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피의 연대기’ 스틸컷 ⓒ'피의 연대기' 티저 영상 캡처
영화 ‘피의 연대기’ 스틸컷 ⓒ'피의 연대기' 티저 영상 캡처

생리라는 말을 처음 배웠을 때, 엄마는 번거롭고 귀찮은 것이니 뒤늦게 시작해도 될 일이라고 하셨다. 그래서인지 청소녀일 때도 생리에 대한 이야기는 터놓고 하지 못했다. 친한 친구끼리도 생리대를 빌려달라고 하는 정도를 넘는 대화는 나누지 않았다.

초경부터 시작해서 완경까지, 주기는 평균적으로 한 달에 한 번이며 그 기간을 모두 합하면 7년에 달한다고 한다. 7년이면 많은 것이 달라질 수 있는 시간이다. 나는 그 7년 중 대부분을 이미 썼고 완경으로 향하고 있다.

나는 13살 때 초경을 시작했고, 극심한 스트레스로 생리불순을 자주 겪었고, 임신과 출산을 두 번 경험했고, 여전히 생리를 하고 있으며, 생리컵을 7년째 쓰고 있다. 초경을 한 뒤부터 패드형 일회용 생리대를 꽤 오래 썼다. 그런데 피부가 따갑고 밑이 빠질 것 같은 아픔을 느껴서 고통스러워하다가 일회용 생리대에 들어간 화학 성분을 의심하며 천 생리대를 쓰기 시작했다. 그랬더니 놀랍게도 아픔과 가려움에서 해방됐다.

그러나 천 생리대가 온전한 해결책은 아니었다. 그 기쁨은 물론 빨아서 써야 하는 번거로움과 함께 했다. 여행을 가는 등 주거공간을 옮겨야 하는 경우가 생길 때 일회용 생리대는 계속 나를 유혹했다. 겨우 벗어났던 아픔과 가려움에 다시 빠져야 하는 것이 싫어서 괴로워하던 내게 친구가 생리컵을 권했다.

처음 생리컵을 손에 넣고는 어떻게 써야 할지 몰라서 우왕좌왕했다. 먼저 생리컵을 쓰고 있는 친구에게 사용법을 들었지만 그 친구가 하는 말을 제대로 알아듣지 못했다. 그도 그럴 것이 그동안 쓰던 패드형 생리대와 형태가 완전히 달랐기 때문이다.

우여곡절 끝에 생리컵을 삽입하고 난 뒤, 신세계를 경험했다. 소변을 볼 때 생리혈이 나오지 않았고, 덩어리가 떨어질 때 느껴지는 이물감과 생리통이 없었다. 통증이나 가려움도 사라졌다. 특히 묻어나오는 피를 처리하는 수동성이 아니라 생리컵을 질에 직접 넣는 능동성을 스스로 체득하면서부터 내 몸을 더 많이 알게 됐다. 내 몸에서 나오는 생리혈을 직접 마주하면서 겸허함을 배우기도 했다.

이런 내게 영화 ‘피의 연대기’를 볼 기회가 생겼다. 어린이청소년책작가들이 만든 단체인 ‘어린이청소년책작가연대’에서 성평등에 대해 함께 이야기하자는 취지로 영화 ‘피의 연대기’를 함께 봤다. 이 영화는 여러 세대와 다른 나라에서 사는 사람들이 이야기하는 생리, 생리에 대한 역사, 다양한 생리대, 생리에 대한 경험 등 생리에 대한 씨줄과 날줄이 엉킨 연대기로 만든 영화다. 한국, 네덜란드, 영국, 미국을 오가며 촬영한 영화는 생리를 탐구하며 학교에 생리대를 무상으로 배치하는 논의까지 다각도로 다뤘다.

‘피의 연대기’는 생리를 하는 ‘피’와 생리대의 역사를 다룬 ‘연대기’면서, 생리를 했거나 하거나 할 사람들이 피로 연대하는 영화이기도 하다. 7년 중 어떤 시기에 생리대를 살 돈이 없을 수 있고, 갑자기 쏟아지는 생리혈 때문에 기절할 수 있고, 지하철 시트나 옷에 생리혈이 묻어날 정도로 새는 경험을 할 수도 있다.

영화가 끝난 뒤 어린이청소년책 작가들은 김보람 감독과 함께 영화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그 순간 생리는 은밀하고 부끄러운 일이 아니라 공통 주제로 변했고, 긍정과 능동적인 단어로 자리매김했다. 다른 약속이 있었으나 이 자리에 참여했다는 동료는 이 영화를 보길 잘했다며 극찬했다.

이 영화를 여성들뿐만 아니라 남성들과 제3의 성을 지닌 사람들도 모두 봤으면 좋겠다. 생리가 여성들에게 어떤 의미인지 안다면, 여성들에게 생리가 어떤 의미인지 더 넓게 공감할 수 있을 것이다. 누구든 건강한 몸과 마음으로 살 권리가 있다. 생리는 그 권리 중에서 중요하고 소중한 부분이다. 생리를 하는 7년 동안 몸과 마음이 건강해야 한다. 모든 여성들이 건강한 7년을 보낼 수 있도록 여성들도 자기 경험을 기꺼이 나누기를 바란다.

 

김하은 어린이청소년책 작가. 청소년 소설 『얼음붕대스타킹』과 『꿈꾸는 극장의 비밀』『달려라, 별!』 등의 동화를 썼다. (사진 ⓒ연희문학창작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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