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논단] 1020 여성주체가 시민권을 요구한다
[여성논단] 1020 여성주체가 시민권을 요구한다
  • 김혜정 한국성폭력상담소 부소장
  • 승인 2018.06.06 19:11
  • 수정 2018-06-10 20:3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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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우 속 교복 입은 시위대

편파수사 말라는 1만2000명

1020 여성들은 외친다

“동등한 시민으로서 안전하고

평등하게 살아갈 권리 달라”

 

강수량이 72㎜였던 그 날은 강남역 여성 살인사건의 2주기가 되는 날이었다. ‘성폭력 성차별 끝장집회’가 네 번째로 열린 신논현역에는 하교하고 도착한 교복 입은 10대 여성과 20대 여성들로 발 디딜 틈이 없었다. 우비마저 뚫는 폭우 속 행진에서 그녀들은 젖은 피켓을 높이 들고, 대형버스가 지나가는 아슬아슬한 차선을 밟으며 목이 터져라 외쳤다. 이틀 뒤, 대학로에서는 1만2000명의 시위대가 모였다. 공중화장실, 기숙사, 학교 앞 사진관, 애인과 보낸 공간을 잠식한 불법촬영을 잡으라고, 성별에 따른 편파 수사를 하지 말라고 외친 사람들은 10~20대 여성들이었다.

한국사이버성폭력대응센터(한사성)는 2017년 20대 여성활동가들이 문을 연 단체다. 이들은 불법촬영 문제가 단순한 지하철 몰카가 아니라, 주변 지인 여성들을 올리고, 능욕을 교환하는 남성들의 놀이터이며, 업로드하면 돈을 주는 파일 거래 사이트는 정부와 협상을 시도하거나 삭제 업체마저 운영하며, 여성의 몸을 ATM(현금자동입출금기)으로 삼고 있다고 말한다. 그녀들의 활동을 담은 다큐멘터리 ‘얼굴 그 맞은편’(감독 이선희)은 그들이 어느 자리에서 직접 행동을 시작했는지 조명한다. “어느 영상 썸네일을 보고 나인 줄 알았어요. 밤새 한숨을 못 잤지요. 영상을 다운받아 보니 내가 아니었을 때의 안도감은 곧 위화감이자 죄책감이었습니다. 내가 살려고 저는 이 활동을 해요” (한사성 활동가의 인터뷰 중)

 

5월 19일 서울 종로구 대학로에서 열린 ‘불법촬영 편파수사 규탄시위’에 참여한 여성 1만2000여명이 불법촬영을 비판하는 퍼포먼스를 벌이고 있다.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5월 19일 서울 종로구 대학로에서 열린 ‘불법촬영 편파수사 규탄시위’에 참여한 여성 1만2000여명이 불법촬영을 비판하는 퍼포먼스를 벌이고 있다.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6월 2일 페이스북코리아 앞에서 불꽃페미액션 활동가들은 상의를 벗고 시위를 했다. 페이스북이 상의 탈의 사진을 음란물로 보고 삭제했기 때문이다. 경찰은 바로 대형 이불들로 활동가들의 가슴을 가리며 체포 전에 하는 미란다 원칙마저 고지했다. 무엇이 진짜 문제였는지 드러났다. 운동장에서, 해수욕장에서, 아침 약수터나 우리 집구석에서 항상 보던 남자들의 벗은 가슴은 건강과 통풍의 아이콘인데 여성의 벗은 가슴은 음란물이자, 삭제대상이자, 체포대상으로 간주됐음이 드러났다. 근거 없음도 드러났다. 페이스북은 결국 삭제했던 사진을 ‘오류’였다며 되살렸고, 수서경찰서는 해당시위가 공연음란이나 경범죄 적용대상이 아니라고 발표했다.

성적자기결정권, 자유권, 평등권, 안전권이 가동하지 않는 일상을 고발하며, 제도와 정책의 겉치레와 형식주의를 뿌리치며, 기다리면 언젠가 올지도 모른다는 약속 따위에 속지 않으며 1020 여성들은 직접 행동에 나섰다. 이 현장을 보며 과열된 오인으로 간주하거나, 젠더 전쟁이나, 여혐 남혐 양비론으로 해석하는 시선이 있겠으나, 그녀들이 요구하는 바는 명확하다. 동등한 시민으로서 안전하고 평등하고 자유롭게 살아갈 권리.

학습하고, 강연을 조직하고, 후원하고, 방청 연대하고, 잡지를 만들고, 사건을 공론화하고, 그림을 그리고, 청원하고, 국회의원을 만나고, 사람들을 설득하고 독려하고, 민원을 넣고 모든 것을 한다. 그리고 문제는 ‘정치’라고 겨냥한다. 촛불청소년인권법제정연대는 10대 참정권 법안 통과를 위해 삭발을 하고 국회 앞 천막 농성을 하고, 교육감 선거에 기호 0번으로 출마했다. 녹색당은 20대 페미니스트 여성 신지예 등 수많은 젊은 여성들이 후보로 나섰다. 누군가의 인권, 시민권, 안전권은 삭제돼도 기득권은 말짱히 건재한 사회를 겨냥한 1020 여성들의 싸움. 날 선 반응을 하는 이들도 드러나고 있다. 남성을 혐오하는 거냐며 숨은 테러를 하는 젊은 남성들, 날 가르치거나 바꾸려는 거냐며 역정 내는 늙은 남성들. 미국의 여성 대법관 긴즈버그의 말을 전한다. “형제들이며, 내 목을 밟고 있는 그 발을 치워달라고 하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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