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미 정상의 역사적 만남

무너지지 않기 위해선

신뢰·협력의 진화 필요

 

 

미국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역사적인 정상회담을 마치고 공동합의문에 서명했다. 두 정상은 새로운 북·미 관계를 구축하고 지속적이고 안정적인 한반도 평화체제를 구축하는 문제와 관련된 이슈들에 대해 포괄적이고 진정성 있는 의견을 교환했다고 밝혔다. 트럼프 대통령은 북한에 대한 체제 안정 보장을 약속했으며, 김 위원장은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에 대한 굳건하고 확고한 의지를 재확인했다.

 

북·미 정상회담은 크게 세 가지 관점에서 조명해볼 수 있다. 첫째, 한반도 평화를 위한 놀랍고도 의미 있는 역사적 사건이다. 미국 언론들도 두 정상의 첫 만남이 적대관계를 해소할 계기를 마련했다는 데에 큰 역사적 의미를 부여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회담 후 문재인 대통령과의 전화 통화에서 “실무진에서는 이루기 어려운, 기대 이상의 성과를 거뒀다”며 “특히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훌륭한 대화 상대로, 이번 회담을 통해 돈독한 유대 관계가 형성됐다”고 강조했다. 문 대통령도 “북미 정상회담에서 성공적 결실을 맺어 한반도는 물론 세계 평화를 위해 큰 토대를 놓았다”고 평가했다.

둘째, 북한 비핵화 원칙이 바뀌었다. 그동안 미국이 거듭 강조해온 ‘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불가역적인 비핵화(CVID)’가 아니라 ‘완전한 비핵화’라는 표현으로 대체됐다. 하지만 공동합의문에 CVID를 포함시키지 않은 것은 미국 내 논란의 불씨가 될 수 있다. 이번 정상회담 준비 총책인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이 회담 직전까지 “CVID는 우리가 (북한으로부터) 수용할 수 있는 유일한 결과”라면서 “북미 정상회담의 최종 목표는 변하지 않았다”고 못 박았기 때문이다. 벌써부터 미국 일부 언론에서는 CVID보다 회담 자체가 목적이 돼 2005년 9·19 성명보다 후퇴했다는 비판마저 나왔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은 “우리는 그(비핵화) 프로세스를 매우 빠르게 시작할 것”이라고 거듭 강조했다.

셋째, 이번 회담의 성패는 앞으로 있을 후속 회담에서 양측이 얼마나 구체적인 이행 방안을 도출해내느냐에 달려있다. 후속 협상의 핵심은 결국 ‘비핵화 로드맵’이다. 게임 이론적 시각에서 보면 북·미 정상회담은 ‘원샷 게임’이 아니라 ‘반복 게임’의 성격을 갖는다. 통상 반복 게임의 성공 여부는 상대방에 대한 신뢰가 핵심이다. 북한이 보유한 핵을 언제, 어디까지 폐기할 수 있을지, 또 북한이 국제사회의 조건 없는 검증을 허용할지 여부가 상호 신뢰를 파악할 수 있는 결정적 계기가 될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제 북한 비핵화 과정이 시작될 것”이라면서 “김 위원장이 귀국하는 대로 비핵화를 향한 행보를 보여줄 것”이라고 밝혔다. 결국 김 위원장이 약속한 것을 실행하지 않으면 신뢰는 깨지고 미 정부는 ‘티포탯(Tit for Tat·눈에는 눈, 이에는 이)’ 전략을 쓸지도 모른다. 미국은 협조로 시작하지만 북한이 배반할 때는 가차 없이 그에 상응하는 복수를 가할 수 있다는 것이다. 북·미 정상의 역사적 만남이 이렇게 허무하게 무너지지 않기 위해선 당사자 모두 신뢰와 협력의 진화를 이뤄내야 할 이유가 여기에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북미 관계를 11월 중간 선거와 2020년 대선에서의 승리 등 자신의 이익만을 위한 수단으로 활용해서는 안 된다. 김 위원장도 이번이 북한을 변혁시킬 수 있는 마지막 기회라는 각오로 임해야 할 것이다. 지난 1989년 11월 9일 동서 냉전의 상징이었던 베를린 장벽이 무너졌다. 1991년 12월 26일 구 소련체제도 붕괴됐다. 6·12 북·미 정상회담도 마지막 남은 냉전시대를 종식하고 세계 평화와 번영을 위한 역사적 사건으로 기록되기 위해선 일희일비하지 않고 길게 호흡하며 나아가야 할 것이다. 시대정신이란 “한 시대에 지배적인 지적·정치적·사회적 동향을 나타내는 정신적 경향이다”. 그런데 현실 정치에선 실현하지 못했지만 반드시 이뤄내야 할 미래 가치다. 다시 말해, 현재가 우리 사회가 처한 상황을 진단하고 미래 방향을 전망하는 가치의 집약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과 통일은 국민 모두가 요구하는 시대정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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