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전쟁을 피해 평화를 찾으러 이곳에 왔다. 낯선 우리를 경계하고 두려워하는 것을 이해한다. 하지만 우리에게 조금의 시간과 기회를 줬으면 한다.”

예멘 난민 패트리(가명)는 지난 4월 혼자 제주에 발을 디뎠다. 제주에 오기 전 말레이시아에서 6개월간 거주했다. 예멘에서 오만까지 버스를, 말레이시아에서 제주까진 비행기를 탔다. 난민협약 가입국이 아닌 말레이시아는 난민 수용 기준이 없고 취업도 허용하지 않는다. 그는 “아직 여동생이 말레이시아에 남아 있어 걱정된다”고 말했다.

패트리에게 제주는 평화의 땅이었다. 매일 같이 폭탄이 떨어지는 예멘과 달리 제주는 조용하고 안전했다. 하지만 초기 정착에 어려움이 따랐다. 제주는 말레이시아보다도 물가가 훨씬 비쌌다. 지난 몇 개월간 게스트하우스를 전전했고, 모아둔 돈도 바닥난 상태였다. 그런 그에게 사회복지법인 청수 임애덕 원장이 도움의 손길을 내밀었다. 임 원장이 거주지 문제를 해결해준 것.

임 원장은 미혼모 보호시설인 애서원 근처 국제학교의 한 선생님으로부터 제주 예멘 난민에 대한 소식을 들었다. 예멘 난민을 도움으로써 생길 수 있는 문제들을 고려하지 않은 건 아니지만, 제주 4·3 사건 때 동굴 속에서 숨어 살며 갖은 고초를 겪은 아버지의 “한국이 못 살던 때를 잊지 말아야 한다”는 말씀을 되새겼다. 그가 제주 예멘 난민 중 혼자 있는 여성을 돕기로 결정한 이유다.

전쟁 전 패트리는 옷집과 화장품 가게 등에서 판매사원으로 일했다. “7년 전 일자리를 잃었다. 예멘의 모든 상점이 문을 닫았다. 일하는 사람은 공무원밖에 없다. 정부에 돈이 없어 이들은 봉급도 받지 못한다. 폭탄 굉음과 유리창 깨지는 소리가 아직도 생생하다. 아마 한국 사람들은 상상도 못 할 것이다.” 패트리가 실제로 사람들이 모여 사는 주택지 바로 옆에서 폭탄이 떨어지는 영상을 보여줬다. 영화에서나 볼 법한 장면이 패트리에겐 일상이었다고 했다.

현재 그의 가족은 전 세계에 흩어져 살고 있다. 부모님은 패트리가 어렸을 때 이혼했다. 엄마는 미국에서 새 가정을 꾸렸고, 아빠는 독일에 있다. 여동생 한 명은 말레이시아에, 또 다른 한 명은 네덜란드에 거주한다. 유일하게 그의 오빠만 예멘에 남아 있을 뿐이다. 오빠에겐 챙겨야 할 초등학생 아들 둘과 어린 딸이 있다. 패트리도 예멘에서 결혼한 지 1년 반 만에 이혼했다. 남편과 함께 살 집도 생계를 꾸려나갈 자금도 없었다.

최근 제주에는 500명에 가까운 예멘인의 난민심사가 진행되고 있다. 도 차원에서는 난민신청자에 대한 취업 알선, 숙소 및 의료 지원 등 인도적인 차원에서 할 수 있는 사항을 지원한다는 계획이지만, 난민 지원에 대한 찬반 의견은 여전히 극렬하게 갈린다. 예멘인에 대한 한국인의 인식이 좋지만은 않다는 사실을 패트리뿐만 아니라 패트리의 친구들도 잘 알고 있다.

무엇보다 그는 자신의 삶을 송두리째 바꿔 놓은 이 전쟁이 하루빨리 끝나기만을 바라고 있다. “오빠는 위험하니까 다시 예멘에 오지 말라고 하지만, 전쟁만 끝난다면 다시 예멘에 갈 것이다. 나의 이전 삶과 가족이 아직 그곳에 있다. 나뿐만 아니라 이곳에서 만난 예멘 친구들도 똑같은 생각이다. 한국인들이 우리를 낯설고 어려워하는 것을 알지만, 우리는 그들을 위협하는 무서운 존재나 범죄자가 아니다. 우리를 똑같은 사람으로 봐 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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