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라인 여성소비자 운동 

약 15명 메신저로 소통하며 활동  

노동의 주체는 소비의 주체 

‘꾸밈노동’ 등 여성억압비용 비판” 

 

여성 소비자들이 기업의 성차별적인 관행을 비판하고 주체적인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여성 인구의 중요성을 알리고, 성차별 철폐를 촉구하기 위해 매월 첫 일요일마다 소비를 일시적으로 중단하는 ‘여성소비총파업’(이하 소비총파업)에 나선 것.

지난 1일 첫 발을 뗀 여성소비총파업은 그동안 일부 기업에서 내놓은 여성혐오적인 남성용품보다 더 비싸게 책정되는 여성용품의 가격 등을 지적했다. 같은 서비스를 받더라도 여성이 값을 더 지불하는 ‘핑크택스’(Pink Tax)에 대해 비판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이번 소비총파업은 그동안 주로 오프라인에서 이뤄진 소비자 운동과 전혀 다른 방식으로 전개됐다는 점에서 특별하다. 이전의 여성소비자운동은 주로 시위, 불매의사 표출과 같은 단발성 내용이 주를 이뤘다. 소비자들은 성차별적인 콘텐츠 혹은 제품을 생산한 기업의 잘못을 규탄하고 불매운동을 벌이겠다는 엄포를 놓았지만, 효과는 미비했다. 하지만 이번 여성소비총파업은 조금 더 거시적이고 지속적인 관점에서 진행되고 있다는 점에서 의의를 찾을 수 있다.

발단은 한 온라인 사이트에서 제기된 아이디어로부터 비롯됐다. “하루라도 아무런 금전적 소비를 안 하는 방식으로 기존의 ‘일자리총파업’ 대신 ‘소비총파업’을 해보자. 이런 방식으로 여성이 기업 운영과 나라에 얼마나 치명타인지 깨닫게 해주고 싶다”는 내용의 글이었다. 교통, 위치 등의 물리적 문제가 없을 뿐만 아니라 전 국민 여성들이 동시에 할 수 있다는 점에 방점이 찍혔다.

처음 올라온 글은 호응을 얻지 못했으나, 캡처된 글이 ‘혜화역 시위’ 카페 등 다른 온라인 커뮤니티와 트위터 등 SNS에 퍼지면서 주목을 받았다. 의견이 모이자 진행은 일사천리였다. 곧바로 총파업이 적당한 날짜에 대한 투표가 진행됐다. 물리적으로 어려운 평일보단 주말에 소비총파업을 하면 좋겠다는 의견이 모아졌다. 총파업 전날인 토요일엔 세계여성의날인 3월 8일을 기념해 ‘38’로 시작하는 금액을 통장에 저금하는 ‘38적금’도 붓기로 했다.

이번 총파업을 주도한 회원들 또한 모두 SNS를 통해 만났다. 20명 정도로 시작했지만, 현재는 약 15명 정도의 인원이 활동하고 있다. 회의는 주로 카카오톡 등 메신저를 통해 이뤄진다. 여성소비총파업 카카오톡 플러스 친구 계정도 만들었다. 메시지를 보낼 때마다 지출이 생기지만 회원들이 사비를 통해 충당하고 있다. 현재 친구 수만 3900명을 돌파했다.

여성소비총파업 기획에 참여한 A씨는 “우리는 서로의 이름과 직업, 나이조차도 알지 못한다. 아이디어를 시작으로 소비총파업을 기획하고 실행하기까지 2주밖에 안 됐다”며 “궁극적으로 여성 인구의 중요성과 성차별 철폐를 위한 운동이지만, 소비시장에서 ‘노동자’로서의 여성과 이들이 치러야 할 ‘꾸밈노동 비용’에 대한 비판도 함께하고자 한다”고 말했다.

A씨는 “우리는 이번 소비총파업에 동참하는 여성을 주체적인 소비가 가능한 ‘여성노동자’로 상정했다”며 “같은 노동을 하며 여성이 치러야 하는 비용이 너무 많다”고 지적했다. 그는 “여성과 남성이 동일임금을 받더라도 여성은 치마를 입어야 한다거나 스타킹, 화장품을 사야 하는 등 ‘꾸밈비용’이 들어간다. 여전히 사회는 ‘여성은 마르고 예뻐야 한다’는 식의 ‘꾸밈노동’에 여성을 밀어 넣는다. 우리는 이를 ‘여성억압비용’이라고 본다”고 주장했다. 안 그래도 임금 격차가 36% 정도인데, 보통 10~20만원 정도의 꾸밈비용까지 더 들면 임금 격차는 더 커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여성의 경제기반은 더 안 좋아질 수밖에 없으며, 안정적인 삶 또한 꿈꿀 수 없다.

 

실제로 지난 1일 온라인 커뮤니티와 SNS에는 자신만의 방식으로 소비를 하지 않았다는 내용의 글이 게시됐다. 이날 ‘#여성소비총파업’ ‘#소비불끄기’ 등의 검색어가 트위터 실시간 트렌드 1~2위를 오르내렸다. 하루 전날인 토요일에는 38로 시작하는 금액을 적금했다는 인증샷이 쏟아졌다. 파업에 동참한 한 여성은 “나는 여성소비총파업을 계기로 매달 첫 주 소비를 줄이기로 했다”며 “첫날에는 물건을 절대 사지 않고, 첫 일주일 동안은 최대한 소비를 줄이고 사고 싶은 물건이 정말 필요한 물건인지 재고해보는 시간을 갖겠다”고 밝혔다. 자신을 지방 아울렛에서 근무하는 직원이라고 밝힌 파업 동참 여성은 “평소 주말에 사람이 제일 많이 오는데 이날 매출이 크게 줄었다”면서 “젊은 여성 고객이 손에 꼽게 왔다”고 말했다. 돈을 쓰지 않기 위해 밖에 나가지 않고, 일부 집에서 먹을 것을 챙겨 외출했다는 여성도 있었다.

주최 측은 이번 운동을 통해 여성용품의 품질 개선은 물론 임금 불평등을 개선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한다. 여성 혐오적인 광고를 하는 기업을 걸러내고, 추가로 여성들이 성평등한 기업을 이용하는 문화를 형성하는 데도 도움이 될 것이라고 봤다. 이들은 “여러 시중 은행이 있지만 예를 들어 여성임원이 높은 씨티은행을 이용 한다던가, 여성들이 주도적으로 소비문화를 만들어나갔으면 한다”며 “성차별적인 콘텐츠나 광고를 일삼는 기업과 제품을 모니터링하는데도 좋을 것”이라고 전했다. 이를 위해 지속적으로 매달 운동을 전개할 예정이다.

이번 여성소비총파업은 1975년 10월 24일 아이슬란드 여성들이 성평등을 요구하며 하루 동안 직장과 가사노동, 육아 등을 모두 거부한 ‘여성 총파업’을 모티브로 삼았다. 당시 아이슬란드 여성 인구의 90%가 파업에 동참했으며, 노동과 소비 주체로서의 여성의 영향력을 행사했다. 이후 아이슬란드는 성차별 관련 법제도를 개선하는 등 큰 변화를 이뤄냈다. 지난해 세계경제포럼(WEF)이 발표한 ‘세계 성 격차 보고서 2017’에서 성 격차지수(GGI) 0.878을 기록하며 세계에서 가장 양성평등에 가까운 국가로 꼽히기도 했다.

한편 지난 2일 정부가 발표한 ‘2018 통계로 보는 여성의 삶’에 따르면 여성 근로자의 월 평균 임금은 229만8000원으로 여전히 남성에 비해 67.2% 수준인 것으로 조사됐다. 이는 지난해 대비 0.2% 개선된 수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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