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남] 마음 어루만지는 패션 디자이너, ‘톤즈’를 보듬다
[만남] 마음 어루만지는 패션 디자이너, ‘톤즈’를 보듬다
  • 이하나 기자
  • 승인 2018.06.12 14:29
  • 수정 2018-06-18 07:2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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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광희 사단법인 희망고 대표

톱 패션디자이너 40년

아프리카 구호활동 10년

최빈국 남수단 톤즈에

망고나무 4만그루 심어

주민 자립에 초점 맞춘

‘희망고 빌리지’로 확대

평생 약자 돌본 어머니 따라

‘엄마 마음’으로 시작해

“패션 디자인과 구호 활동

모두 사람 마음 살피는 일“

 

누군가에겐 한 입 거리인 과일이, 또 다른 이에겐 당장의 목마름과 굶주림을 달래줄 생명수가 된다. 아프리카 남수단 톤즈 주민들에게 망고는 생명수 같은 열매다. 모든 것이 말라붙는 건기에 삶을 지탱해주는 유일한 식량이자 재산이다. 최정상 패션디자이너 이광희씨가 망고나무 심는 일을 시작하고 사단법인 희망고(희망의 망고나무)를 세운 것도 톤즈를 살리는데 작은 힘이나마 보태고 싶어서였다. 2009년 시작한 아프리카 구호활동은 올해 햇수로 10년을 맞았다. ‘강산도 변한다’는데 10년이 지났지만 이광희 희망고 대표는 “처음처럼 하고 있다”고 했다. “변한 게 있다면 어려움에 있어서 편안해지는 것 정도”라며 그는 환하게 웃어 보였다. 이 대표는 담담히 말했지만 구호활동 경험이 전무한 사람이 비영리 사단법인을 세우고 10년을 이끈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최정상 패션디자이너가 아프리카 구호활동 전문가가 되기까지 그는 몸으로 부딪치며 변화를 만들어갔다.

이 대표가 처음 톤즈를 찾은 건 2009년 3월이다. 그가 처음 마주한 톤즈는 극심한 가뭄으로 메말라 있는 척박한 땅이었다. 배우 김혜자씨가 봉사활동 차 톤즈에 방문하는 자리에 따라나선 참이었다. “비행기만 네 번 갈아타고, 차로 비포장도로를 4시간을 달린 뒤에야 도착”한 톤즈는 오지 중 오지였다. 실제로 남수단은 2011년 7월 수단에서 독립했지만 2014년 ‘취약국가지수’ 1위를 기록할 만큼 열악한 곳이다.

당시 건기라 먹을 것이 없어 지쳐있던 사람들 사이에서 한 소년이 그의 눈에 들어왔다. 환한 표정의 소년은 어렵사리 강에서 잡은 물고기 한 마리를 들고 있었다. 이 대표가 장난 삼아 소년에게 “그 생선 나하고 나눠 먹을래?”라고 말하자, 소년은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생선을 건넸다. 놀란 것은 오히려 이 대표였다. 자신의 모든 것일 수 있는 생선을 낯선 이와도 나눌 수 있다니…. 그의 마음은 단번에 요동쳤다. “그 아이가 제게 자기 생선을 아낌없이 내밀었던 것처럼, 저도 그 사람들을 위해 뭐든 아낌없이 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이 대표는 “그 자리에서 수중의 돈을 털어 망고나무 100그루를 심었다”고 했다. 망고나무는 척박한 땅에서도 잘 자란다. 묘목을 심어 7년이 지나면 수확을 시작한다. 1년에 두 번 열매를 맺고 수명은 100년이나 된다. 망고나무는 한 번 심으면 100년 동안 먹거리를 내주는 희망의 나무인 셈이다. 손에 물고기를 쥐여주는 것이 아닌 물고기를 잡는 방법을 가르쳐주는 것이다.

이 대표는 여기서 멈추지 않고 한국으로 돌아와 사단법인 설립 준비에 박차를 가했다. “일회성 기부만으로는 톤즈의 빈곤을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 없다”고 봤기 때문이다. ‘희망고’라는 이름은 마케팅 전문가로 잘 알려진 남편 홍성태 한양대 경영학부 교수가 지어줬다. 그렇게 햇수로 10년이 지났다. 희망고는 지금까지 4만 그루의 망고나무 묘목을 톤즈 주민들에게 배분했다. 나무 심기를 넘어 주민들의 자립을 위한 복합교육기관 ‘희망고 빌리지’도 세웠다. 여기에 유치원부터 초등학교, 직업교육학교, 문화센터, 급식소가 모여있다. 이 대표는 “엄마들이 경제적으로 자립해야 가정이 살더라”며 처음 세운 여성직업교육학교를 시작으로 주민들이 필요로 하는 시설을 하나씩 세웠다. 여성들의 사회참여율을 높이기 위해 자치조직을 만들고 직업교육을 받은 주민들을 위한 창업지원사업도 추진하고 있다. 기금을 마련하기 위해 자선패션쇼와 바자회를 수시로 열었다.

10년을 쉼 없이 달려온 그는 올해 또 다른 도전을 진행 중이다. 이화여대 일반대학원 철학과로 입학해 서양철학을 공부하고 있다. 학부 때 봐야 할 책까지 한꺼번에 읽느라 하루가 모자를 정도로 바쁘다. 패션디자이너이자 아프리카 구호활동가에 대학원생까지, 1인3역을 하면서도 그는 힘든 내색 하나 없다. 이 대표는 “패션디자인과 구호활동, 두 가지 모두 사람의 마음을 들여다보는 일”이라며 “사람 마음을 더 알고 싶어 철학 공부를 시작했다”고 했다. 영부인과 정재계 유명인사의 옷을 짓던 이 대표는 사람 마음을 어루만지는 철학자에 더 가까운 듯 보였다.

 

-요즘도 톤즈에 자주 가시나요.

“일 년에 한두 번은 꼭 가고 있어요. 지난 2월에도 다녀왔어요. 방콕, 케냐를 거쳐 비행기만 네 번 갈아타고 갈 정도로 멀지만 갈 때마다 정말 좋아요. 이번에는 제 트렁크를 잃어버려 깜짝 놀랐지만, 어쩌겠어요. 시장에서 옷 사입고 현지 주민들처럼 편하게 있다 왔죠.”

-희망고가 햇수로 10년이 됐어요.

“벌써 그렇게 됐나 싶을 정도로 시간 개념이 별로 없어요. ‘내가 얼마만큼 했구나’ 이런 의식 없이 그냥 처음처럼 하고 있는 것 같아요. 달라진 게 있다면 어려움이 조금 편안해졌다는 것이죠.(웃음) 처음 톤즈에 도착해 공항 문을 나섰을 때를 잊지 못해요. 아무리 가난하고 열악해도 그 정도일 줄은 몰랐어요. 하필이면 건기 때라 땅은 모두 메말라 있고 건초더미만 뒹굴었어요. 그때 먹을 수 있는 건 망고 열매밖에 없어 망고나무 심기를 시작했던 거고요. 그런데 나중에 우기 때 톤즈에 와선 땅을 치고 웃었어요. 온통 땅이 초록색인 거예요. 풀 한 포기 살지 못할 줄 알았는데 말이에요. 만약에 우기 때 톤즈에 왔다면 희망고는 없었을지 모른다는 우스갯소리도 했어요. 돌이켜보면 건기 때 톤즈로 향했던 것은 운명이었던 것 같아요.”

 

지난 2월 남수단 톤즈를 찾은 이광희 대표가 현지 주민과 환하게 웃고 있다. ⓒ이광희 대표
지난 2월 남수단 톤즈를 찾은 이광희 대표가 현지 주민과 환하게 웃고 있다. ⓒ이광희 대표

-망고나무 사업이 이제 희망고 빌리지로 뿌리내리고 있어요.

“2009년 망고나무 심기로 시작해 주민 자립 사업인 희망고 빌리지로 확대하고 있어요. 주민들에게 망고 열매가 아닌 묘목을 배분한 것은 주민들이 자립할 수 있도록 돕기 위해서였어요. 그런데 매년 가다 보니 나무를 심는 것만이 능사가 아닌 거예요. 열매를 맺기까지 7년이 걸리는데 그동안 나무를 키우는 방법도 가르치고, 아이들은 교육도 필요했어요. 필요한 부분이 눈에 보이니 일을 벌일 수밖에 없는 거죠. 그래서 여자직업교육학교를 시작으로 아이들이 다닐 유치원도 만들고 남자직업학교도 만들었죠. 처음 유치원에 들어간 아이가 벌써 5학년이 됐어요. 온 가족이 다 참여할 수 있도록 유치원부터 초등학교, 직업학교까지 운영하다 보니 500여 명이 교육받고 있어요.”

-여성 주민 중심으로 희망고 부녀회도 만드셨다고요.

“살림을 도맡는 엄마들이 주도적으로 움직여야 결국 일이 되더라고요. 내전 중이라 남자들은 전쟁에 나가다 보니 여성이 생계를 책임지는 경우가 많아요. 그래서 부녀회를 통해 여성들이 교육이나 생활에서 필요하거나 개선돼야 할 점에 대해 회의하고 의견을 모으고 제시하는 구조를 만들었어요. 스스로 문제를 찾고 해결할 수 있는 자치조직인 셈이에요.”

-엄마의 마음으로 희망고를 시작하게 됐다는 말씀을 하셨어요.

“‘엄마의 마음’이라는 표현은 여러 가지 의미가 담겨 있어요. 먼저 엄마의 마음으로 보면 아이들을 위해, 주변을 위해 무엇을 해야 할지 보여요. 제가 엄마의 마음으로 주민들을 위한 일을 하고 싶은 마음도 담겨 있고요. 또 하나는 저희 어머니의 마음도 담았어요. 만약 어머니가 이 상황을 보셨으면 지나치지 않으셨을 것이라고 생각해 희망고도 시작했던 거니까요.”

-어머님(고 김수덕 여사), 아버님(고 이준묵 목사) 영향이 컸나요.

“어머니는 전쟁고아부터 한센인과 장애인 등 약자들을 평생 돌보셨어요. 가진 것 없이 전남 해남에 내려가 50년간 ‘해남 등대원’을 세우고, ‘삼애 농민학원’을 열어 그분들을 위해 봉사하는 삶을 사셨어요. 곁에서 어머니가 일하는 모습을 보고 자라다 보니 저도 톤즈에서 해야 할 일이 그냥 눈에 보이더라고요. 어머니가 제게 한결같이 하신 말씀이 있어요. ‘오늘도 참아 봤느냐’는 한 마디예요. 그 말씀에 상대방을 받아들이고 인정하는 마음이 담겨 있다고 생각해요. 그래서인지 제게 산다는 것은 참는 것을 배우는 과정인 것 같아요. 수용, 책임, 인내는 제 삶에서 중요한 단어가 됐어요. 희망고 직원들에게 당부하는 수칙에도 ‘편견 없이(Prejudiceless) 일하고 아무리 어려워도 원칙(Principle)을 지키며 인내심(Patience)을 가지고 일해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어요.”

-올해 철학 공부를 시작하셨어요. 구체적인 목표가 있으신가요.

“철학 공부를 시작한 건 살다 보니 필요해서였어요. 패션와 희망고 모두 근본적으로 사람 마음을 살피고 아름답게 하는 일이라고 생각해요. 그런데 참 어려운 게 사람 마음이에요. 내 마음도 모르는데 남들 마음을 아는 게 쉬울 리가 없죠. 갈등도 사랑도 한 끗 차이라고 하잖아요. 그래서 사람에 대해 잘 이해하고, 마음을 더 깊이 있게 알고 싶었어요. 교수님, 총장님보다 나이가 많고, 일주일에 두 번 학교에 가는데 매주 준비해야 할 과제도 많고 읽어야 할 책도 많지만, 새로운 세계에 들어가는 것 같아 너무 좋아요. 구체적인 목표가 있는 건 아니에요. 일흔이 가까워지면서 그동안의 삶과 생각을 정리하고 이것을 말로 전달하고 싶어요. 3년 정도 공부하면 할 수 있지 않을까 싶어요.”

-앞으로의 계회은.

“올해는 그동안 톤즈에 몰입하느라 집중하지 못했던 패션을 깊이 있게 하려고 해요. 희망고는 그동안 저희가 끌고 왔다면, 이제는 밀어주는 역할에 집중하려고 해요. 주민들이 주민들이 중심이 돼 운영할 수 있도록 만들어갈 계획이예요. 뒷걸음질 치는 한이 있어도 길게 보면 결국 앞으로 나아가거든요. 9월에는 사옥에 패션 행사도 하고 강연도 진행할 수 있는 공간을 열 계획이예요. 쉽고 구체적인 철학 강연 프로그램을 계획하고 있어요. 옷을 짓는 이광희가 만드는 생각을 짓는 장소, 어떤가요.”

이광희 희망고 대표는?

이화여고, 이화여대 비서학과를 졸업한 뒤 진로를 바꿔 국제패션연구원을 수료했다. 1979년 첫 의상실 ‘Viscountess’를 연다. 1985년 ‘이광희 부티크’를 열었고 이후 아시아패션진흥협회가 제정한 ‘올해의 아시아 디자이너상’, 대한민국 디자인 대상 ‘산업포장 대통령상’ 등을 수상했다. 홍콩 ‘아시아위크지’가 꼽은 ‘한국 최고의 여성복 디자이너’로 꼽혔다. 2009년 외교부 산하 ‘희망의 망고나무’(희망고)를 설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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