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2006년 코레일의 정리해고로 직장을 잃었지만 13년째 복직 투쟁을 이어오고 있는 KTX 해고 여승무원들이 문재인 대통령께 드리는 호소문입니다.

 

“KTX승무원이 생명안전업무를 하지 않기 때문에 철도공사의 직원이 아니“라는 대법원 판결이 나왔을 때 눈물도 나오지 않았습니다. 믿을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비록 저임금의 비정규직으로 일했을지언정 승객들의 생명과 안전을 위해 일한다는 자부심은 버린 적이 없었습니다. 2006년 파업으로 정리해고를 당했을 때에도, 이 부당한 해고가 오래가지 않으리라 믿었습니다. 그런데 2015년 2월 그 춥던 날, 대법원 판결로 우리의 자부심은 짓밟혔고, 부당한 정리해고는 정당화되었습니다. 그리고 사랑하는 우리의 친구는 세살 딸을 남겨두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습니다. 그 때서야 우리는 통탄의 눈물을 흘렸습니다. 우리는 아직도 그 고통 속에 있습니다.

우리 KTX승무원들은 철도공사도, 법도 믿을 수 없습니다. 철도공사는 2004년 채용시 정규직 전환을 하겠다고 했던 약속을 손쉽게 뒤집었습니다. 2007년 말 우리 파업이 계속되고 있을 때 철도공사는 정규직 채용에 합의해놓고도 그 약속을 깨버렸습니다. KTX에서 위험한 상황이 닥쳤을 때 승무원들이 승객들을 안전하게 대피시켜야 한다는 것은 너무 당연한데도, 철도공사가 내놓은 자료를 베껴서 승무원이 안내업무만 하는 사람들이라고 판결한 대법원을 믿을 수도 없습니다. 공공성과 공정성이 핵심인 철도공사와 법원이,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이유로 우리를 해고하고 비정규직으로 일하는 것이 정당하다고 말할 때 우리는 사회에 대한 신뢰를 잃어버렸습니다.

그런데도 우리는 다시 천막농성을 하고 오체투지를 했으며 촛불을 들었습니다. 단지 우리만의 복직을 위해서가 아니었습니다. KTX승무원은 안전업무를 하지 않는다는 대법원의 판결 때문에 승무원들이 안전을 위한 교육과 훈련을 제대로 받지 못하고, 그 위험이 고스란히 승객들에게 전가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여전히 우리의 후배 승무원들이 저임금과 장시간 노동, 성희롱에 시달리며 일하고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시민의 생명과 안전을 위해 최선을 다하는 노동자가 일회용품 취급을 받아서는 안된다는 상식이 우리 마음에 자리해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리고 대법원 판결로 절망하여 목숨을 끊은 우리의 친구에게 부끄럽지 않기 위해서였습니다.

촛불집회로 상식적인 세상이 될 것이라고 믿었지만, 철도공사는 여전히 우리의 문제에 대해 귀를 막고 입을 닫았습니다. ‘대법원 판결이 나서 어쩔 수 없다’는 이유였습니다. 다시 절망이 깊어지기 시작할 때, 양승태 대법원장이 판결을 거래했으며 KTX 승무원의 대법판결도 그 중 하나라는 소식을 접했습니다. 예상은 했지만 사실로 그것을 확인한 순간 말할 수 없는 분노가 일었습니다. 우리의 삶이 그렇게 아무렇지도 않게 거래의 대상이 되었다는 점에서 모멸감도 느껴졌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대법정에서 “우리의 지난 세월 돌려내라”고 외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 이후 철도공사를 만났습니다. 그런데 우리의 고통에 책임을 져야 할 철도공사는 사과도 하지 않고 여전히 우리에게 ‘기다리라’고만 말합니다.

그래서 대통령께 호소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부디 저희가 정부를 신뢰할 수 있게 해주십시오. 당당하게 일하기 위해 파업에 나섰다는 이유로 지난 12년의 세월을 길에서 보내야했던 우리에게 세상에 정의가 있음을 보여주십시오. 정규직으로 복직해야 한다고 했던 1심과 2심 판결 결과를 철도공사가 수용하고, 다시 KTX로 돌아갈 수 있도록 해주십시오. 승객들의 생명과 안전을 위해 최선을 다하는, 철도공사 소속의 KTX 승무원으로 일하고 싶습니다. 지금 저희의 몸과 마음은 하루하루 희망과 절망을 왔다갔다 하며 망가져가고 있습니다. 대통령께서 빠른 시일 내에 꼭 답변을 주시리라 믿고 기다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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