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재의 위헌 여부 판단 앞두고

광화문광장에 여성 5000여명 집결

멕시코·아르헨티나서도 연대

300m 행렬 안국동까지 행진

 

7일 오후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낙태죄 위헌·폐지 촉구 퍼레이드’ 집회에서 참가자들이 “낙태죄를 폐지하라”고 외치고 있다.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7일 오후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낙태죄 위헌·폐지 촉구 퍼레이드’ 집회에서 참가자들이 “낙태죄를 폐지하라”고 외치고 있다.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검은 옷’과 ‘빨간 옷’을 입은 여성 5000여명(주최 측 추산, 경찰 추산 1500여명)이 7일 오후 서울 종로구 광화문광장에서 일제히 ‘낙태죄 폐지’를 외쳤다. 이들은 현재 낙태죄(형법 제269조 제1항, 형법 제270조 제1항) 위헌 여부를 심리 중인 헌법재판소를 향해 낙태죄 위헌 판결을 촉구했다.

건강과대안, 한국성폭력상담소 등 16개 단체로 구성된 ‘모두를 위한 낙태죄폐지 공동행동’(이하 모낙폐)과 한국미혼모가족협회 등 55개 단체는 이날 오후 5시부터 낙태죄 위헌 판결과 낙태죄 폐지를 요구하는 집회 ‘낙태죄, 여기서 끝내자’를 개최했다. 이날 시위에는 지난 2016년 10월 15일 낙태죄 폐지를 촉구하는 ‘한국판 검은 시위’가 열린 이후 최대 규모 인파가 모였다.

 

7일 오후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낙태죄 위헌·폐지 촉구 퍼레이드’ 집회에서 참가자들이 “낙태죄를 폐지하라”고 쓰인 손팻말을 들어 보이고 있다.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7일 오후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낙태죄 위헌·폐지 촉구 퍼레이드’ 집회에서 참가자들이 “낙태죄를 폐지하라”고 쓰인 손팻말을 들어 보이고 있다.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광장에 모인 여성들은 “낙태는 여성의 권리다”, “여성의 몸에 대한 국가통제 반대한다”, “여성은 출산정책의 도구가 아니다” 등 손팻말을 들고 목소리를 높였다. “덮어놓고 낳다 보면 나는 인생폭망해. 덮어놓고 낳다 보면 나는 경력단절녀. 몸 상하는 것도 비난받는 것도 모두 나. 나도 사람이란다. 낙태죄를 폐지하라. 곧 승리하리라.” 찬송가 ‘마귀들과 싸울지라’를 개사한 낙태죄 폐지송도 광장에 울려 퍼졌다.

이날 집회에는 20~30대 여성들이 많았지만 중년여성과 남성들, 성소수자, 아이들의 손을 잡고 나온 가족도 상당수 눈에 띄었다. 다양한 여성들은 연단에 올라 낙태죄 폐지를 촉구하는 발언을 이어갔다. 자신을 천주교 신자라고 밝힌 베로니카씨는 “국민의 88% 이상이 가톨릭교인 아일랜드에서 낙태죄가 폐지됐고, 대표적인 가톨릭국가인 아르헨티나에서도 최근 14주 내 임신중절을 허용하는 법안이 통과됐다”며 “여성의 낙태로 가장 큰 고통을 받는 사람은 하느님도, 신부님도, 수녀님도 아니라 여성 그 자신이다. 교회는 여성의 생명을 위협하는 낙태죄 문제에 등 돌려선 안된다”고 말했다.

낙태를 경험한 가온누리씨는 “학교에서는 ‘출산 후 100일은 임신에서 안전하다’, ‘월경 후 1주일은 임신에서 안전하다’고 가르쳤지만, 그 가르침은 제 몸과 전혀 맞지 않는 엉터리 지식이었다”면서 “학교와 국가의 잘못된 성교육을 믿었다가 낙태를 해야 했던 제게 벌을 줄 수 있냐”고 반문했다.

 

‘낙태죄 위헌·폐지 촉구 퍼레이드’에 참가한 시민들이 7일 오후 서울 종로구 안국역 인근을 행진하고 있다.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낙태죄 위헌·폐지 촉구 퍼레이드’에 참가한 시민들이 7일 오후 서울 종로구 안국역 인근을 행진하고 있다.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하정 청소년인권행동 아수나로 활동가도 “피임을 구체적으로 교육하지 않고 피임에 책임을 묻는 국가, 임신을 했을 때 출산 과정과 출산 이후의 삶에 대해 제대로 교육하지 않는 국가, 출산 이후의 삶을 지켜주지 않는 국가에서 낙태를 막는 것은 여성이 삶을 주체적으로 선택할 권리를 박탈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진유선 장애여성공감 활동가는 “국가가 지금까지 시민으로 상상되지 않는 이들을 차별하고 배제하는 방식을 취해왔다면 보편과 정상을 의심하며 정상성이라는 견고한 기준에 균열을 나는 싸움을 함께 하자”면서 “낙태죄를 폐지하고 차별금지법을 제정하자”고 외쳤다.

산부인과 전문이의자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 여성위원장인 윤정원씨는 “낙태죄 폐지 요구는 선택의 기로에 선 여성에게 적절한 정보와 의료적 지원, 시민으로 존엄한 삶을 살아갈 인권을 주는 것에 대한 문제”라며 “최근 보건의료인 1000여명도 낙태죄 폐지를 요구하며 헌재에 성명을 냈다”고 말했다.

 

‘낙태죄 위헌·폐지 촉구 퍼레이드’에 참가한 시민들이 7일 오후 서울 종로구 안국역 인근을 행진하고 있다.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낙태죄 위헌·폐지 촉구 퍼레이드’에 참가한 시민들이 7일 오후 서울 종로구 안국역 인근을 행진하고 있다.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이날 집회에 참석한 이들은 오후 6시20분 무렵부터 헌재가 있는 안국동으로 퍼레이드를 시작했다. 1개 차선을 꽉 채운 행렬은 300m까지 이어졌다. 20분 가량 행진한 뒤 안국역 교차로에 도착한 행렬은 헌재를 향해 “여성도 사람이다, 기본권을 보장하라”, “독박처벌 독박책임 낙태죄가 웬말이냐!” “국가는 재생산권 침해말고 보장하라!!”, “위헌, 위헌, 위헌” 등 구호를 외쳤다. 이날 행렬은 헌재 앞 시위는 허가를 받지 못아 행진 안국역 교차로에서 발길을 돌려야 했다. 이들은 인사동길을 거쳐 다시 광화문광장까지 30여분간 행진을 이어갔다.

한편, 헌재에서는 낙태한 여성과 시술한 의사를 처벌하도록 규정한 형법 269조1항과 270조1항, 이른바 ‘낙태죄’에 대한 위헌소송이 진행 중이다. 현재 형법 제269조 제1항(자기낙태죄)은 ‘부녀가 약물 기타 방법으로 낙태한 때에는 1년 이하의 징역 또는 200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형법 제270조 제1항(동의낙태죄)은 ‘의사 등이 부녀의 촉탁 또는 승낙을 받아 낙태하게 한 때에는 2년 이하의 징역에 처한다’고 정하고 있다. 앞서 2012년에 헌재는 ‘낙태죄’ 조항에 대해 4대4로 ‘합헌’ 결정을 내린 바 있다.

 

‘낙태죄 위헌·폐지 촉구 퍼레이드’에 참가한 시민들이 7일 오후 서울 종로구 안국역 인근을 행진하고 있다.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낙태죄 위헌·폐지 촉구 퍼레이드’에 참가한 시민들이 7일 오후 서울 종로구 안국역 인근을 행진하고 있다.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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