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에서 낙태 자유화가 이뤄지기 얼마 전인 1974년 12월 보건장관 시몬 베이유가 의회에서 낙태 합법화를 역설하고 있다. ⓒ뉴시스 ·여성신문
프랑스에서 낙태 자유화가 이뤄지기 얼마 전인 1974년 12월 보건장관 시몬 베이유가 의회에서 낙태 합법화를 역설하고 있다. ⓒ뉴시스 ·여성신문

1970년대 프랑스의 낙태 합법화를 주도하며 여성 인권의 상징이 된 여성 정치인 시몬 베이유의 유해가 팡테옹으로 이장됐다. 지난해 6월 30일 향년 89세로 세상을 떠난지 1년 만이다.

팡테옹은 프랑스를 대표하는 위인들이 묻힌 곳으로, 18세기 계몽주의 작가 볼테르, 빅토르 위고, 에밀 졸라, 알렉상드르 뒤마, 마리 퀴리와 피에르 퀴리 부부, 앙드레 말로, 장 모네, 와 장 자크 루소 등 총 75명이 안장돼 있다. 이중 여성은 마리 퀴리 등 단 4명에 불과하다.

베이유의 팡테옹 안장이 뒤늦게 이뤄진 계기는 국민들의 청원 때문이다. 지난해 6월 베이유 전 의장이 향년 89세로 숨을 거두자 수천 명의 국민들이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에게 그를 프랑스의 유명 위인들과 함께 모셔달라는 서명운동을 전개한 결과다.

1일 팡테온 안장식에는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이 참석해 추모 연설을 하기도 했다.

시몬 베이유는 20세기 프랑스를 대표한 여성 정치사상가 겸 정치인이면서 홀로코스트 생존자이기도 하다. 지난 1944년 열여섯 살 때 아우구슈비츠로 보내져 어머니와 아버지 형제를 잃었고 그는 두 자매와 함께 살아남았다.

이후 치안 판사를 거쳐 정계에 입문해 여성의 인권과 유럽의 화해를 위한 운동에 나섰고, 보건장관으로 5년간 재임하면서 1975년 프랑스의 낙태 합법화 입법에 견인차 역할을 했다. 그는 반대 여론에 대해 “어떤 여성도 낙태를 가볍게 받아들이지 않는다”며 끈질기게 설득했다.

또한 1979년에는 유럽 의회 첫 의장으로 선출돼 3년 간 의장직을 수행하기도 했다. 많은 프랑스 국민들은 도덕적 문제에 대한 그의 확고한 태도를 통해 그녀를 ‘대중 속 성인’(secular saint)라고 여겼다.

계속된 여론 조사 결과에서도 그는 프랑스에서 가장 인기있고 신뢰할 수 있는 인물 중 한 명으로 손꼽히기도 했다. 프랑스는 지난달 그를 기리기 위해 파리의 한 지하철 역 명칭을 ‘유럽-시몬 베이유’로 변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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