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저출산’ 늪에 빠진 한국, 성평등이 구원한다
‘초저출산’ 늪에 빠진 한국, 성평등이 구원한다
  • 이세아 기자
  • 승인 2018.06.28 23:52
  • 수정 2018-07-02 07:4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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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일 서울 여의도 국회 헌정기념관 대강당에서 ‘제2차 새로운 저출산 대책 패러다임’ 토론회가 열리고 있다.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28일 서울 여의도 국회 헌정기념관 대강당에서 ‘제2차 새로운 저출산 대책 패러다임’ 토론회가 열리고 있다.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28일 헌정회 여성위 주최

‘새 저출산 대책 패러다임’ 토론회 열려

한국은 2001년부터 지금까지 ‘초저출산’ 늪에 빠져 있다. 초저출산국가란 합계출산율이 1.3을 밑도는 나라를 가리킨다. 인구가 감소하지 않으려면 합계출산율이 2.1은 돼야 한다. 한국의 지난해 합계출산율은 1.05에 불과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평균이 1.68이다.

정부가 노력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2005년 저출산·고령사회기본법을 제정했고 대통령 직속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를 출범했다. 문재인 정부는 출범 직후 주요 국정과제의 하나로 ‘저출산 극복’을 꼽았다. 2006년부터 10여 년간 126조원을 들여 여러 정책을 펼쳤지만 성과가 없다. 올해 1분기 출생아 수는 8만명대로 떨어졌다. 1981년 통계 작성 이래 최저 수준이다. 출산율이 더욱더 바닥으로 떨어지면서 ‘126조 출산 복지의 참담한 실패’라는 비판도 쏟아졌다.

왜 사람들은 아이를 낳지 않을까? 일각의 진단처럼 “만연한 개인주의” 탓일까? “이기적인 여자들이 제 몸과 경력만 생각하기 때문”일까? 보건복지·여성정책 전문가들은 이러한 관점이 현실을 반영하지 못한다고 말한다. 대한민국헌정회 여성위원회가 28일 국회 헌정기념관에서 연 ‘새로운 저출산 대책 패러다임’ 토론회 참석자들은 여성이 임신·출산·육아 과정에서 겪는 성차별, 보육·사회 서비스 지원 부족부터 해결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28일 서울 여의도 국회 헌정기념관 대강당에서 ‘제2차 새로운 저출산 대책 패러다임’ 토론회가 열려 정재훈 서울여대 사회복지학과 교수가 주제발표를 하고 있다.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28일 서울 여의도 국회 헌정기념관 대강당에서 ‘제2차 새로운 저출산 대책 패러다임’ 토론회가 열려 정재훈 서울여대 사회복지학과 교수가 주제발표를 하고 있다.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이날 발제를 맡은 정재훈 서울여대 교수는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고 했다. “살 만한 사회 환경을 조성하기 위한 정책과 예산을 수립·집행하는 게 중요합니다. ‘출산율을 언제까지 n%로 올린다’, 이런 사고방식으론 안 됩니다. 그런 식으로 정책을 펼치면 젊은 세대는 ‘우리가 아이 낳는 기계냐’며 반발할 뿐이죠.”

그는 ”보편적 사회보장제도와 성평등 사회”를 저출산 극복의 열쇠로 꼽았다. “출산 주체인 여성들은 ‘독박육아’와 경력단절 등 성차별을 겪고 있습니다. 여성이 힘든데 아이를 낳으라고만 강요하는 것은 무리한 요구 아닐까요. 아이를 낳고 싶어하는 사회, (임신·출산·육아를 하면서) 인간 대접을 받고 살 수 있는 사회라는 생각이 들도록 만들어야죠.”

한국은 주요 선진국들에 비해 사회보장제도 관련 지출이 적은 국가다. 정 교수는 출산율이 비교적 높은 국가들인 프랑스, 스웨덴, 미국을 예로 들었다. 이들 국가의 공통점은 다양한 가족 제도를 수용하며, 여성과 남성의 일·가정 양립 지원 정책을 강화해왔다는 점이다. 정 교수는 “저출산 문제로 고민하던 독일도 2007년부터 정책의 패러다임을 바꿔 성평등·문화적 다양성 증진, 일·가정 양립 지원, 돌봄서비스 강화 등 변화를 시도하면서 출산율이 증가했다. 한국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말했다.

이날 발제를 맡은 안명옥 전 의원은 “완벽한 의미의 양성평등에 기초하지 않은 저출산·고령화 대책은 효용이 없다”고 강조했다. “아직도 여성들은 차별받거나 일자리를 잃고 생계난에 빠질까 봐 걱정하고 있어요. 여성이 안심하고 아이 낳을 수 있는 사회가 아닙니다. 저출산 대책은 ‘몇 명을 더 낳자’는 구호에 그칠 게 아니라 가족정책과 사회정책 전반에 양성평등 가치를 접목하는 방향으로 바뀌어야 합니다. 보건복지부, 여성가족부 등 몇몇의 힘으로는 어렵습니다. 모두 함께 바꿔 나가야 합니다.”

 

28일 서울 여의도 국회 헌정기념관 대강당에서 ‘제2차 새로운 저출산 대책 패러다임’ 토론회가 열려 안명옥 저출산대책의료포럼 공동대표가 주제발표를 하고 있다.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28일 서울 여의도 국회 헌정기념관 대강당에서 ‘제2차 새로운 저출산 대책 패러다임’ 토론회가 열려 안명옥 저출산대책의료포럼 공동대표가 주제발표를 하고 있다.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일각에서는 ‘일하는 여성이 늘면서 출산율이 떨어졌다’는 분석을 내놓았다. 전문가들은 ‘반은 맞고 반은 틀리다’고 설명했다.

정 교수는 “유럽 국가들을 보면 처음엔 여성의 경제활동 참가율이 증가할수록 출산율도 하락하다가, 여성도 임신·출산·육아에 덜 구애받고 남성과 평등하게 일할 수 있는 여건이 갖춰지면서 다시 출산율이 높아지는 경향이 보인다. 그러나 한국은 아직 거기에 이르지 못해 일하는 여성이 늘수록 출산율이 하락하는 ‘늪’에 빠져 있다”며, 국가와 지역사회, 기업이 힘을 모아 성평등한 노동 환경을 조성하는 데 힘써야 한다고 촉구했다.

김희정 전 여가부 장관도 “선진국일수록 여성 경제활동 참가율, GDP, 출산율이 모두 높은 게 특징”이라며 “가족친화인증기업제도를 확대하고 실질적인 인센티브를 제공하며 모니터링을 강화해, 기업들부터 앞장서서 가족 친화적 사회를 만들어나갔으면 좋겠다”고 제언했다.

 

28일 서울 여의도 국회 헌정기념관 대강당에서 ‘제2차 새로운 저출산 대책 패러다임’ 토론회가 열려 김희정 전 여성가족부 장관이 발표를 하고 있다.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28일 서울 여의도 국회 헌정기념관 대강당에서 ‘제2차 새로운 저출산 대책 패러다임’ 토론회가 열려 김희정 전 여성가족부 장관이 발표를 하고 있다.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정부는 지난해 말 “출산율, 출생아 수를 목표로 하는 국가 주도 정책이 아니라, 삶의 방식에 대한 개인 선택을 존중하고 출산과 자녀 양육을 인권으로 인정하는 사람 중심 정책으로 전환하겠다”고 천명했다. 저출산고령사회위는 다음 달 △주거비 부담을 덜어줄 신혼부부 주거정책  △근로시간 단축 △아빠 육아 활성화 △여성의 ‘독박돌봄’ 부담 해소 △비혼 출산 등 모든 출산이 동등한 대우 받는 문화 확산 등 정책을 발표할 예정이다.

이동욱 보건복지부 인구정책실장은 “청년 세대가 겪고 있는 취업난과 주거비 부담 등 어려운 사회구조적 문제는 해결하지 못하고, ‘아이를 낳으면 몇 가지 혜택을 더 주겠다’거나 ‘경제 활력과 국가의 존속을 위해 아이가 더 필요하다’는 것으로는 결혼과 출산을 선택하도록 설득하기 어렵다”며 “정부는 여전히 돌봄 책임을 여성에게 부과하는 가부장적 문화 개선, 비혼 가정 등 모든 형태의 가정을 존중하는 문화 등 다양한 여성정책적 접근 방법도 고민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번 토론회는 지난해 7월에 이어 두 번째로 열린 연속 토론회다. 박영아 전 의원이 이날 좌장을 맡았다. 유용태 헌정회장과 정현백 여성가족부 장관, 저출산·고령화사회위원회 부위워장 등 정관계 인사도 참석해 축사했다.

 

28일 서울 여의도 국회 헌정기념관 대강당에서 ‘제2차 새로운 저출산 대책 패러다임’ 토론회가 열려 문희 헌정회 여성위원회 위원장이 인사말을 하고 있다.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28일 서울 여의도 국회 헌정기념관 대강당에서 ‘제2차 새로운 저출산 대책 패러다임’ 토론회가 열려 문희 헌정회 여성위원회 위원장이 인사말을 하고 있다.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문희 대한민국헌정회 여성위원장은 “정부는 젊은 세대가 아이를 낳고 기르는 일을 기피하지 않도록 교육과 일자리를 늘리고, 여성과 남성이 평등한 사회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주거·육아 등 부담을 덜어주는 구체적이고 실효성 있는 정책을 추진해야 한다”고 했다. 또 “모든 국민들도 저출산 문제의 심각성을 깊이 인식하고 결코 남의 일처럼 생각해선 안될 것”이라며 “‘산모 보호 운동’과 ‘어린이 보호 운동’을 국민운동으로 승화·발전시켜 나가야 한다”고 제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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