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6.13지방선거에 출마해 돌풍을 일으킨 고은영 녹색당 제주도지사 후보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지난 6.13지방선거에 출마해 돌풍을 일으킨 고은영 녹색당 제주도지사 후보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고은영 녹색당 제주도지사 후보

남들 앞에 나서는 성격 아냐

마이크 쥐고 덜덜 떨었다

영페미들이 정치에 관심...

나도 누군가의 좌표가 돼

“여자만 아니었으면 뽑았다” 얘기도

“여성 정치 네트워크 조직할 것”

 

‘여성 인재가 없다’는 말은 선거를 앞둔 정치권의 단골 레퍼토리다. 여성을 공천하라는 요구에 정당은 남성의 권력 카르텔에 대한 반성 없이 오히려 여성이 무능하다는 메시지로 여성혐오를 확산시킨다.

제주도지사 선거에서 3.5%를 득표하면서 자유한국당 후보를 제치고 돌풍을 일으킨 고은영 녹색당 후보의 사례는 정치권의 변명이 핑계에 불과함을 보여준다. 한 여성운동가는 “고 후보가 연설하는 모습을 보면 카리스마가 굉장하다”고 했지만 고 후보는 지금까지 단 한 번의 선거 경험도 없는 신인이다.

지난 22일 서울 마포구 상암동을 찾은 그를 만났다. 언론 인터뷰 일정으로 바쁜 시간을 보내는 중이었다. 언론은 대개 당선자를 쫓지만 낙선자 신분인 고 후보에 쏠린 관심은 당선자 못지않았다.

정치인이 꿈이었냐는 기자의 질문에 고 낙선자는 단호하게 부인했다. 남들 앞에 나서는 성격도 아니고 연설조차 해본 적 없다고 했다. 그는 “처음 마이크를 쥐었을 때 손을 이렇게 덜덜 떨었다”면서 주먹 쥔 손을 얼굴 앞에서 좌우로 흔들었다. 믿기지 않는다는 기자의 말에 “학창시절에 반장, 부반장 한번 못 해봤다. 홍보대행사에서의 직장생활도 뒤에서 지원하는 일이었다”고 덧붙였다. 그런 그가 이제는 제주도에서 여성이 스스로 정치 역량을 키울 수 있는 네트워크를 만들어보고 싶다고 했다. 어떻게 정치에 나서게 됐고, 선거를 통한 변화는 무엇인지 들어봤다.

정치 입문 계기는?

30대에 접어들던 2014년 삶의 전환을 위해 제주도에 갔다. 마냥 제주도 푸른밤을 꿈꾼 철부지였다. 관계를 중시하는 사람으로 지역사회에서 활동했는데 당혹스러운 경험이 많았다. 녹색당에 가입한 이유는 정당 가입이 시민의 역할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다 제비뽑기로 제주녹색당 공동위원장이 됐다. 누구나 정치할 자격을 내부 시스템으로 갖춘 것이다. 위원장이 되면서 각종 회의테이블에 참석하게 됐고 발언 기회를 갖게 됐다.

처음으로 선거를 치른 소감은?

우리 캠프에는 선거전문가, 정책전문가가 단 한 명도 없었다. 언론 보도자료 담당자는 보도자료라는 걸 처음 써보게 됐다. 저희가 만드는 모든 게 도전이었는데, 우리의 방식은 어때야 할 것인가부터 논의하고 그것을 끝까지 고수해냈다. 정책도 일반 당원들이 몇 달 공부해서 만든 것이다. 가끔씩 자문 받는 정도였다.

녹색당은 시민정치를 지향하는데 그런 모습에 가장 가까웠다고 본다. 청소년부터 60대까지 다양한 방식으로 참여했다. 성별도 직업도 다양했다. 이들이 각자의 선거, 각자의 싸움을 했고 좋은 결과를 이끌어냈다. 저 또한 후보자 역할을 충실히 수행했다. 이 모습이 녹색당이 살고 싶은 미래의 모습 아닐까 선거 내내 생각했다.

이번 선거에 의미를 부여한다면?

녹색당이 처음 도지사를 내겠다고 결정했을 때가 작년이었다. 지역사회에서 전혀 호응을 얻지 못했다. 우리로서는 정식 제주도당이 없는데 도지사를 낸 상황이었다. 건강하게 끝까지 갈 수 있을까 불안했다. 그러나 저희가 얘기하는 바가 제주에 필요한 목소리였고 그동안 제주도는 정치적으로나 사회적으로나 균형을 이끌어나가는데 새로운 목소리가 반영되지 않고 고여 있었다는 점에서 저희를 더 많이 주목해주신 듯하다. 시대적으로 요구도 있었다. 난개발 문제가 심각했기에 선거 내내 도민의 관심을 받을 수 있었다.

고 후보는 제주도민이 아니라는 점에서 어려움은 없었나.

지금 생각해보면 2018년도에 적절한 후보였다고 생각한다. 당내에서 후보를 선출할 당시 강정마을에서 10년 넘게 싸운 분이 유력했는데 사고를 당해 출마하지 못했다. 또 다른 훌륭한 후보도 있었다. 도민들은 녹색당을 거의 몰랐고, 저 역시 전혀 새로운 인물인 데다 이주민이었다. 지금 와서 보면 그런 제가 문제라고 화두를 꺼낸 게 유효했던 것 같다. 저는 난개발에 집중했다. 제2공항을 성산지역에 지어선 안 된다는 여론이 도민사회에서 50% 넘었다. 제주에서 지역경제 발전 논리로 개발 사업을 하는데 건설노동자 48%가 임금체불에 시달리고, 비정규직, 해고 등 문제를 도민들도 많이 체감하고 있었다. 저희가 제주 현실에 필요한 부분을 잘 포착했다.

 

고은영 녹색당 제주도지사 후보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고은영 녹색당 제주도지사 후보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제주도는 여성 정치인에게 어떤 곳인가.

설문조사로는 연령대는 2030세, 성별로는 여성이 1.5배 많았다. 제주 여성 최초 여성 도지사 후보라는 점 때문인지 여성들이 처음부터 끝까지 응원해주셨다. 여학생들에게 인기가 많아 놀랐다. 눈만 마주쳐도 소리 지르더라. 길에서 마주친 어머니 연배의 여성분들의 호응에 감동받았다. 제주도 여성들은 경제력도 있고 가정을 이끄는데 더 많은 역할을 했지만 사회 참여는 오히려 더 저조했다. 아직도 마을 제사는 완경 이후 여성만 들어갈 수 있다. 불길하다는 이유에서다. 이장은 마을 제사를 집전하는데, 200명이 넘는 이장 중에 여성은 1명뿐이다. 여성 도의원은 2014년에야 처음 선출됐다. 저는 “여자만 아니었으면 뽑았을 텐데”라고 하는 말도 들었다. 이런 지역 정서 속에 숨 막히게 살아온 어머니들이 저를 더 지지하신 것 같다.

평범한 여성에서 정치인으로서 거듭나는 경험은 어떻나?

제주가 좁은 사회다 보니 시민사회, 지역연대와의 관계성이 더욱 중요한데, 진보 후보는 저 혼자라서 대표성을 갖는 게 사실 두려웠다. 그러면서 노동자, 여성농민 등 지역사회에서 하나의 좌표가 된 분들을 따라 그길로 가겠다는 생각을 갖게 됐다. 정신 차리고 보니 저도 누군가의 좌표가 돼 있구나 싶더라.

여성 정치가 낙후된 지역이 제주만이 아닐 거다. 블루오션이라 생각한다. 다들 도전하시라고 말씀드리고 싶다. 제가 가진 역량을 저도 잘 몰랐고 주변 사람들도 잘 몰랐다. 지역을 바꿔보자 하는 분들은 정치 참여를 선택지로 남겨놨으면 좋겠다. 아직 피선거권이 없는 주변의 영페미니스트들도 권력의지를 갖기 시작했다. 자기를 밀어달라고 하는 모습을 보면 제2, 제3의 고은영들의 미래가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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