 자신들의 이야기를 나누고 연대하면서 조금씩 입을 열 용기가 생긴 것 같아요.” (난다 작가)

“한국 사회에서 『82년생 김지영』은 하나의 상징이 돼버렸어요. 그 무게가 편하진 않아요. 이 다음엔 어떤 이야기를 써야 (사회에) 더 효과적이고 건강한 영향을 미칠 수 있을까 계속 고민 중입니다. (...) 요즘은 페미니스트라는 이유로 숨만 쉬어도 욕을 먹죠. 그렇다면 페미니스트 해야겠다, 라고 생각해요.” (조 작가)

“최근 라디오 프로그램에서 인터뷰 중 ‘임신 후 좋아하던 술·담배를 참는 게 너무 힘들었다’라고 말하자, 온라인 청취자 게시판에 ‘정신이 있느냐’며 비난하는 글들이 올라왔어요. 엄마가 자신의 욕망을 이야기하는 게 불편한 거죠. 한국에서 엄마로 살아간다는 것에 대해서 더 자주, 열심히 이야기하려고 해요. 직장에서는 애교 부리지 않는 선배가 되고 싶어요. 대신 담백하게 ‘No’라고 말하는 용기를 내고 싶어요.” (장 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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