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원 “KTX 판결은 집단지성 결과” 참고자료 언론에 배포

승무원들 “대법원 자정 의지·능력 없다는 것 드러냈다“ 비판

 

김승하 KTX 승무지부 지부장이 21일 서울 서초구 대법원 정문 앞에서 열린 ‘사법농단 수사의 변호사를 자처한 대법원 규탄 긴급 기자회견’ 후 대법원 표지석에 사법정의는 죽었다는 의미로 흰 국화를 던지고 있다.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김승하 KTX 승무지부 지부장이 21일 서울 서초구 대법원 정문 앞에서 열린 ‘사법농단 수사의 변호사를 자처한 대법원 규탄 긴급 기자회견’ 후 대법원 표지석에 사법정의는 죽었다는 의미로 흰 국화를 던지고 있다.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대법원이 ‘재판거래’ 의혹에 대해 “집단지성의 결과”라며 해명에 나서자 비판이 쏟아지고 있다. 특히 판결 당사자인 KTX 해고 여승무원들은 “대법원이 사법농단 의혹을 은폐하고 ‘변호사’ 역할을 자처하고 나섰다”며 강력하게 비판했다.

철도노조 KTX열차승무지부와 KTX 해고승무원 문제해결을 위한 대책위원회는 21일 오전 서울 서초구 대법원 앞에서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제대로 된 검찰 수사와 제대로 된 판결을 기대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재판거래 의혹과 관련된 대법관과 법원인사들의 즉각 퇴진을 요구한다”며 이같이 밝혔다.

앞서 20일 대법원은 ‘KTX 여승무원 사건 관련 정리’라는 제목으로 당시 상황과 법리 등을 담은 참고자료를 언론에 배포했다. 당시 KTX 여승무원들과 코레일 사이의 ‘근로계약 관계’를 인정할 수 없었다는 취지였다. 대법원은 이 참고자료에서 “해당 사건은 관여 대법관 전원이 심혈을 기울인 사건”이라며 “재판연구관실의 집단지성과 대법원 소부 재판관 전원의 의견이 일치했다”고 주장했다.

 

김승하 KTX 승무지부 지부장이 21일 서울 서초구 대법원 정문 앞에서 열린 ‘사법농단 수사의 변호사를 자처한 대법원 규탄 긴급 기자회견’ 에서 발언하고 있다.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김승하 KTX 승무지부 지부장이 21일 서울 서초구 대법원 정문 앞에서 열린 ‘사법농단 수사의 변호사를 자처한 대법원 규탄 긴급 기자회견’ 에서 발언하고 있다.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KTX 해고 승무원들은 “대법원 해명자료는 결국 ‘대법관과 재판연구관들이 머리를 맞대 애써서 내린 판결이니 재판거래로 보지 말라’는 것인데, 대법원이 스스로 자정할 의지도 능력도 없다는 것을 확인한 것”이라고 규탄했다.

그러면서 이들은 “당시 대법원은 승무 업무가 코레일의 지시로 이뤄진다는 증거였던 열차팀장의 진술, 각종 규정, 업무매뉴얼, 지침을 모두 무시했다”며 “(당시 판결은) 재량적 판단이었으며 정치적인 판단이었을 뿐”이라고 지적했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민변)도 이날 논평을 내고 “검찰이 수사 협조를 요청한 마당에 대법원은 검찰에 내야 할 의견서를 굳이 국민에게 보여주고 있다”며 “여론을 호도하고 검찰 수사에 영향을 주려는 의도가 다분하다”고 비판했다.

민변은 “현재 재판 거래 의혹은 재판 자체가 거래의 대상이 됐다고 의심받는 사실만으로도 헌법에 반하는 초유의 사건”이라며 “대법원은 해명자료를 철회하고 재판 거래 의혹이 된 개별사건에 대한 해명 대신 진상규명과 수사협조에 나설 것을 촉구한다”고 강조했다.

다음은 기자회견문 전문이다.

대법원은 사법농단의 변호사 되기를 멈추라!

6월 20일 대법원은 “KTX 여승무원 해고사건”에 대한 해명자료를 배포했다. 해명자료에 따르면 ‘KTX 여승무원 사건은 새로운 법리 선언이 예정된 사건’으로서 관련 대법관 전원이 심혈을 기울였으며, 재판연구관실에서 집단지성에 의해 심층연구와 검증을 거쳤다고 주장했다. 결국 대법관과 재판연구관들이 머리를 맞대고 애써서 내린 판결이니 ‘재판거래를 한 것’으로 보지 말라고 요구하는 것이다. KTX 해고승무원들과 대책위원회는 사법농단의 당사자인 대법원의 해명자료를 보며, 스스로 자정할 의지도, 능력도 없다는 것을 확인한다. 사법농단에 대한 제대로 된 수사와 처벌, 그리고 재심만이 문제 해결의 방법이다.

해명자료에서는 묵시적근로계약관계와 불법파견 모두를 인정하지 않은 것은 “근로관계의 실질에 따라” “노무도급의 요소가 파견보다 우세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대법원은 승무업무가 철도공사의 지시에 의해 이루어진다는 실질적인 증거였던 열차팀장의 진술, 각종 규정, 업무매뉴얼, 지침을 모두 무시했다. ‘노무도급의 요소가 파견보다 우세하다’는 판단은 그야말로 재량적 판단이었으며 정치적인 판단이었을 뿐이다. 이 판결은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에서 선정한 ‘2015년 최악의 판결’이었고, <한겨레21>과 법학교수, 변호사, 시민단체 활동가들이 함께 선정한 2015년 ‘문제적 판결’에도 포함되어 있었으며, ‘양승태대법원장 시절의 문제 판결’에도 선정된 바로 그 판결이다.

잊은 것 같아 다시 말한다. 2015년 11월 19일 임종헌 법원행정처 차장이 직접 작성한 ‘상고법원의 성공적 입법 추진을 위한 BH와의 효과적 협상추진 전략’ 문건에서 “사법부가 대통령과 청와대의 원활한 국정운동을 뒷받침하기 위해 권한과 재량 범위 내에서 최대한 협조해온 사례”이자 “노동시장 유연성 확보와 바람직한 노사관계 정립을 위해 노력했다”고 말한 판결이 바로 KTX 승무원 판결이다. 이 판결로 해고 승무원들은 12년동안 거리에서 싸워야 했고, 명의 승무원은 목숨을 잃었으며, 현직 KTX 승무원들은 비정규직이 되어 나쁜 노동조건에 시달렸고, 승객들은 승무원이 안전업무를 하지 않는 위험한 KTX에 타게 되었다. 당신들이 정당화해준 우리 시대의 지옥도이다. 사법부의 독립성을 스스로 버리고, 정권의 눈치를 보며 판결한 당사자들이 어디에서 ‘집단지성’ 운운하며 피해자들을 우롱하는가.

지금 대법원에는 2015년 KTX 승무원 판결의 주심이었던 고영한이 대법관으로 있다. 2016년 2월부터 2017년까지 법원 행정처장을 맡았으며 재판거래 의혹 당사자로 지목된 이 중 한 명이다. 재판거래 당사자가 속해있는 대법원이, 바로 그 당사자가 주심이었던 판결에 대해 ‘재판거래가 아니라는 해명자료’를 내는 것은, 이 법원이 오만함을 보여줄 뿐이다. 대법원이 사법농단 수사의 변호사를 자처하고 나선 상황에서, 제대로 된 검찰 수사와 제대로 된 판결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우리는 재판거래 의혹과 관련된 대법관 및 법원인사들의 즉각 퇴진을 요구한다. 김명수 대법관이 사법살인의 변호사가 되기를 자처하지 않기를 바란다. 우리는 사법농단의 피해자로서 진실이 밝혀지고 잘못된 것이 바로잡힐 때까지 싸울 것이다.

2018년 6월 20일

KTX 열차승무지부

KTX 해고승무원 문제 해결을 위한 대책위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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