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식민지배에서

시작된 베트남 커피

 

베트남은 브라질에 이어 세계 2위의 커피 생산국이다. 베트남 커피의 역사는 19세기 프랑스의 주둔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1857년 프랑스 선교사에 의해 베트남에 처음 들어온 커피는 베트남 전쟁 후 동독과의 커피 조달 협약을 통해 산업화의 첫발을 내딛은 뒤 1986년 베트남 정부가 주도한 도이 머이(Đổi mới:혁신)정책을 거치며 부흥기를 맞았다.

현재 베트남은 전 세계 커피 생산의 20% 가까이 차지하며 세계에서 가장 많은 로브스터(Robusta)종 생산지로 성장했다. 무덥고 습기가 많은 기후로 인해 베트남은 로브스터를 재배하기에 최적의 조건을 갖추었다고 평가받는데 실제로 베트남에서 생산되는 커피 가운데 로브스터가 90%에 이른다.

 

핀 까페(phin cà phȇ)와 베트남에서 생산되는 커피들 ⓒ송수산
핀 까페(phin cà phȇ)와 베트남에서 생산되는 커피들 ⓒ송수산

많은 사람들이 베트남 커피 하면 떠올리는 것이 바로 족제비 커피다. 위즐(weasle:족제비) 커피라고 불리는 족제비 커피는 세계에서 가장 비싸다는 명성과 달리 커피 농부들의 빈곤에서 그 기원을 찾을 수 있다.

1800년대 베트남에 처음 커피나무가 들어왔을 당시 그 희소성으로 인해 프랑스인들과 당시 베트남의 왕조였던 응웬 가문(Nhà Nguyễn)의 일원들밖에 맛볼 수 없었다고 한다. 일반 서민은 물론 커피를 생산하는 농가에서조차 커피는 맛보기 힘든 귀한 음식이었는데 이들이 커피를 맛보기 위해서는 족제비의 배설물에 남겨진 커피 원두를 이용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족제비의 배설물에서 찾아낸 커피를 맛본 이들은 그것의 맛과 향이 감미롭고 씁쓸함도 적다는 것을 발견했다. 게다가 족제비들이 좋은 원두를 고르는 능력까지 갖추었음이 알려진 뒤 족제비가 선별해 섭취하고 배설한 커피 원두는 최상급의 가치를 지니게 된 것이다.

그러나 최근에는 철창에 갇혀 커피 원두만을 섭취하는 족제비에 대한 동물학대 논쟁이 끊이지 않고 있고 사료처럼 급여되는 커피 원두를 먹고 배설해내는 것이 족제비의 원두 선별 능력과 아무런 관계가 없음을 지적하는 목소리도 높다. 하지만 여러 논란에도 불구하고 위즐 커피는 베트남에 방문하는 이들이 꼭 구매해야 하는 필수 기념품으로 꼽힐 만큼 외국인들에게 큰 인기를 끌고 있다.

 

베트남과 닮은 커피 문화

커피를 접하기 쉬운 특성으로 인해 베트남 사람들은 남녀노소 커피를 즐긴다. 길거리 노점이나 베트남 로컬 브랜드 커피숍, 그리고 세계적인 커피 전문점을 가릴 것 없이 커피를 마시는 사람들로 하루 종일 북적거리는 것을 볼 수 있다.

베트남 커피를 마시는 데에는 특별한 방법이 있다. 바로 종이 필터 대신 작은 구멍이 뚫린 핀 까페(phin cà phê:커피 여과기)를 이용해 원두를 내리는 것인데 이렇게 내린 드립 커피를 까페 핀(cà phê phin)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달게 먹는 베트남의 식습관은 커피 문화에도 그대로 반영된다. 베트남에서 블랙커피를 주문하면 반드시 설탕 혹은 시럽이 첨가되어 있을 정도로 커피란 달고 쓰게 먹는 것이라는 인식이 일반적이다. 여기에 우유 대신 다디단 연유를 넣은 까페 쓰어(cà phê sữa:밀크 커피)는 베트남 커피의 대명사로 자리 잡았는데 뜨겁게 마시느냐 시원하게 마시느냐에 따라 각각 까페 쓰어 다(Cà phê sữa đá:시원한 밀크 커피)와 까페 쓰어 농(Cà phê sữa nóng:뜨거운 밀크 커피)으로 나뉜다.

 

연유를 이용해 까페쓰어농을 만드는 모습 ⓒ유튜브 Vinamilk 영상 캡쳐
연유를 이용해 까페쓰어농을 만드는 모습 ⓒ유튜브 Vinamilk 영상 캡쳐

베트남 커피숍에서는 독특한 풍경을 볼 수 있다. 야외에 자리한 테이블은 일행과 마주 보는 것이 아니라 인도를 향하도록 배치된 곳이 많아 커피를 마시면서 행인을 관찰하는 이들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베트남 사람들은 타인에게 호기심을 갖고 친해지고 싶어 하는 자신들의 특성이 커피숍에도 반영된 결과라고 이야기하는데 커피를 마시는 도중에 옆 테이블 사람들이 근처 상점에 대한 의견을 나누거나 최근 자신이 알게 된 유용한 정보를 알려주는 일도 빈번하게 일어난다. 젊은이들은 간섭을 좋아하는 나이 든 세대의 야이 더이(Dạy đời:‘훈계하다’라는 의미로 최근에는 한국어의 ‘꼰대’와 비슷한 어감으로 사용되기도 한다.) 라고 거부감을 표현하지만 윗세대들에게는 이것이 타인에 대한 관심 혹은 애정으로 여겨지는 듯하다.

커피를 마시며 식사를 함께하는 것도 베트남에선 일반적이다. 커피숍에서 음식 반입을 금지하거나 냄새를 풍기는 음식을 판매하지 않는 한국과 달리 베트남에서는 커피숍에서 반미나 수프 등의 음식이 메뉴에 포함되어 있고 다른 가게에서 구입한 음식을 먹는 모습도 심심치 않게 발견할 수 있다. 또한 성별이나 나이, 시간과 금전의 여유에 상관없이 남녀노소 모두 커피를 즐기는 모습은 커피가 베트남에서 기호식품을 넘어 생활의 한 부분으로 깊숙이 자리 잡고 있음을 느끼게 해준다.

변해가는 커피시장

세계에서 손꼽히는 커피 생산국답게 베트남은 토종 커피 브랜드들이 인기다. 하이랜드(Highlands Coffee), 쯩웬(Trung Nguyên Coffee), 푹롱(Phúc Long Coffee & Tea), 그리고 콩 까페(Cộng Cà phê)등의 로컬 브랜드는 관광객은 물론 현지인들에게 큰 인기를 끌고 있다.

그러나 베트남에서 생산되는 원두의 품질은 그다지 좋은 평가를 받지 못하고 있는데 커피 원두의 수출량이 매년 늘어나는 반면 베트남에서 수입하는 원두의 양도 해마다 증가하고 있고 세계적인 커피 프랜차이즈에 젊은이들이 몰려 점심시간이면 발 디딜 틈이 없을 지경이다. 날이 갈수록 성장하는 베트남의 경제와 소비 환경이 커피 문화에도 반영되고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하루가 다르게 구매력이 늘어나고 있는 여성 소비자들을 겨냥한 변화도 눈길을 끈다. 일본 식품 브랜드 Ajinomoto에서는 여성의 입맛에 맞춰 리뉴얼된 커피를 선보였고 G7으로 우리나라에서도 유명한 커피 회사 쯩웬에서는 여성들을 위한 커피까지 출시했다. 해당 커피는 피부 미용에 도움이 되고 피로와 스트레스를 줄여준다며 여성 소비자의 마음을 잡기 위해 노력한다.

베트남 사람들은 커피가 건강과 미용에 도움이 된다고 믿는다. 그리고 하루의 시작과 끝, 혹은 사이사이의 피로와 무료함을 달래주는 원동력이라고 이야기한다. 사람마다 선호하는 브랜드, 장소, 가격은 다르고 경제와 문화가 변함에 따라 인기 있는 브랜드 역시 달라지지만 베트남 사람들에게 커피 한 잔이 갖는 의미는 깊고 소중하다. 베트남의 경제 발전을 이끌고 베트남 사람들의 지친 하루를 책임지는 베트남의 커피에는 고단하고 치열했던 그들의 문화와 역사가 담겨있다.

저작권자 © 여성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