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26일 경남 함양고등학교에서 인문학교실 ‘성과 인권’ 페미니즘 특강이 열렸다. 학교 측이 전북 남원의 여성주의 문화단체 ‘문화기획달’에 의뢰해 진행했다. 이날 강연을 시작으로 두 차례 더 진행될 예정이었으나 갑자기 취소됐다. ⓒ함양고등학교
5월 26일 경남 함양고등학교에서 인문학교실 ‘성과 인권’ 페미니즘 특강이 열렸다. 학교 측이 전북 남원의 여성주의 문화단체 ‘문화기획달’에 의뢰해 진행했다. 이날 강연을 시작으로 두 차례 더 진행될 예정이었으나 갑자기 취소됐다. ⓒ함양고등학교

함양고 내 미투 이어 페미니즘 ‘백래시’

지역 여성·시민단체 비상대책위 꾸려

최근 ‘스쿨 미투’ 운동이 일어난 경남 함양고등학교에서 학내 페미니즘 교육 일정이 갑자기 취소됐다. ‘페미니즘 교육이 미투 운동 등 학내 갈등을 조장했다’는 일부의 주장을 학교 측이 받아들인 것이다. 지역 여성·시민단체들은 이를 비판하며 학내 성차별 실태조사와 성평등 확산 대책을 요구하고 있다. 교육청이 전수조사에 나섰지만 책임자 처벌·징계가 어렵다고 할 뿐 구체적 대책은 발표하지 않아 사태는 길어질 전망이다.  

“스쿨미투 운동 = 학내갈등 원인 = 페미니즘 교육”

주장 받아들여 페미니즘 강연 취소한 함양고

발단은 지난 5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함양고에선 학생 간부 대상 성교육과 인문학교실 ‘성과 인권’ 페미니즘 특강이 열렸다. 학교 측이 전북 남원의 여성주의 문화단체 ‘문화기획달’에 의뢰해 진행한 교육이다.

며칠 뒤 함양고 여자 화장실에 페미니즘 문구가 적힌 포스트잇이 게시되기 시작했다. 일부 남학생들은 이 소식을 듣고 불만을 표했고, SNS와 학교에서 페미니즘 관련 발언을 한 여학생들을 향해 “쿵쾅이” “메갈반” “이야기해봐, 씨X” 등 조롱과 욕설도 했다. 학교는 이 남학생들이 공개 사과하도록 중재했으나, 이후에도 일부 남학생들은 언어폭력을 멈추지 않았다고 한다.

6월 중순부터 ‘스쿨 미투’ 운동이 본격적으로 벌어졌다. 함양고 여학생들은 교사들이 교단에서 한 성차별·성희롱 발언을 폭로했다. “여학생은 출산을 많이 하는 게 좋다” “(미투 운동을 두고) 이슬람보다는 여권이 나으니 괜찮다” “우리 반에는 여자애들이 없어서 나는 축복받았다” 등이었다. 학생들은 해당 교사들의 공개 사과와 재발 방지를 요구했다. 학생회도 동참했다. 학교 측은 거명된 교사의 공개 사과와 재발 방지 대책을 약속했다.

이후 학교는 갑작스레 페미니즘 특강을 취소했다. “미투 운동으로 학내 갈등이 심해졌고, 성교육과 페미니즘 특강이 그 원인”이라는 주장에 일리가 있다고 본 것이다. 학교 측은 이러한 내용의 공문을 특강을 진행한 문화기획달 앞으로 보냈다. “(페미니즘 포스트잇을 계기로 벌어진) 교내 언어폭력 사태가 과열돼 교사와 학생이 홍역을 치르고 있다. 해당 강연을 계속할 수 없어 취소했고 재추진도 장담할 수 없다”는 내용이었다. 

 

 

함양고등학교에서 문화기획달 앞으로 보낸 공문 ⓒ문화기획달 제공
함양고등학교에서 문화기획달 앞으로 보낸 공문 ⓒ문화기획달 제공

지역 여성·청소년·시민단체 비대위 결성

“페미니즘, 학내갈등 원인 아닌 학교 성차별 해결 열쇠”

문화기획달은 이를 “페미니즘 보이콧과 백래시 사태”로 판단했다. 6월 22일 경남도교육청에 사건 조사와 실질적 대책 마련을 요구하는 민원을 제기했고, 지역 내 여성·청소년·시민단체들과 ‘함양고 학내 미투를 위한 비상대책위원회’를 결성했다.

비대위는 6월 26일과 29일 두 차례 성명을 내고 “페미니즘 교육은 학내 갈등의 원인이 아니라 성차별과 여성혐오 문화가 고착된 학교의 문제를 해결하는 열쇠”라고 지적했다. 이들은 “함양고가 학내 갈등 종결을 선언하고 2차 피해를 방치함으로써 페미니즘 교육을 지지하는 교사와 여학생들이 적극적인 의사표현을 하기 힘든 분위기를 조성하고, 페미니즘을 겨냥한 학교폭력을 방관하고 인문학교실 담당교사에게 본 사안의 책임을 전가했다”고 주장했다. 또 함양고와 경남도교육청에 △학내 여성혐오 문화와 성차별 문제 진상규명 △본 사건 관련자와 책임자 처벌·징계 △성평등 정착과 성폭력 예방교육 지속적 실시를 요구했다.

경남도교육청 전수조사 결과

“성차별 발언 있었지만 현행법상 처벌·징계 어렵

대화 통해 풀어나가자”

경남도교육청은 6월 28일 함양고를 찾아 전수조사를 했고, 실제로 교사들이 성차별 발언을 했다고 결론 내렸다. 하지만 책임자 처벌·징계 등 조처는 없다. 교사가 성희롱·성폭력을 저지른 게 아니라 성차별 발언을 했다는 이유로는 현행법상 처벌이나 인사상의 불이익을 내릴 수 없다고 했다.

강형천 경남도교육청 학교폭력담당 장학사는 “교사들이 여성 차별 발언도 했지만, ‘(단체 야외활동 중) 여자들은 깨끗한 방을 쓰고 남자들은 아무 데서나 자도 된다’ 등 남성 차별 발언도 했다. (문화기획달) 강의가 남성 차별적이었다는 의견도 있다. 일부 학부모들은 ‘외부에서 개입해 분란을 일으키지 말라’며 반발하기도 했다”라고 말했다. 최인용 학교폭력담당장학관도 “이야기를 들어보니 단체와 학교 구성원 간 오해가 있는 듯하다”며 “일단 학생들과 단체 모두 요구한 대로 성평등 교육을 강화하도록 할 것”이라고 말했다.

대신 “각 주체들이 모여 대화를 통해 해결”하는 방안을 제안했다. 경남도교육청은 곧 학교 관계자, 함양고 학내 미투를 위한 비상대책위원회, 학부모 등 간담회를 열 계획이다. 

한편, 올해 초부터 마산, 창원 등 경남 지역 곳곳에서 ‘스쿨미투’ 운동이 이어지고 있다. 경남도교육청은 지난달 초 ▲장학관, 장학사, 변호사, ‘성 사안 처리 전문가’로 구성된 ‘성폭력전담팀’을 조직하고 ▲온라인 성폭력 피해 신고센터를 익명으로 이용할 수 있게 전환하고 ▲7월 5일부터 한 달간 학교장 등 학교 고위관리자 대상 성인지 감수성 향상·성 비위 예방교육을 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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