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일(현지시간) 아르헨티나 하원 의회는 임신 14주까지 낙태를 허용하도록 하는 내용의 법안을 가결했다. 법안이 통과된 순간, 의회 밖에 모여 임신중절 합법화를 촉구하던 여성들은 환호했다. ⓒ유튜브 영상 캡처
14일(현지시간) 아르헨티나 하원 의회는 임신 14주까지 낙태를 허용하도록 하는 내용의 법안을 가결했다. 법안이 통과된 순간, 의회 밖에 모여 임신중절 합법화를 촉구하던 여성들은 환호했다. ⓒ유튜브 영상 캡처

아일랜드 ‘낙태죄 폐지’ 국민투표에 이어

아르헨티나 하원, 14주내 임신중절 허용 법안 통과

상원 통과되면 대통령 서명 거쳐 시행 예정 

한국 ‘낙태죄’ 위헌심판 결정에 영향 미칠까

아르헨티나에서 임신 14주 이내에 임신중절을 법적으로 허용하는 방안이 추진되고 있다. 관련 법안이 하원을 통과해 상원에 제출됐고, 통과되면 마우리시오 마크리 아르헨티나 대통령의 서명을 거쳐 시행될 예정이다.

최근 국민투표로 ‘임신중절 금지법’을 폐기한 아일랜드에 이어 세계 여러 국가들은 여성이 임신중절할 권리를 더욱 확보하는 방향으로 법을 개정하는 추세다. 이 흐름이 한국 헌법재판소에서 진행 중인 ‘낙태죄’ 위헌법률심판 결정에 영향을 미칠지 주목된다.

 

임신 14주까지 낙태를 허용하도록 하는 내용의 법안이 14일(현지시간) 아르헨티나 하원 의회를 통과한 날, 수천 명이 의회 밖에서 임신중절 합법화 시위를 열고 있다. ⓒ유튜브 영상 캡처
임신 14주까지 낙태를 허용하도록 하는 내용의 법안이 14일(현지시간) 아르헨티나 하원 의회를 통과한 날, 수천 명이 의회 밖에서 임신중절 합법화 시위를 열고 있다. ⓒ유튜브 영상 캡처

가디언지, AP통신 등은 14일(현지시간) 아르헨티나 하원 의회가 임신 14주까지 낙태를 허용하도록 하는 내용의 법안을 찬성 129표, 반대 123표로 가결했다고 보도했다. 의원들이 찬반으로 나뉘어 23시간 동안 토론한 끝에 나온 “역사적 결정”이었다. 그동안 의회 밖에서는 찬반 시위대가 진을 치고 있었다. 법안 통과를 촉구하며 거리에서 밤을 지샌 시위대의 규모만 수천명에 달했고, 1만8000여 명이 유튜브 생중계로 지켜봤다. 법안이 통과되자 여성들은 환호했고 일부는 눈물을 흘렸다.

아르헨티나도 원래 한국처럼 형법상 ‘낙태죄’에 따라 원칙적으로 임신중절을 금했다. 산모의 생명이나 건강이 위험할 경우, 성폭행을 당해 원치 않는 임신을 한 경우는 예외였다. 그러나 매년 50만 건의 임신중절 시술이 이뤄지고, 위험한 불법 임신 중절 시술로 인한 산모 사망률은 전체의 30%에 달하는 등 부작용이 컸다(휴먼라이츠워치, 2009). 많은 아르헨티나 여성들이 임신중절이나 자연유산을 했다는 이유로 징역형을 받았다.

이번 법안 통과는 아르헨티나 여성들의 오랜 투쟁이 맺은 결실이다. 2005년과 2013년에 이어 아르헨티나에선 2016년부터 다시 전국적인 임신중절 합법화 운동이 벌어졌다. 올해 초부터 아르헨티나 여성들은 3·8 세계여성의날 등을 맞아 여성의 건강권·재생산권 보장을 요구하는 시위와 캠페인을 적극 벌였다. 온라인에선 ‘#AbortoLegalYa(임신중절은 이미 합법이다)’ ‘#AbortoSeraLey(임신중절은 법으로 보장될 것이다)’등 해시태그 운동도 이어졌다.

 

2016년 10월 19일(현지 시간) 아르헨티나 전역에서 ‘검은 수요일(Miercoles Negro)’ 시위가 열렸다. 수도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만 검은 옷을 입은 여성 수천 명이 사상 첫 파업 시위에 나섰다. 이날 멕시코, 볼리비아, 엘 살바도르, 우루과이, 칠레, 파라과이에서도 연대 시위가 열렸다. ⓒNi Una Menos 제공
2016년 10월 19일(현지 시간) 아르헨티나 전역에서 ‘검은 수요일(Miercoles Negro)’ 시위가 열렸다. 수도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만 검은 옷을 입은 여성 수천 명이 사상 첫 파업 시위에 나섰다. 이날 멕시코, 볼리비아, 엘 살바도르, 우루과이, 칠레, 파라과이에서도 연대 시위가 열렸다. ⓒNi Una Menos 제공

아르헨티나는 특유의 ‘마치스모(machismo·남성우월주의)’ 문화와 가톨릭 전통이 뿌리내린 나라다. 가톨릭 교회를 비롯한 근본주의·보수주의 세력은 출산·육아를 중심으로 한 여성의 전통적 역할을 강조하면서 임신중절 합법화 논의에 제동을 걸었다. 2015년 마크리 대통령이 집권하고 우파 성향 내각이 들어서면서 성교육 예산은 대폭 삭감됐다. 임신중절 유도약인 미소프로스톨 가격은 1박스에 2015년 40달러 수준에서 지난해 170달러 수준으로 치솟았다. 여성들의 분노는 더욱 커졌고, 페미니즘 운동은 더욱 깊고 넓게 퍼져갔다.

아르헨티나 페미니즘 연대체 ‘Ni Una Menos’의 창립 멤버인 세실리아 팔메이로(Cecilia Palmeiro)는 2016년 10월 여성신문과의 서면 인터뷰에서 “임신중절을 여성의 권리로 여기지 않고, 임신중절을 선택한 여성들을 처벌하는 것은 잔인무도하며 더는 용납할 수 없는 일”이라며 “대한민국의 자매들이여, 계속 싸워나가자. 우리는 페미니스트 혁명을 일으키는 중이다. 함께라면, 우리는 세상을 뒤흔들 수 있다”고 한국 페미니스트들에게 연대를 요청한 바 있다. (▶ [독점인터뷰-아르헨 페미니즘 연대체] “세계는 ‘페미니스트 혁명’ 중” www.womennews.co.kr/news/989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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