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거리 장식하는 외래종 꼿들

팬지와 페추니아도 예쁘지만

봉선화·채송화·나팔꽃·접시꽃은

어릴 적 추억을 떠오르게 한다

 

봉선화 ⓒ김경애 편집위원
봉선화 ⓒ김경애 편집위원

요즘 길거리를 장식하는 꽃은 이른 봄 팬지를 시작으로 한여름에는 페추니아에 이르기까지 대부분 외래종 꽃이다. 다 예쁘다. 그래도 어릴 적 흔히 본 것들이 도심에서 사라져버린 것이 서운하다. 그래서 나는 어릴 적 보던 꽃들을 나의 마당에 심고 싶었다. 지금 우리 마당에는 접시꽃이 활짝 피었고 채송화, 나팔꽃, 봉선화는 피기 시작했고 분꽃은 열심히 몸집을 키우고 있다.

나에게 잊지 못할 채송화는 어린 시절 우리 집 마당의 시멘트 틈 사이에서 피어난 꽃이다. 대문에서 집안에 들어서는 길을 포장했던 시멘트 바닥의 부서진 틈 사이로 채송화가 피어났다. 생물이 살 수 없는 시멘트 길에서 자신이 살아갈 틈을 발견하고 용케도 자리를 잡고 꽃을 피운 놀라운 생명력은 기적을 보는 것 같은 경이로움을 안겨줬고 오래도록 기억에 남았다. 그래서 마당에 꼭 채송화를 심어 키우고 싶었다. 꽃집에서 채송화를 팔지만 개량종으로 내가 어릴 때 보던 그 채송화가 아니었다. 내가 오랫동안 그리던 채송화를 발견한 것은 안동 하회마을 길가에서였다. 어느 해 8월 말 학회 회원들과 국제학술대회에 참여한 외국 학자들을 안내해서 그 마을에 갔다가 길거리에서 발견한 나의 옛 채송화는 씨앗을 담뿍 맺고 있었다. 그 씨앗을 몇 알 채집하고 와서 정성 들여 심었다. 그 채송화들이 지금 우리 앞마당 한쪽을 메우고 크고 있다.

채송화는 한여름에 아침부터 피지만 햇살이 지나가면 얄밉게도 금방 꽃잎을 오므린다. 꽃이 지면 그 하나하나마다 씨앗을 맺는다. 한 번 피어나면 그 이듬해 씨앗을 다시 뿌리지 않아도 떨어진 씨앗이 싹을 잘 틔운다. 채송화는 꽃이 피어있을 때도 줄기 중간을 따서 이식해도 꽃을 그대로 피우고 뿌리를 내려 번식한다. 생명력이 강하다. 시멘트 틈에서도 살아날 만큼 생명력이 강한 것이 채송화이지만 아파트 베란다에서는 토종 채송화는 자라지 못한다. 채송화는 햇볕과 물 그리고 흙이 있어야 하지만 또한 바람이 꼭 있어야 자라는 꽃이다.

우리 또래는 여름이 되면 봉선화로 손톱에 물들인 추억을 너나 할 것 없이 간직하고 있다. 그래서 봉선화는 어린 시절에 대한 향수와 가장 크게 맞닿아 있는 꽃이다. 나는 봉선화를 보면 가끔 “울 밑에 선 봉선화야”하는 구슬픈 노래가 떠오른다. 조병옥 박사가 이승만 박사에 대항해 대통령에 출마했다가 선거 도중에 사망하자,

부산 중심지에 있었던 나의 초등학교의 강당에서 지역 추모행사가 열렸는데, 여자 가수 누군가가 이 노래를 불렀고, 수업 중이던 우리 반까지 울려 퍼져 나는 생음악으로 처음 들었다. 나라 잃은 우리 민족의 슬픈 처지를 빗대어 이 노래를 지었다는데, 지금 우리 마당에 피어있는 봉선화는 그리 슬퍼 보이지 않는다. 한반도 평화에 대한 기대와 희망에 차 있는 시점이어서 그런가?

우리 마당에는 봉선화가 갖가지 색으로 서리가 내릴 때까지 핀다. 작년에 봉선화가 텃밭에 자리를 잡고 피어 거름 때문인지 줄기의 직경이 5㎝가 될 정도로 실하게 크고 꽃을 무성하게 피운 것도 있다. 올해는 한 꽃잎에 핑크와 흰색이 섞여 있는 봉선화를 정착시키기 위해 씨앗을 몇 알 받아 화분에서 키우다가 모종으로 마당에 옮겨 심고 애지중지하면서 매일 관찰하고 있다. 이 꽃 씨앗은 몇 해 전 8월 말경 길거리에서 사람들에 치여 쓰러져 있는 봉선화에서 겨우 몇 알의 씨앗을 받아다 심었는데 한 그루가 살아 꽃을 피웠다. 꽃대에 표시했다가 다시 씨앗을 받았다. 다른 봉선화와 생존경쟁에서 질까 봐 화분에서 싹을 틔워 마당에 심었더니 다른 봉선화보다 느리게 성장했지만 꽃을 피웠다. 봉선화는 어디서나 잘 자라고 씨앗이 떨어져 그 이듬해에도 싹을 잘 틔운다.

 

나팔꽃 ⓒ김경애 편집위원
나팔꽃 ⓒ김경애 편집위원

나팔꽃은 여름이면 여기저기서 혼자 저절로 피어나는 낯익은 꽃이다. 그러나 아파트 살이와 함께 잊힌 꽃이 됐다. 우리 집 마당에는 여름이면 작고 연하고 진한 보라색, 그리고 빨간 나팔꽃이 어우러져 아침마다 피어나고 한낮이 되면 입을 오므린다. 나팔꽃은 노래와 얽혀서 생각나는 또 다른 추억의 꽃이기도 하다. “아침에 피었다가 저녁에 지고 마는 나팔꽃”이라면서 짧은 사랑에 비유하지만, 실은 아침에 피었다 한낮이 되면 오므렸다 다음날 다시 피어나, 오래 지속되는 사랑인 것이다.

그런데 요즈음에는 낮에도 활짝 피어있는 나팔꽃도 있다. 빨간빛의 몸체에 흰 테두리를 하고 송이도 큼지막하게 생긴 나팔꽃이 한강 변의 상암동 근처 공원과 경기도에 위치한 다산공원으로 들어가는 길목에도 탐스럽게 한낮에도 그 꽃잎을 활짝 열고 있었다. 예쁘다고 감탄해 마지않자 상암동에 사는 친구가 그 나팔꽃 씨앗을 받아줬다. 그런데 관심을 가지지 않아도 늘 혼자 알아서 저절로 싹을 틔우고 꽃을 피우던 나팔꽃이 소식이 없었다. 나팔꽃은 생명력이 강해서 아무데나 마구 피어나는 꽃인 줄 알았더니 그것이 아니었다. 꽃을 맺은 송이마다 5~6개의 씨앗을 맺는 것은 그만큼 씨앗이 싹을 틔우기가 어렵기 때문인 것이 아닐까 하는 깨달음을 얻는다.

양평에 사는 친구 집에 놀러 갔더니 담벼락에 이 빨강 나팔꽃이 화려하게 꽃 피어 있는 것을 보고 부러워서 징징대었더니 씨를 받아 한 줌을 주었다. 그 씨앗을 여기저기 야심 차게 뿌렸는데 잘 올라와 작년에 한 벽이 온통 빨간 나팔꽃이 차지하였다. 올해도 줄기를 열심히 하늘을 향해 뻗어가고 있다.

지금 시골길에는 접시꽃이 만발하다. 내가 접시꽃을 처음 본 것은 어릴 때 이모 집 마당에서 였다. 부산 송도 바닷가 근처에 사셨던 이모네 마당에 접시꽃이 가득 피어있었다. 사라호 태풍으로 집이 물에 잠기고 난 후 위문 차 어머니와 함께 이모 집에 갔을 때 위문은 잊고 접시꽃만 들여 보았다. 그 후에 다시는 이모 집에 가보지 못했고, 접시꽃도 잊었다. 그런데 시골 길가에 접시꽃이 예쁘게 피어있는 것을 보고는 그 아름다움에 조바심 나서 씨앗이 맺을 즈음에 씨앗을 받으러 와야지 하고 다짐하지만 시기를 놓쳐버렸다. 그런데 남편이 친구에게 부탁하여 서류 봉투 한가득 씨앗을 얻어왔다.

 

접시꽃 ⓒ김경애 편집위원
접시꽃 ⓒ김경애 편집위원

신나서 마당 가장자리를 따라가면서 씨앗을 뿌렸다. 첫해는 씨앗이 싹을 틔우고 가지를 올리고 잎을 보여주었지만 꽃을 피우지는 않았다. 접시꽃은 첫해는 뿌리를 내리느라 바쁜 것이었다. 그 이듬해가 되었을 때 우리 마당은 접시꽃이 다 차지한 것 같이 꽃이 무성하게 피었다. 그러나 마당 가장자리에 붉은색과 핑크색의 접시꽃이 일시에 피어나자 꽃들이 위협적으로 보이기까지 했다. 더군다나 가장자리에 있던 상사화가 꽃을 피우지 않는 것이었다. 접시꽃을 일부 뽑아내기로 했다. 남편은 무엇이든 바꾸는 것을 달가워하지 않아 남편이 출타한 틈을 타 접시꽃 뿌리를 캐내기 시작했다. 첫해 일 년 동안 접시꽃이 무엇을 했는지 알게 되는 순간이었다. 뿌리가 엄청나게 깊고 또 넓게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혼자 뿌리를 파내느라 정말 힘들었다. 그런데 흰색 접시꽃이 별로 없어 뿌리를 캐낼 때 그대로 두었으나 그다음 해에 나지 않는 것이었다. 그렇게 강해 보이는 접시꽃도 생존경쟁에서 지는 경우도 있다. 흰색 접시꽃 옆에는 벌개미취와 초롱꽃과 야생 나리가 함께 있었는데 이 꽃들과의 경쟁에서 져버렸다.

분꽃은 어릴 때 소꿉놀이에 필수품이었다. 분꽃은 해마다 꽃을 피워, 늘 그곳에 있는 꽃으로 관심이 없었고 까맣게 맺히는 씨앗에 더 관심이 많았다. 까만 씨앗을 부수면 하얀 가루가 나오는데, 여름 방학이면 이것으로 화장품을 만드는 놀이를 하면서 놀았다.

그런데 이제는 이 놀이를 할 필요가 없이 화장품이 많지만, 요즘 새삼 그 꽃의 아름다움에 경탄하곤 한다. 분꽃은 해가 지고 밤이 어두울수록, 또 새벽에는 더더욱 아름답게 피어있다. 밤에 피는 빨강색 분꽃은 요염하기까지 하다. 이제 나이 들어가며 이 생각 저 생각에 잠이 오지 않는 여름밤에 분꽃은 아름다움을 뽐내며 함께 해준다. 걱정 없이 쏟아지는 잠에 곯아 떨어졌던 어렸을 적에는 이 밤에 아름답게 피어난 분꽃을 보지 못했던 것이다.

우리 마당에 피어있는 분꽃은 노란색과 붉은색이 섞인 꽃송이가 대부분이다. 그런데 그 색 배합이 꽃송이마다 달라서 그 모습을 보고 있으면 어찌하여 자연이 이렇게 아름답게 색을 섞는지 놀랍기만 하다. 어릴 때 보았던 서커스단의 펄럭이는 깃발이 이 분꽃의 색깔을 본뜬 것이 아닐까 싶다.

팬지와 페추니아도 예쁘지만 봉선화와 채송화, 나팔꽃과 접시꽃, 그리고 분꽃이 있는 동산이 서울 모퉁이 어디에라도 있으면 바쁜 우리가 어릴 적 추억에 잠시라도 잠기면서 마음을 놓을 수 있지 않을까 싶다. 특히 봉선화를 추억 속에 가두지 말고 여기저기 심어놓고 젊은이와 나이든 이가 함께 손톱에 물들인다면 세대를 아우르는 추억을 쌓게 되지 않을까? 씨앗 받아 보관하는 일은 성가신 일이라 더 이상 하지 않지만, 그래도 누군가 이 꽃들을 심겠다고 할 때를 대비해서 씨앗을 받아야 하나 싶다.

저작권자 © 여성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