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지예 녹색당 전 서울시장 후보

정치인 소명은 약자 위한 것 확신

이렇게 공격받을지 몰랐지만

이번 선거 통해 오히려 용기 생겨

녹색당 강령에 페미니즘 담겨있어

독일녹색당 페트라 켈리가 롤모델...

“여성이 정치하고 권력 잡게 되면 

생태, 탈핵, 생명을 살리는 정치로”

더 많은 여성이 정치에 나서고,

페미니즘이 기반될 수밖에 없어

고은영·신지예의 표, 미래가치에 준 것

21대 총선, 원내진입 목표

중학교 때부터 두발자유운동...

하자작업장 조한혜정·김희옥 영향

그때 여성신문 접해 멋진 여성들 봐

최근 서울시장 선거에서 녹색당 신지예 후보가 1.67%, 정의당 김종민 후보(1.64%)를 제치고 4위에 오른 일은 이번 6·13지방선거를 통틀어 손꼽히는 사건이다. 정의당은 스타급 정치인을 포함해 6명의 국회의원이 속한 원내정당이다. 녹색당은 예나 지금이나 기초의원 한 명 배출한 적 없는 소수 정당이다. 서울시 광역의원의 비례대표 의석을 배분하는 선호 정당 투표에서 정의당이 9.7%, 녹색당이 0.8%을 받은 사실을 고려하면 신지예 후보의 존재감은 더욱 부각된다. 게다가 선출직 선거에 처음 출마한 20대 정치 신인으로서 청년정치를 표방하며 처음 출마한 우인철 우리미래당 후보의 득표율 0.23%과 비교하면 더욱 그렇다.

6월 13일 저녁, 서울 신촌의 한 지하 맥주집을 지방선거 개표 방송을 보기 위해 모인 신지예 서울시장 후보 선거운동 남녀 자원봉사자 20여명이 가득 채웠다. 청년들의 눈빛이 어둑한 홀에서 흥분으로 반짝였다.

신 후보는 들뜬 분위기 속에서도 침착했다. 그는 “이번 선거에서 희망을 봤다고 했다”고 했다. 두 가지 측면에서다. “얼마만큼 득표하느냐보다 페미니즘 정치에 젊은 여성들이 열망하고 있음을 선거 기간 동안 계속 느꼈다”고 했다. 또 정치가 변하고 있음을 실감했다고 했다. “정치인의 변화보다 시민들 유권자 변화가 먼저 일어나고 있다”는 생각에서다.

본인의 득표율에 대한 평가는 이랬다. “1.7% 득표율은 아쉽다. 남북정상회담, 북미정상회담, 월드컵까지 시민들까지 지방선거에 관심이 늦게 시작돼서 딱 2주만 선거운동을 한 것 같다. 이같은 상황에서도 페미니스트 정치를 잘 드러내게 하고 페미니즘을 소개하고 여성정치가 무엇인지 얘기하게 돼 기뻤다. 벽보와 현수막으로 서울 곳곳에 페미니스트라는 다섯 글자를 새겨넣고 싶었다. 더 이상 숨기거나 주홍글씨로 감춰는 게 아니라 공공영역을 드러내고 누구나 페미니스트가 돼야 한다는 얘기를 하고 싶다. 목표치를 반쯤 달성했다.”

선거 이틀 후 다시 그를 만났다. 이번엔 그가 대표로 있는 서울 망원동 ‘오늘공작소’에 찾아가 그의 학창 시절, 녹색당 간판 정치인이자 오늘공작소 대표로서의 현재, 정치인으로서 전망에 대해 들어봤다.

 

중학생 때 사회 운동을 시작했고 남들과 다른 교육과정을 거쳤다

중학교 때 두발 자유 운동, 청소년 인권운동에 뛰어들었다. 여자중학교에 입학하게 됐는데 교복을 입고 머리 길이를 규제하는 등 불합리한 일이 많아 바꿔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노무현 정권 때였고, 민주노동당 활동을 조금 했다. 교육청이 모든 학교에 하달하기를 교칙을 학교 교사, 학생, 학부모가 함께 정하게 했다. 저는 그것도 문제적이라 생각해서 고등학교는 대안학교에 갔다. 하자작업장인데 1세대 페미니스트들이 만든 학교였고, 조한혜정·김희옥 선생님 등 많은 여성 선생님을 만나 영향을 받았다. 재미있었고, 청소년기를 좋은 텃밭에서 자랐다. 대학은 사이버대학교를 선택했다. 대학을 갈 수 있었지만, 대안적 삶을 살고픈 사람으로 불복하는 뜻에서 선택했다. (정규)대학을 졸업하지 않고도 살 수 있음을 보여주기 위해서다.

오늘공작소는 어떤 일 하는 곳인가?

하자작업장을 졸업하고 19살 때부터 돈을 벌기 시작했다. 4년 정도 사회적 기업에서 일했다. 사회적 기업도 어쨌든 제1 가치가 이윤 창출인데 한계를 느껴 그만 두고 뜻맞는 친구들과 모여 오늘공작소를 만들었다. 50만원 비즈니스를 하게 됐다. 후지무라 야스유키가 주장한 ‘3만엔 비즈니스’다. 현대사회 문제들은 많이 일하는 것에서 발생한다고 했다. 본업이라는 개념이 인류사적으로 최근 매우 짧은 기간에 쓰이기 시작한 거다. 일보다 중요한 것은 쉬고 놀고 공부하는 것이다. 많이 벌기 위해 많이 일하는게 아니라 적당히 벌고 많은 시간을 가지면서 더 나은 삶을 영위하는 거다. 50만원만 벌겠다는게 아니라 각자가 어떤 삶을 살고 싶고, 그러기 위해서 최소 얼마만큼의 돈이 필요한지에 대해 고민을 해서 200만원이든 250만원이든 비즈니스를 만든다. 다양한 삶의 방식으로 그때그때 필요한 일을 한다. 기술교육 인문학교육도 하고 자전거 용접해서 만들고 3D프린터로 부속품을 만들고 있다.

정치에 입문하게 된 계기는?

2012년도 녹색당 창당 때 가입했다. 2015년에 대의원을 일반 당원들을 대상으로 무작위 추첨해 선출하는데 운 좋게 뽑혔다. 정치를 할 수밖에 없겠다는 생각이 든 건 2016년 총선 전 했던 프로젝트 때문이다. 지역의 할머니들과 함께 사는 프로젝트인데 제가 사는 마을이 재건축으로 인해 없어지게 됐다. 할머니들은 엄연히 자기 소유 집에 사는데도 재건축법 때문에 쫓겨나 뿔뿔이 흩어지는 현실을 봤다. 나 혼자 평화롭게 살고 싶다고 해서 가능한 게 아니라 법이 바뀌어야 한다. 정치를 할 수밖에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2016년 총선에 녹색당 비례대표 5번으로 출마했다.

2년 전 총선과 이번 시장 선거 경험은 크게 달랐을 것 같다.

이번 선거를 통해 용기가 많이 생겼고 성장했다고 느낀다. 정치인으로서 유권자들을 많이 만나기는 처음이다. 비례대표는 명함 나눠주는 것만 허용되기 때문에 마이크조차 못 잡았었다. 이번에 연설하면서 유권자 분들을 만나 손을 잡으면서 막연하게만 생각했던 정치에 대한 상이 더 뚜렷해졌고 정치인의 소명은 약자 소수자를 위한 것이라는 믿음이 확고해졌다.

특히 페미니스트임을 정치 전면에 드러낼 때 이렇게 심한 공격들이 들어올 거라고 예상못했다. 사진이 시건방지다는 말을 들었고 벽보가 훼손됐다. 이 과정에 시민들이 더 힘을 주셨다. 페미니스트라고 얘기 못했는데 용기를 얻었다고 하는 분들이 많았다. 이 과정에서 용기도 얻고 페미니즘에 대한 확신도 생겼다.

선거에서 페미니즘을 내세울 정도면 원래 용감한 성격 아닌가.

페미니스트가 2~3만명 정도라 생각했는데, 더 많은 분이 공감하셨고, 페미니스트가 되고 싶다는 사람이 많다는 것을 체감했다. 선거 운동하는데 한 중년 남성이 페미니즘에 관심이 없었는데 딸이 태어나면서 성폭력과 성차별 없는 사회에서 살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면서 본인도 페미니스트가 되고 싶어 공부 중이라고 하시더라. 그걸 보면서 성별에 상관없이 사실은 모두가 다 페미니스트가 돼야 한다고 생각했다. 중·고등학생 (여성)친구들이 대통령하고 싶다고 말하더라. 제 생각보다 훨씬 큰 가능성이 있다고 본다.

정치에 입문하면서 영향을 받은 사람이 있다면.

독일녹색당을 이끈 여성 정치인 페트라 켈리다. 원체 매력적인 인물이고 용기있게 녹색 정치를 펼쳐왔다. 그도 페미니스트이고 녹색당의 강령에도 페미니즘이 담겨있다.

 

녹색당을 환경을 1순위로 아는 이들이 많지 않나. “왜 페미니즘이냐”라는 말을 듣진 않았나.

저도 공격을 들을 것 같았다. 어떻게 해명하고 있을까 걱정도 했다. 그런데 당내에 계셨던 분들이 오히려 더 드러내면 좋겠다고 했다. 페트라 켈리의 생각은 여성이 정치하고 권력을 잡게 되면 당연히 생태, 탈핵, 생명을 살리는 정치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고 봤다. 여성적 가치를 실현하게 되면 녹색당과 이어질 수밖에 없다. 즉 녹색당이 여성주의를 가져갈 수밖에 없다. 더 많은 여성이 나서면 바뀔 수밖에 없고 페미니즘이 기반이 될 수밖에 없다. 녹색당은 페미니즘이 후보가 아니면 출마할 수 없기도 하다.

지지 발언한 노혜경 시인이, 신 후보의 당선 여부에 관계없이 득표율 자체가 정치권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했다. 1.7%로 정치권에 영향을 미칠 수 있을까.

실질적으로 여성 정치를 논의하기 시작하는 시점이 곧 올 것이다. 기성 정치권에서 여성이 많이 배출될 것이다. 여성 공천 30%, 50% 받았다고 해서 정치권이 얼마나 변할까 의문이다. 그 자체가 가부장적이다. 여성을 간택한다고 하지 않나, 그들의 카르텔을 따르지 않으면 배제당한다.

투트랙으로 가야한다. 수적으로 늘어나야 하지만 의회에서 여성정치를 실현하는 정당을 얼마나 만들 것인가. 이번 지방선거에서 동시에 드러내고 선택받은 거라 생각한다. 기존의 원내 정당에 들어가서 페미니스트임을 드러내도 더 많은 표를 받았을 것이다. 그러나 그게 정당의 방향성은 아니다.

2020년 총선에서 원내 진입하겠다고 밝혔는데 넘어야할 게 많다.

첩첩산중은 맞다. 선거법 개혁이 어느 정도 될지는 회의적이다. 더불어민주당과 자유한국당의 정치 개혁을 위한 노력이 필요한데 쉽지 않다. (제도가 개혁되지 않는 상황에서) 녹색당이 정치 기반을 마련하기 위해서는 더 많은 시민들에게 당을 알리고 대중적 지지를 얻어야 한다. 서울에서 정의당의 높은 비례득표율은 우리에게 가능성을 보여준 것이다. 시민들이 왜 고은영, 신지예에게 표를 줬나. 미래 가치에 표를 던진 거다. 2020년까지 2년 동안 우리가 미래권력이 아닌 현실권력이라는 믿음 주는 게 중요하다고 본다.

여성 정치 인재 육성은 여성계의 오랜 과제다. 녹색당이 그 역할을 할 수 있을까.

지방선거에 출마한 우리당 후보 중 여성이 78%를 차지했다. 여성 전략공천을 한다거나 단수공천을 한 것도 아니고 여성을 뽑아야한다는 기조가 있었던 것도 아니다. 당원에 여성이 더 많고 여성과반대표제를 하고 있다. 여성들이 맘껏 할 수 있는 곳이다. 교육도 중요한데 여성정치인이 더 많이 배출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다양한 기조를 중심으로 평등문화약속문과 여성과반대표제를 지키다 보면 자연스럽게 이뤄질 거라 생각한다.

여성신문 독자들에게 한 말씀

창간 30주년 축하드려요. 50년까지 가자 쭉쭉! 저는 여성신문을 하자작업장 다닐 때부터 봤어요. 여성신문 기자들과 여성신문이 다루는 인물들을 보면서 멋진 여성 어른들이 존재하고 그들의 삶을 엿보면서 나도 저렇게 살아가겠다는 생각을 해봤어요. 여성신문이 새로운 페미니스트들이 등장할 수 있는 마중물 역할을 해주었다고 생각합니다. 연대해나가면서 좋은 정치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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