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의 성평등’ 만들어가는 사람들

‘비연애 칼럼니스트’ 이진송 작가

“나는 아주 어릴 때부터 뛰어난 여성이 되어야 한다고 배웠고, 이는 끊임없이 나 자신을 괴롭혔다. 내가 여성의 열등함을 증명하는 표본이 될까 봐, 그리하여 각종 차별을 정당화하는 근거가 되어 다른 여성들에게 피해를 끼칠까 봐 두려웠다. 그러나 이제는 안다. 오직 뛰어난 인간만이 차별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다면 그것은 그 사회가 심각하게 뒤틀려 있다는 증명일 뿐이다.” (『하지 않아도 나는 여자입니다』 중)

이진송(31) 작가는 자신을 “종이 위에서 폭주하는 페미니스트” “질문 폭격기”라고 소개한다. “한국 최초의 비연애 칼럼니스트”를 표방하는 그는 2013년부터 연애하지 않는 삶의 다양성을 이야기하는 잡지 ‘계간홀로’를 발간하고 있다. 지난해 이화여대 대학원에서 한국현대소설 박사과정을 수료한 후, 현재 드라마 보조 작가로 일하며 저술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한국일보, 한겨레21, 허핑턴포스트 등에 사회문화 이슈를 다룬 칼럼을 연재했다. 저서로는 『연애하지 않을 자유』(2016), 공저 『미운 청년 새끼』  『페미니스트 유토피아』 (2017) 등이 있다.

최근 에세이집 『하지 않아도 나는 여자입니다』(프런티어)도 펴냈다. “여자라서 ‘하면 안 된다’와 ‘해야 한다’ 사이에서 흔들리는 당신에게” 바치는 책이다. 영화, 드라마, 소설 등 다양한 문화 콘텐츠를 통해 성차별과 여성혐오를 꼬집는다. 유쾌하면서도 통렬한 글솜씨에 책장이 술술 넘어간다.

- 출간 후 반응은 어떤가요?

“호응도 있지만 이런 책이 나왔다는 데 반발하는 사람들도 많죠. 평점이라며 별 하나에 악플을 남기는 ‘별점 테러’를 가하기도 해요. 그걸 보니 내가 제대로 살고 있구나 싶어요(웃음).”

- 책에서 성형 시술과 다이어트 경험과 소회도 솔직하게 털어놓으셨습니다. 

“이제 성형은 ‘대학 입학 선물’처럼 일상적인 경험이 됐죠. 저도 ‘스무 살이 되면 당연히 나도 뭔가 해야 하겠지, 어른들 말처럼 대학 가면 예뻐지겠지’ 생각했어요. 하지만 누구도 제게 ‘성형하지 않아도 되는’ 선택지에 대해서는 이야기해주지 않았죠. 저처럼 기로에 놓인 사람들을 위해서라도, 책에 그런 이야기가 들어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 그런 사람이 “폭주하는 페미니스트”로 변화하게 된 계기가 있었나요.

“갑자기 ‘깨어났다’는 표현은 맞지 않아요. 사람을 깨어 있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으로 쉽게 나눌 수 없어요. 다이어트와 성형을 할 때도 저는 젠더 문제에 아주 관심이 많았고 ‘낙태죄’ 반대 운동 등 여러 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던 사람이었어요. 문제의식으로 가득했던 사람인데도 다이어트를 한 거죠. 제게는 유의미한 경험이었어요.

굳이 꼽자면 잡지 ‘계간홀로’를 만든 게 하나의 중요한 계기가 됐어요. 남들 눈에 띄는 걸 싫어했지만 지금은 담론의 확장을 위해 적극적으로 말하게 됐죠. 책 홍보와 생계를 위해 더욱 발로 뛰어야겠다 싶네요(웃음).”

- 최근 이슈인 ‘탈코르셋’ 운동을 어떻게 생각하세요?

“획일적 아름다움을 강요하는 이 사회를 비판하는 전략적 퍼포먼스가 될 수 있다고 봐요. 뷰티 산업과 아이돌 엔터테인먼트가 성장하고, 잘 꾸민 어린 여성들이 미디어에 대거 등장하면서 그들이 아름다움의 표본인 양 묘사되고 있잖아요. 여성들은 예뻐야 하면서도, 시술받은 티를 내면 안 되는 이중의 딜레마를 겪고 있죠. 이런 게 (탈코르셋 운동이) 더 적극적인 방향으로 나아가는 계기가 됐다고 봐요. 또 누구나 SNS를 통해 자신의 경험을 말하고 나눌 수 있게 되면서 페미니즘에 대한 사회적 진입 장벽도 낮아졌어요. ‘나 화장 안 하고, 브래지어 안 찬다’고 사진 찍어 공개 인증하고, 서로 확인하면서 탈코르셋 운동은 더증폭되고 있어요.

‘탈코르셋’ 운동에 동참하지 않는 여성들을 폄하하는 이들도 있는데요. 남성들의 기준에 자신을 맞추는 여성이 있어서 전체 여성 인권이 후퇴한다? 백번 양보해서 그렇다고 쳐도, 중요한 건 어떤 여성이어도 여성이라는 이유로 부당한 일을 당하지 않도록 하는 거죠. 여성이 여성을 멸시하기가 얼마나 쉽나요. 우리 그런 건 예전부터 해왔잖아요. ‘공주병’ ‘화떡’ 이렇게 놀리는 거, 익숙하잖아요. 각각의 여성들의 삶과 위치, 그들의 행동이 낳는 파급효과가 다르기 때문에 그 맥락을 섬세하고 신중하게 살펴보고, 할 수 있는 만큼 하는 게 중요하다고 봐요.”

- 최근 확산되고 있는 ‘여성만 챙기는 페미니즘’ 운동에 대해 얼마나 동의/지지하시나요?

“여성’이란 무엇인가부터 생각해 봐야 해요. 우리 사회는 가부장제가 인정하는 정상적인 남성성을 기준으로 삼아 그에 부합하지 않는 모든 걸 ‘여성’으로 몰아넣죠. 가부장제가 ‘열등한’ 것으로 치부한 약자성, 비남성성 모두 ‘여성’과 함께 갈 수 있어요. 그런데 생물학적 여성만 ‘여성’으로 호명하면 논의를 납작하게 짓뭉개 자가당착에 빠뜨릴 수 있어요. ‘여성만 챙긴다’는데, 지금 그 ‘여성’의 범위가 점점 좁아지고 있거든요. 결국 ‘정상 신체를 가진 여성’, 가부장제가 ‘여성’으로 인정하는, 가부장제가 환영하는 ‘정상성의’ 여자들만 남을 수도 있죠.

일부 여성들은 ‘우리 사회에서 여성은 언제나 피해자였다’라고 주장하지요. 어찌 보면 맞는 말이지만, 인권은 ‘줄 세우기’가 아니잖아요. 인권 운동은 누구를 챙기고 안 챙기는 문제가 아니라 불균형을 바로잡기 위한 것이니까요. 내가 겪는 불균형을 해결하려고 다른 약자를 억압한다면 오히려 나를 더 낮은 곳으로 끌어내릴 뿐이에요. 페미니즘은 내가 어떤 맥락에서 약자인지, 다른 맥락에서는 어떤 권력을 갖는지 성찰하는 일이잖아요. 다양한 층위와 위계를 모두 고려하기란 어렵고 복잡하죠. 그렇다고 맥락을 섬세하게 살피는 일조차 포기해선 안 돼요.”

- 여하튼 지금 그러한 페미니즘이 다수의 호응을 얻고 있고, 그 중심에 1020 젊은 여성들이 있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습니다. 왜일까요.

“네. 이 흐름이 금세 사라질 것 같진 않아요. 여성들이 왜 이렇게 폭발적으로 분노를 터뜨리는지 이해하려면 지금 1020 여성들의 삶이 어떤지 들여다봐야 해요. 이들은 대개 학교 등 좁은 커뮤니티 내에서 더 폭력적인 남성들과 직접 맞서야 하는 상황이에요. 불법촬영을 당하거나 총여학생회 폐지 투표처럼 매일 전쟁을 치르다 보니, 위악이 효과적인 전략이라고 느끼는 것 같아요. 함께 운동하는 데에서 오는 ‘임파워링(empowering)’의 힘도 무시할 수 없죠.

문제는 성별 이분법적 사회에서 자신이 시스젠더 여성으로서 지닌 권력은 보지 못한다는 점입니다. 트랜스젠더, 게이, 기혼 유자녀 여성 등을 공격한다고 해서 가부장제의 정상성을 지닌 남성들에게 타격을 주지는 못해요. 그들은 오히려 신이 나죠. 같이 팰 수 있으니까.

또 ‘인권 운동에 기여하지 않은 사람들은 인권운동의 혜택을 누릴 자격이 없다’는 신자유주의적 사고방식도 엿보여요. 그런데 우리 모두 어느 정도는 윗세대, 남들이 싸워서 얻어낸 권리를 공짜로 누리고 있거든요. 한 여성에게 ‘너 때문에 여성인권이 후퇴했다’라고 말해요. 구조적 억압을 단순하게 보고 있는 것 아닌가 우려도 돼요.

이 분노와 움직임을 어떻게 봐야 할지 계속 고민해야 할 것 같아요. 운동이 빠르게 확산하는 지금, 그 동력을 잘 분석해 덜 폭력적인 방향으로 발현되도록, 더 지속가능한 운동이 되도록 고민해야 할 중요한 시점이라고 봐요.

책 말미에서 그는 이렇게 썼다. “여자를 너무나 쉽게, 적극적으로 비난하고 미워하도록 설정된 세계에서 나는 나만의 편이 되어주어야 한다고. 나를 오래 미워했던 시간을 돌아보며 비로소 내가 나의 편이 되어주었듯이.”

- 그런 세계에서 여성이 자신의 편이 된다는 것은 중요하지만 가장 어려운 일 아닌가요. 

“사람은 연약한 존재라서 서로 단단하게 붙들어줘야 해요. 나를 지지하고, 내가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들에 뜻을 함께하는 친구, 동지들을 곁에 두는 게 중요해요. 한두 명이어도 됩니다. 살면서 주파수가 맞는 사람을 찾기가 얼마나 어려워요. 저는 그걸 ‘비밀의 화원’ ‘긴급 산소방’이라고 불러요. 제 몸무게가 15kg나 줄었던 시기가 있어요. 제 주변인들 중 몇몇만이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았어요. 요요현상이 와서 다시 살이 쪘을 때도 그 친구들을 만나는 게 두렵지 않았죠. 저를 있는 그대로 봐줄 거라는 믿음이 있었으니까요. 그 이후로 저도 친구들의 외모를 지적하거나 언제 결혼하냐는 얘기를 의도적으로 하지 않게 됐죠. 내게 그런 존재가 되어 줄 사람을 찾는 동시에, 나도 그런 존재가 돼 줘야 해요. 어떤 분야에서는 아주 뛰어난데도 사회적으로 폄하당하는 여성이 있다면, 그 여성의 진가를 알아주는 사람이 되어 주는 거죠. ‘그런 건 아무것도 아니야’라고 말해주거나, 분위기를 바꿔 줄 수 있는 사람이요. 내가 그런 사람이라는 신호를 보내면 주변에 그런 사람들이 모이더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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