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빻은 말’ 비누로 만들고 몸에 써서 지워버리고…페미니즘 만난 예술
‘빻은 말’ 비누로 만들고 몸에 써서 지워버리고…페미니즘 만난 예술
  • 이세아 기자
  • 승인 2018.07.02 07:40
  • 수정 2018-07-03 18:5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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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평등 확산 프로젝트 ‘문화예술이 젠더를 말하다’가 1일 서울 종로구 대학로 (재)한국장애인문화예술원 이음 야외무대에서 열렸다. 플러스사이즈 모델 김지양 씨가 ‘몸에 지우다’라는 퍼포먼스를 통해 여성들이 겪는 ‘외모 압박’을 표현하고 있다.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성평등 확산 프로젝트 ‘문화예술이 젠더를 말하다’가 1일 서울 종로구 대학로 (재)한국장애인문화예술원 이음 야외무대에서 열렸다. 플러스사이즈 모델 김지양 씨가 ‘몸에 지우다’라는 퍼포먼스를 통해 여성들이 겪는 ‘외모 압박’을 표현하고 있다.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일상의 성평등’ 만들어가는 사람들

1일 대학로서 성평등 문화예술 프로젝트 

‘문화예술이 젠더를 말하다’ 열려

페미니스트 예술가 9인

다양한 전시·퍼포먼스 펼쳐

몸에 묻은 더러움은 물로 씻어 버리면 된다. 더러운 말은? 차별이나 혐오가 깃든 말들도 비누로 씻어버리면 어떨까. 시각예술 작가 혜원 씨의 워크숍 ‘버블 버블 - 그 말을 한번 씻어보자!’는 여기서 출발한다. 참가자들은 노란색, 보라색 등 원하는 색의 비누 재료를 골라 원하는 모양을 빚은 후, “여자는 조신해야지” “여자 나이 서른은 계란 한판” 등 자신이 듣기 싫었던 말들을 새겼다. 마음껏 씻어 사라지게 할 나만의 비누가 탄생했다.

 

성평등 확산 프로젝트 ‘문화예술이 젠더를 말하다’가 1일 서울 종로구 대학로 (재)한국장애인문화예술원 이음 야외무대에서 열렸다.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성평등 확산 프로젝트 ‘문화예술이 젠더를 말하다’가 1일 서울 종로구 대학로 (재)한국장애인문화예술원 이음 야외무대에서 열렸다.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혜원 작가의 워크숍 ‘버블 버블 - 그 말을 한번 씻어보자!’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혜원 작가의 워크숍 ‘버블 버블 - 그 말을 한번 씻어보자!’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불편한 말들을 아예 보란 듯이 몸에 쓰고 지워버리면 어떨까? 플러스사이즈 모델 김지양 씨는 ‘몸에 지우다’ 퍼포먼스를 벌였다. 시민들은 김 씨의 등과 팔다리에 립스틱으로 “여자는 화장이 예의지” “여자가 배가 가슴보다 더 나왔냐” “살쪘어?” “털 좀 밀어” 등 문구를 썼다. 대부분 유독 여성에게 쏟아지는 외모 관리 압박 발언들이다. 몸이 글씨로 빼곡해지면 지워 버렸다. “여성들이 일상적으로 경험하는 언어·비언어적 폭력을 가시화하고, 결국 아무런 영향을 끼칠 수 없다”는 메시지를 전하는 퍼포먼스다.

1일 서울 대학로에서 페미니스트 예술가 9인의 전시와 퍼포먼스가 열렸다. 여성신문과 시각 이미지를 만드는 페미니스트 프로젝트 ‘노뉴워크’가 공동 기획한 성평등 확산 프로젝트 ‘문화예술이 젠더를 말하다’다. 강지윤, 김지양, 도호연, 봄로야, 윤나리, 자청, 치명타, 혜원, 흑표범 등 9인의 예술가가 참여했다. 여러 작가들은 이날 다양한 방식의 작업을 통해 차별과 폭력이 얼마나 우리 일상에 깊이 뿌리내렸는지, 피해자와 연대·지지할 방안은 무엇인지 고민하는 계기를 만들고자 했다.

시각예술 작가인 자청 씨는 ‘“나는 천재입니다”_ 그날 ㅇ의 자리’라는 워크숍을 열었다. 참가자들은 성차별·성폭력 경험과 대응법을 그림과 글로 적어 벽에 붙였다. 10대 때 남자아이들에게 성폭력 위협을 받았던 일, 해외여행 중 ‘바바리맨’을 만난 경험, 직장 내 성희롱 등 다양한 사연이 나왔다. 한 장애여성의 이야기이다. “장애여성이 혼자 지하철을 타고 다니면 너무 쉽게 말 걸고, 같이 가려고 하고, 남자친구 있느냐고 묻는다. 한번은 성추행을 당해 경찰에 신고했는데 ‘증거가 없다, 사건 접수되면 본인만 힘들어진다’며 아예 신고조차 받아주질 않았다. (...) 이제는 내 잘못이 아니라고 당당히 말할 수 있고 장애여성단체를 통해 적극 대처할 수 있다. 나는 그 누구의 짐도 아니다. 그냥 나다.” 한 남성은 군대에서 겪은 성폭력 경험을 고백했다. 이등병 시절 병장이 그에게 ‘내 이불 안으로 들어오라’고 강요했다. 이 남성은 뒤늦게야 그것이 성희롱이었음을 깨달았다며 “앞으로는 용기내 ‘하지 마라’라고 말하고 싶다”고 했다.

 

자청 작가의 워크숍 ‘“나는 천재입니다”_ 그날 ㅇ의 자리’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자청 작가의 워크숍 ‘“나는 천재입니다”_ 그날 ㅇ의 자리’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윤나리 작가는 설치 작품 ‘샘’에 참여한 이들이 남긴 연대 메시지가 적힌 탁구공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윤나리 작가는 설치 작품 ‘샘’에 참여한 이들이 남긴 연대 메시지가 적힌 탁구공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윤나리 작가는 설치 작품 ‘샘’을 선보였다. 참가자들은 탁구공에 성폭력·성차별 피해자들을 지지하고 연대하는 메시지를 적었다. 자판기처럼 비치된 생수통에 공을 담고, 다른 사람이 메시지를 새긴 공을 가져갈 수 있다. “나는 용기가 없는 사람이라고 생각하지 마요. ‘미투’는 용기가 아니라 공감의 문제니까요.” “‘싫어’라고 말해도 괜찮아요. 말하면 큰일 날 줄 알았는데 그렇지도 않더라고요.” “세상은 점점 바뀌고 있어요. 우리는 점점 나아지고 있어요!” 용기를 ‘샘’솟게 하는 메시지들이 가득했다.

 

디자이너이자 아트디렉터인 도호연 씨가 연 워크숍 ‘Button #withyou’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디자이너이자 아트디렉터인 도호연 씨가 연 워크숍 ‘Button #withyou’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디자이너이자 아트디렉터인 도호연 씨는 ‘Button #withyou’라는 워크숍을 열었다. 참가자들은 배지를 색색으로 칠하고 미투 운동을 지지하는 다양한 메시지를 적어 나만의 핀 버튼을 만들었다.

 

봄로야 작가가 진행한 ‘저 문장을 들은 사람들이 할 일’ 프로젝트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봄로야 작가가 진행한 ‘저 문장을 들은 사람들이 할 일’ 프로젝트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봄로야 작가는 ‘저 문장을 들은 사람들이 할 일’이라는 프로젝트를 마련했다. 여성 문인 138명이 문단 내 성폭력을 이야기하고 피해자들과 연대하고자 펴낸 책 『참고문헌 없음』에 수록된 이성미 시인의 ‘거리’에 관한 시를 이용한 텍스트 드로잉 워크숍이다. 참가자들은 시를 읽은 후 성차별, 성폭력 등에 관한 생각을 표현했다.

 

강지윤 작가의 설치미술 작품 ‘명백하고 흐린 이름들, A씨 (Names obvious and blurred, A)’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강지윤 작가의 설치미술 작품 ‘명백하고 흐린 이름들, A씨 (Names obvious and blurred, A)’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강지윤 작가는 ‘명백하고 흐린 이름들, A씨 (Names obvious and blurred, A)’라는 설치미술 작품을 선보였다. 그간 뉴스를 통해 접한 다양한 성범죄 가해자들의 인적사항을 나열하는 것만으로도 성범죄가 얼마나 우리 일상과 가까운 범죄인지 보여준 작품이었다. 동시에 가해자보다 피해자에 더 주목하는 미디어의 태도를 비판하는 작업이기도 했다.

 

치명타 작가의 영상 프로젝트 ‘Make up Dash, 꾸밈노동 메이크업’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치명타 작가의 영상 프로젝트 ‘Make up Dash, 꾸밈노동 메이크업’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치명타 작가는 영상 프로젝트 ‘Make up Dash, 꾸밈노동 메이크업’을 선보였다. 그는 직접 뷰티 유튜버가 돼 웨딩홀 아르바이트 노동자, 미술학원 강사로 일하는 동안 겪은 외모 관리 압박이나 성차별 발언을 나누고, 여성의 꾸밈노동이 어떻게 여성혐오를 강화하는지 설명했다. 이 영상은 작가의 유튜브 채널 ‘Make Up Dash 2017’을 통해 누구나 볼 수 있다.

 

‘꿈 부적 드로잉’을 준비한 흑표범 작가가 참가자가  여성으로서의 기억이 담긴 꿈 이야기를 들으며 꿈-부적을 그리고 있다.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꿈 부적 드로잉’을 준비한 흑표범 작가가 참가자가 여성으로서의 기억이 담긴 꿈 이야기를 들으며 꿈-부적을 그리고 있다.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흑표범 작가는 ‘꿈 부적 드로잉 Dream Charm Drawing’ 퍼포먼스를 준비했다. 참가자가 작가에게 여성으로서의 기억이 담긴 꿈 이야기를 들려주면, 작가가 참가자에게 필요한 기운을 분홍색 용 형태의 꿈-부적으로 그려줬다. “동시대 여성들의 무의식을 꿈 이야기와 꿈-부적으로 연결하면서 여성들의 용기와 우정을 연대해” 보기 위한 작품이다.

이날 태풍의 영향으로 온종일 많은 비가 내려 당일 전시 장소가 일부 변경되기도 했다. 그래도 많은 이들이 전시장을 찾았다. 열두 살 난 딸과 함께 온 어머니 이정화 씨는 “오늘 여러 워크숍에 참가하면서 딸이 학교 친구들에게 ‘뚱뚱하다’ ‘너는 여자가 귀엽지가 않다’는 말을 듣고 고민하고 있다는 걸 알게 됐다. 일상의 성평등이 얼마나 중요한 문제인지, 어떻게 딸이 주눅 들지 않고 자신의 삶을 살도록 응원할 수 있을지 고민하는 계기가 됐다”고 말했다.

 

대만에서 온 연극·영화인 조이스 씨와 벳지 씨도 이날 여러 워크숍에 참여했다.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대만에서 온 연극·영화인 조이스 씨와 벳지 씨도 이날 여러 워크숍에 참여했다.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대만에서 온 연극·영화인 조이스와 벳지 씨는 이날 한국 여성들과 연대한다는 의미로 ‘여성이 뭉치다, 좋은 싸움을 하자(Women Unite, Fight the Good Fight)’ ‘여성의 힘은 멈추지 않는다, 소녀처럼 싸우자(Non-stop Women Power, Fight Like a Girl)’라는 글을 적었다. 올해 초 유명 극단 ‘목화’의 오태석 연출가가 성추행을 저질렀다는 피해자의 ‘미투’ 고발이 나온 후, 대만의 연극인들이 이 소식을 듣고 ‘#hereistand’ 해시태그 운동 등을 벌여 그가 연출한 ‘로미오와 줄리엣’의 대만 공연 취소를 끌어내기도 했다. 이들은 “한국에서 이번 행사처럼 다양한 페미니즘 운동이 전개되고 있어 반갑다. 한국 페미니스트들이 불미스러운 일들을 딛고 법제도와 사회 문화 개선을 이루길 바란다. 대만의 사례를 나누고 연대해 함께 성평등한 세상을 만들어가고 싶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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