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0회 서울국제여성영화제, 

‘낙태죄가 폐지되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 주제로 

쟁점 토크…낙태죄 폐지 이유와 

폐지 이후 한국사회가 나아갈 방향 논해

 

제20회 서울국제여성영화제는 2일 오후 서울 서대문구 메가박스 신촌에서 ‘낙태죄가 폐지되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를 주제로 토크 행사를 열었다.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제20회 서울국제여성영화제는 2일 오후 서울 서대문구 메가박스 신촌에서 ‘낙태죄가 폐지되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를 주제로 토크 행사를 열었다.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모든 전쟁에는 부수적 피해(collateral damage)가 따른다.”

임신중지 반대 정책·처벌 조항 등으로 자기결정권을 침해당하고 생명의 위험을 겪은 미국 여성들의 이야기를 담은 다큐멘터리 영화 ‘낳을 권리, 낳지 않을 권리’(감독 시비아 타마킨) 도입부에 등장하는 문구다.

“전쟁이나 군사 행동으로 인해 민간인이 학살되는 걸 군대에서는 ‘부수적인 피해’라고 말해요. 본인들의 윤리적 책임을 회피하기 위해 쓰는 말이죠. 이 말이 영화에서도 나오는데, (정치인들이) 탁상공론으로 임신중지 관련 법안을 계속 바꾸는 동안 여성이 입는 건강 침해와 생명 피해는 부수적인 것으로 취급됩니다.”

2일 서울 서대문구 메가박스 신촌에서 열린 ‘서울국제여성영화제-쟁점 토크: 낙태죄가 폐지되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 행사에 참석한 윤정원 녹색병원 산부인과장은 이 같이 말했다.

이날 ‘낳을 권리, 낳지 않을 권리’ 상영 후 진행된 행사에는 나영정 장애여성공감 활동가, 류민희 공익인권변호사모임 희망을만드는법 변호사, 윤정원 녹색병원 산부인과장이 함께했다. 사회는 나영 지구지역행동네트워크 집행위원장이 맡았다.

 

영화 ‘낳을 권리, 낳지 않을 권리’ 스틸컷 ⓒ서울국제여성영화제
영화 ‘낳을 권리, 낳지 않을 권리’ 스틸컷 ⓒ서울국제여성영화제

영화 ‘낳을 권리, 낳지 않을 권리’는 ‘낙태죄가 폐지되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라는 질문에 답하듯, 낙태죄 위헌 판결 이후 미국에서 벌어진 참혹한 현실을 보여준다.

1973년 1월 미국에서는 낙태죄 폐지 운동의 중요한 전기를 마련한 ‘로 대 웨이드(Roe vs. Wade)’ 사건의 최종 판결이 있었다. 미 연방대법원은 사람으로서 법적 권리가 인정되는 시기는 ‘출생 이후’이며, 헌법 정신에 따라 모든 개인에게는 사생활의 권리가 보장돼야 한다는 취지로 형법상 낙태죄에 대해 위헌 판결을 내렸다. 그러나 판결 이후 기독교 우파와 보수 정치인은 ‘낙태 반대’를 주장하며 결집했고, 곳곳에서 극단적인 낙태반대 운동이 전개됐다. 그리고 주 정부는 다양한 방식으로 임신중지 반대 정책과 처벌 조항을 마련했다. 이로 인해 여성들은 신체적 고통을 겪거나 죽음의 위험에 놓였으며, 감옥에 가거나 살인자와 같은 취급을 받았다. 영화는 주 정부의 정책적·법적 제약과 종교집단 활동이 임신중지를 결정해야 하는 여성들에게 얼마나 폭력적 영향을 미치는지 고발한다.(나영 집행위원장)

 

류민희 변호사가 ‘권리의 이름으로: 법적 쟁점을 중심으로’를 주제로 얘기하고 있다.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류민희 변호사가 ‘권리의 이름으로: 법적 쟁점을 중심으로’를 주제로 얘기하고 있다.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권리의 이름으로: 법적 쟁점을 중심으로’를 주제로 얘기한 류민희 변호사는 “미국 각 주에서도 태아를 언제부터 생명을 가진 존재로 볼 것인지, 여성이 그 생명을 위해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지를 중심으로 낙태 논의를 끌고 갔다. 이로 인해 난자와 정자가 수정하는 순간부터 태아가 인간으로서의 권리를 갖고, 여성은 그걸 침해하는 어떤 행위도 해선 안 된다는 주장이 제기됐으며 받아들여졌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하지만 권리란 사람이 태어난 뒤 부여받는 것이기에 그들이 주장하는 요지는 법적 논리로도 맞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현재 세계의 낙태법은 형법으로 여성에게 모성을 강제하는 게 아니라 권리 보장법으로 여성의 자기결정권을 존중하는 동시에 모성을 설득하고 있으며, 이는 태아의 잠재적 생명 보호와 배치되지 않는다고 보고 있다고 류 변호사는 설명했다. 그러면서 그는 “이제는 낙태 규율을 넘어 포괄적인 재생산 건강 권리와 정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제20회 서울국제여성영화제는 2일 오후 서울 서대문구 메가박스 신촌에서 ‘낙태죄가 폐지되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를 주제로 토크 행사를 열었다.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제20회 서울국제여성영화제는 2일 오후 서울 서대문구 메가박스 신촌에서 ‘낙태죄가 폐지되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를 주제로 토크 행사를 열었다.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낙태죄를 폐지하기 위해서 무엇이 필요할까?’에 대해 발표한 나영정 활동가는 “낙태죄를 폐지하고, 그 이후 무엇이 필요한지 논의하기 위해서는 낙태죄가 우리에게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 정리할 필요가 있다”고 짚었다. “이번 낙태죄 위헌 여부 공개변론 덕분에 국가가 여성의 섹스와 낙태를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알게 됐어요. 여성이 하는 섹스를 곧 임신으로 치부하고, 낙태는 여성이 섹스에 대한 책임을 지지 않는 거라고 여기고 있었죠. 형법에 존재하는 여성의 섹스에 대한 국가 인식을 개선하지 않으면 낙태죄가 폐지된다고 해도 국가가 여성의 결정권을 적극적으로 보장하지 않는 결과를 낳을 수 있어요. 우린 성과 재생산을 국가발전이나 경제성장의 요소가 아닌 개인의 인권, 건강 등의 이슈로 가져와야 해요.”

나 활동가는 태아 생명에 대한 권리를 왜 국가가 주장하는지도 의문이라고 했다. “국가는 국민의 생명을 보호할 책임만 갖고 있을 뿐이에요. 그런데 태아의 생명권을 국가가 나서서 주장하고, 여성의 자기결정권은 (태아의 생명권에) 적대되는 것처럼 얘기하고 있죠. ‘태아 생명권 VS 여성의 선택권’이라는 구도 하에서 국가는 (국민의 생명 보호라는) 책임은 저버리고 여성의 자기결정권을 빼앗고 있죠.”

나영 집행위원장은 낙태죄를 유지시키는 근간에는 ‘여성과 태아를 남성의 소유로 바라보는 가부장제 인식’이 존재한다고 설명했다. 그는 “성경 출애굽기에는 ‘서로 싸우다 임신한 여인을 밀쳐 낙태케 한 경우, 남편의 요구대로 배상액을 지불해야 한다’는 내용의 구절이 나온다. 여자와 태아의 생명을 남자의 소유로 다루고 있는 것”이라며 “이는 낙태 처벌을 존속케 하는 근본 원리가 무엇인지 명확히 보여준다”고 지적했다. 그리고 이는 현재 한국사회에도 적용되고 있다.

 

윤정원 과장이 ‘낙태죄 폐지라는 시작’을 주제로 이야기하고 있다.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윤정원 과장이 ‘낙태죄 폐지라는 시작’을 주제로 이야기하고 있다.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윤정원 과장은 ‘낙태죄 폐지라는 시작’을 주제로, 원치 않은 임신을 한 여성들이 낙태죄로 인해 어떤 어려움을 겪고 있는지 들려줬다. “비젠더적인 관점이 들어간 정책으로 인해 여성들은 고통 받고 있어요. 낙태를 원하는 여성들은 제대로 된 의료시술을 하는 곳을 찾아 헤매야 하고, 그 과정에서 임신 주수는 늘어나죠. 또 병원을 찾았다 하더라도 자신이 낙태해야 하는 이유를 소상히 밝히며 수치심과 자존감 저하를 견뎌야 해요. 또 남성의 동의를 받건 안 받건 낙태는 불법인데 병원에서는 남편이나 남성 파트너의 동의를 받아오라고 해요. 이 또한 불합리하죠.”

“낙태 음성화로 인해 낙태 이후 합병증이나 부작용도 보고할 수 없어 여성건강 위험에 대한 정보도 알 수 없어요. 산부인과 전공의 수련과정이나 전문의 연수과정에는 낙태시술과 관련된 지침도 없어 의료 사고 가능성도 높아요. 선배 의사에게 알음알음으로 배우는 수준이죠. 낙태 이후에는 정신적인 트라우마도 남게 되는데, 이는 여성이 불법적으로 수술을 받는다는 점에서 죄책감을 갖고 사회적 낙인까지 떠안게 되기 때문이죠.”

이어 윤 과장은 낙태죄 폐지 이후에도 여성의 건강 보호와 자기결정권 보장을 위해 “의과대학 모니터링, 산부인과 의료현장 관찰, 자연유산 유도약 식약처 등재 등을 이뤄나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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