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따가 되거나 참거나...”
“왕따가 되거나 참거나...”
  • 여성신문
  • 승인 2005.05.12 16:29
  • 수정 2005-05-12 16:29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여자와 술못먹는 남자 ‘술권하는 사회’를 말하다
“신입사원 환영회라며 폭탄주를 돌렸다. 나만 안 마실 수는 없었다. 괴로워하며 억지로 마신 후 오바이트를 할 때는 너무 힘들었다. 직장 선배는 남자가 사회생활하는 데 술 못 마시는 건 큰 핸디캡이라고 했다. 체질상 술이 몸에 안 맞는데 어쩌란 말인가. 그 뒤로 회식에서 잔을 돌리면 차례를 피해 슬쩍 자리를 옮겨다니곤 했다.”(이모씨, 32·영업사원)

“이전 직장에 있을 때는 회식이 즐겁지 않았다. 1차는 횟집, 2차는 룸살롱이 정규코스였다. 이사는 하늘이기 때문에 술자리에서 이사가 주는 술은 절대 거부할 수 없다. 룸살롱에 가면 같은 여자 입장에서 여자 접대부를 보면 사실 불쾌했다. 더구나 술이 막 들어가면 못 볼 꼴도 본다. 취해서 옆에 여자 동료 있는 것도 모르고 접대부 치마 속에 손이 막 들어가기도 한다. 그런데도 여자동료가 있어서 제대로 놀지 못했다고 자기들 끼리 또 3차를 간다.” (권모씨, 27·컨텐츠 기획)

술자리 아니면 사교활동 불가능?

술자리에서 여성과 술 못 마시는 남성은 모두 ‘주변인’이다.

술을 못 마시는 남성들에게는 남자답지 못하다고 말한다. 술자리를 즐기지 않는 남성도 흔히 비인간적이고 냉정하다는 비난을 듣는다. 술자리에 끼지 않으면 조직에서 소위 ‘왕따’가 된다. 대학 4학년인 한 남학생은 “술자리가 아니면 사교활동이 불가능하다”고 말한다. “술자리가 우리 안에 들어오려면 이 정도는 거쳐야 한다는 식의 통과의례로 통하기도 해요. 전날 술자리를 함께 했던 사람들은 ‘어제 잘 들어 갔냐’ ‘그 자식 술 잘 하대’하는 식으로 자기들끼리 공유하는 것이 생기는 거죠. 끝까지 (술자리를) 같이 안 한 사람은 거리감을 느낄 수밖에 없어요.”

@3-1.jpg

▶ 술 못 마시면 “남자가 아니다”, 여성은 ‘안주감’. 술권하는 사회에서 여성과 남성은 모두 괴롭다.

여성들은 할 말이 더 많다. 여성은 술을 잘 마시거나 못 마시거나 상관없이 항상 주변인이다. 술자리의 게임의 법칙은 남성들이 정하기 때문이다.

물론 과거 여성들이 집안에만 있던 때와는 달리 사회활동을 하면서 술자리에 참석할 기회는 많아졌다. 그럼에도 중요한 술자리에서는 배제된다. 여성문화이론연구소 고갑희(한신대 교수) 소장은 “술자리는 공·사 영역 중 사적 영역에 속하지만 사실 공적 영역의 연장선상에서 중요한 정보가 유통되거나 거래가 이뤄지는데, 여기서 여성들은 배제당할 수밖에 없다”고 말한다.

여성들이 남성들과 술자리를 함께 한다고 해도 ‘소외’당하기는 마찬가지.

남성들은 여성들에게 남성과 똑같이 행동하길 요구한다. 술이 센 여성이라야 남자동료들과 잘 어울릴 수 있다. 한편에서는 여성을 성적인 대상으로 취급한다.

술마시고 노래방이나 나이트클럽에 가면 블루스를 추자며 손잡아 끄는 일이 어디 한두 번인

가. 거리를 적당히 유지하면서 분위기 깨지 않고 맞춰주는 것이 얼마나 힘든지 여자라면 누구나 경험했을 거다.

“같이 술 마시다 보면 취해서 손잡고 다리에 손 올려놓고 그러기도 하는데 사실 대놓고 싸울 수 있는 분위기가 아니에요. 대학교 다닐 적에도 축제때 교수들하고 나이트클럽에 간 적이 있는데 교수들이 학생들 어깨나 다리에 손올려 놓고 술 깰 때까지 같이 있자면서 잡아놓고 그래요. 그러다가 성희롱까지 하는 거죠.”(이모씨, 카피라이터)

“술자리에서 여자와 음담패설은 항상 같이 가요. 음담패설을 하면 어디까지를 농담으로 보고 웃어넘길지 어디까지를 성희롱으로 보고 화를 내야 할지 판단하기 어려울 때가 많아요.남자들은 술자리에서의 성적인 언동을 당연한 걸로 생각해요. 술자리에서 성희롱이 일어났다 하면 남자들은 ‘여자가 술자리에 따라 갔다는 것 자체가 용인한 거 아니냐’고 말해요.”(최모씨, 회사원)

이중잣대 “여자라서 힘들다”

만약 이런 문화를 여성들이 용납하지 않으면 남성들은 불편해 하고, 또 남자들이랑 똑같이 행동하면 ‘저게 무슨 여자냐’는 식이다.

사실 술자리에 여성들이 남성들과 똑같이 참여한다는 것 자체가 불가능한 일이다. 술자리 차수가 높아질수록 여성들은 점차 배제될 수밖에 없다. 최모씨는 “3,4차에는 남자들끼리 룸살롱 가니까 으레 자리를 피해준다”고 말한다. 그렇지 않으면 ‘눈치없는 여자’가 돼버린다.

이처럼 많은 여성들은 “술자리에서 이율배반적인 경험을 하고 있고 여자라는 ‘존재’ 자체만으로 힘들다”고 토로한다.

이김 정희 기자 jhlee@womennews.co.kr

기사가 마음에 드셨나요?

여성신문은 1988년 창간 이후 여성 인권 신장과 성평등 실현을 위해 노력해 온 국내 최초, 세계 유일의 여성 이슈 주간 정론지 입니다.
여성신문은 여성들의 더 나은 삶을 위해 여성의 '안전, 사회적 지위, 현명한 소비, 건강한 가족'의 영역에서 희망 콘텐츠를 발굴, 전파하고 있습니다.
저희 기사가 마음에 드셨다면 좋은 기사 후원하기를 해주세요.
여러분의 후원은 여성신문이 앞으로도 이 땅의 여성을 위해 활동 할 수 있도록 합니다.

여성신문 좋은 기사 후원하기


※ 소중한 후원금은 더 좋은 기사를 만드는데 쓰겠습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