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울어진 극장] 바비는 인형에 불과할까
[기울어진 극장] 바비는 인형에 불과할까
  • 남명희 영화학 강사
  • 승인 2018.06.12 19:15
  • 수정 2018-06-27 17:2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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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플릭스 오리지널 다큐멘터리 ‘토이: 우리가 사랑한 장난감들’ 예고편 캡처 ⓒNetflix
넷플릭스 오리지널 다큐멘터리 ‘토이: 우리가 사랑한 장난감들’ 예고편 캡처 ⓒNetflix

‘우리가 먹는 것이 바로 우리 자신이다’라는 말을 생각해 보면 장난감 판매 유통업체 이름인 ‘토이저러스(ToysRUs)’는 장난감의 본질을 파악한 작명이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다큐멘터리 ‘토이: 우리가 사랑한 장난감들’의 원제는 ‘The Toys That Made Us’, 장난감이 어쩌면 현재의 우리를 만들었을 수도 있다고 말한다. 가장 수많은 장난감을 팔아 치운 작품 ‘스타워즈’, 장난감의 차원을 넘어선 레고, 사회현상의 반영이기도 한 바비 인형 등 특정 주제 아래 장난감의 역사를 설명한다.

시즌 1의 2편인 ‘바비’ 편은 특별하다. 다른 편의 주제인 ‘스타워즈’, ‘히맨’, ‘G.I. 조’ 등과 비교해 금방 드러나듯, 장난감 시장은 기본적으로 남성 아동을 중심으로 구성된다. 독자적 브랜드를 갖춘 여아 전용품은 장난감 회사 ‘마텔’의 바비가 거의 유일무이하다(이는 마텔이 경쟁사를 잔인무도하게 파멸시켰기 때문이지만). 여아 대상 장난감은 유아용 돌봄 아기 인형이 다수이고 여아가 자신의 꿈을 투사할 독자적 브랜드는 남아 장난감에 편입되는 것이 대부분이다. 심지어 인형하면 남성의 것이 아니라 여성의 것이라는 편견에도 불구하고.

인간은 추상적인 개념을 특정 물체나 상징에 반영해서 기억하고 유지하며, 인형 역시 마찬가지로 각 인형은 각기 다른 추상성을 상징하는 매개체다. 핫토이 액션피겨와 성물방의 예수상은 크기부터 역할까지 큰 차이 없이 인간이 생각한 추상개념을 반영한 조소 작품이다. 같은 제작사의 남아용 인형 ‘히맨’이 과도한 근육과 덩치로 힘을 상징하는 것처럼, 바비는 무엇을 상징하게 된 것일까?

1950년대 마텔 사 사장 루스 핸들러는 여아용 실물 인형이 아기 인형밖에 없다고 판단했고, 여아가 자신을 투사할 수 있는 성인 여성의 외양을 한 인형을 만들고자 했다. 마텔 연구개발부서의 잭 라이언은 이전 직장에서 대량살상 미사일을 연구하다가 장난감 회사로 오자 ‘완벽한 여자’를 만드는 작업에 기꺼이 뛰어든다. 그 결과가 섹스를 의미하는 독일산 ‘릴리’ 인형의 복제품인 ‘바비’였다. 여성 아동의 세계가 육아 담당자라는 틀을 벗어나자마자 마주한 것은 남성의 과대망상인 셈이다.

바비 인형은 출시 직전까지 남성 임원, 남성 유통업체 담당자, 남성 영업사원, 남성 소매상의 반대에 부딪혔다. 성인 여성의 몸을 한 인형은 남성에겐 섹스를 의미함을 아는 보수적인 주부들에게도 반감을 샀다. 루스 핸들러는 웨딩드레스를 입은 바비를 통해 여아들이 치장을 배워 신랑을 구할 것이란 암시를 주는 마케팅을 했고, 전설로 남을 폭발적인 인기를 끈다. 바비는 이미 있는 욕구를 충족하기보다 새로운 욕구를 창조하는 존재였다. 1950년대에 와서야 여아들은 양육 이외의 투사 매개체를 손에 넣은 것이다. 남성에게는 성적 대상물이었던 것이 여성의 손에 넘어가자 상상력을 발휘하는 대상이 됐다.

21세기에 바라본 바비 인형은 과도할 정도로 남자들의 망상에 부응하는 수동적 모습이다. 마텔 전직 사장은 “바비가 목이 길고 허리가 가는 것은 옷을 입혔을 때 모습이 보기 좋아야 했기 때문에 의도적으로 왜곡한 것이고, 사람이 아니기에 사람의 비율을 따를 필요가 없다”고 단언한다. 하지만 실제로 바비는 현실세계에 ‘이상적인’ 여성의 몸매라는 망상을 주입하는 수단이기도 했고, ‘여성은 모든 것을 할 수 있지만 남의 시선에 맞춰 꾸미고 남자의 보조일 때 안전하고 편하다는 1950년대의 메시지를 21세기까지 고착화했다.

바비가 특정 여성상을 고착화한다는 비판은 유의미했지만, 여기서 더 나아가지 못한다면 비판도 무력하다. 과도한 근육질을 갖춘 히맨은 그렇게 많이 팔렸지만 어째서 남아에게 어떤 외양을 갖춰야 한다는 강박과 미덕으로 작용하지 않는가? 인형에 과도하게 엄격하다 하지만 말 그대로 인형에 불과한데 왜 실재 세계에서 특정 모습을 고착화하는 도구로 쓰이는가?

이 차이는 인형을 바라보는 인간의 시야가 문제라는 증거다. 여성에게 과도한 외양 강박을 가하는 문화에서는 인형마저도 그 수단이다. 긴 머리를 자르는 것, 브래지어나 히잡을 벗는 것 모두 자체로는 의미가 없지만 여자가 그런 행동을 하면 모욕을 하겠다는 가부장제의 그릇된 만용이 문제다. 곁눈질하던 바비가 정면을 바라보도록 수정을 한 것이 마네의 ‘올랭피아’에 버금가는 혁명이라고 말하는 마텔 사 관계자의 말은 과장이 들어갔을지언정 인형을 둘러싼 인간사회의 본질을 꿰뚫는다. 여성의 외양은 성인물이 아니다. 여성의 특정 외양만 보면 성적으로 흥분해도 된다는 망상이 어린아이 장난감까지 문제로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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