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연결 사회원리는 다양성

고정관념은 시대에 뒤처져 

 

 

 

서울대 경제학부에 72년 만에 첫 한국인 여성 교수가 탄생한다. 이번에 서울대는 경제학부 전임교원 채용공고에 지원자를 여성으로 제한했다. 정치·경제·사회·문화의 모든 영역에서 양성평등 이념을 실현해야 한다는 ‘양성평등기본법’에 따른 조치였다. 1946년 개교 이래 서울대 경제학부에 여성 교수로는 2009년부터 2014년에 재직한 중국인 손시팡 교수가 유일했다. 지난해 기준으로 여학생이 전체 학생의 3분의 1임에도 35명의 교수 중 그동안 여성 교수가 단 한 명도 없었다니, 놀랄 일이다.

 

우리 뇌는 초당 평균 1100만 비트에 달하는 정보에 지속적으로 노출되는데, 의식의 영역에서 처리할 수 있는 정보량은 초당 40바이트(320비트)에 불과하다. 이런 인지적 과부하 때문에 대부분의 정보가 무의식의 영역에서 처리된다. 이 때 정보를 빠르고 원활하게 처리하기 위해 기존의 고정관념과 편견에 의지하게 된다. 특정 학문 분야나 조직에 성비 불균형한 모습이 우리 뇌에 지속적으로 인지되면 특정 편견과 고정관념을 고착시킬 수 있다. ‘어떤 분야를 여성이 하는 것은 맞지 않아, 높은 직급은 남성이 많은 게 일반적이야’ 등등. 성비 불균형이 안타까운 것은 바로 이런 이유다. 그리고 이것은 지금 시대 흐름에 맞지 않다.

우리는 디지털 혁명 시대에 살고 있다. 아무런 연관성도 없어 보이는 산업들이 정보통신기술(ICT)을 통해 연결되는 초연결사회다. 지금 이 시각에도 모든 영역에서 경계 없이 융합하고 해체되고 생성되길 반복하고 있다. 이를 가능케 하는 가치는 ‘다양성’이다. 고도화된 정보통신기술이 다양한 아이디어를 연결하는 사회에서, 편견과 고정관념은 시대착오적이다.

경제학자 스콧 페이지는 ‘다양성이 능력보다 중요하다(Diversity trumps ability)’고 했다. 편견을 깨고 다양한 목소리를 담아내기 위해서는 인적다양성이 필수조건이다. 업무상 중요한 결정을 내릴 때 다양한 배경의 사람들로 위원회를 구성하면 편견이 적은 결정을 내놓는다고 한다. 최근에 글로벌 기업은 수평적 조직문화와 다양성 확보를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인다. 다양성이 확보되면 다양한 고객을 지원할 수 있고, 전 세계에 훌륭한 인재를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일하는 업무 방식도 ‘수직통합형 모델’에서 ‘수평분업형 모델’로 변하고 있다. 원하면 누구든지 플레이어로 시장에 참여할 수 있다. 방송언론만 보더라도, 예전에는 한 방송국이나 언론사에서 취재·편집·제작·송출까지 다 독점했다면, 이제는 누구든지 블로그나 동영상 채널을 통해 콘텐츠를 만들기도 하고, 코딩을 해서 또 다른 채널을 배포할 수도 있다. 각 업종의 벽을 가볍게 넘나들 수 있는 인재를 길러내고 이들이 자유롭게 활동할 수 있는 조직 문화와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

사회 각 분야에 여성의 진출이 늘고 성평등에 대한 인식이 개선됐다고는 하지만, 글로벌 수준에는 미치지 못하고 있다. 무엇보다 대학에서 나서야 하는데, 기업의 노력보다 못한 게 아닌가 싶다. 이공계 여성 재학생 비율 대비 여성 전임 교수 비율은 15.2%로 매우 낮은 편이다. 특히 공학계열은 5.7%에 불과하다. 내 안의 편견을 깨기 위한 가장 좋은 전략은 편견과 충돌하는 환경에 나를 놓이게 하는 것이다. 성비 불균형한 학교생활을 했던 남녀학생들도 사회에 나가서는 남녀가 있는 직장생활을 해야 한다. 미리 서로에 대해 편견 없이 이해할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해주면 좋지 않을까? 서울대의 이번 적극적 조치가 다른 대학으로도 확산되기 바란다.

여전히 대학은 권위적이고 수직적인 사제 문화와 젠더 불평등에 내홍을 앓고 있다. 지난 스승의 날, 몇 개의 수도권 대학에서는 스승의 노래 대신 성폭력 가해 교수의 파면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드높았다. 스승은 자기를 가르쳐 이끌어 주는 사람이다. 대학은 학문을 매개로 연령, 인종, 성별, 지역 등에 차별 없이 자유롭게 토론할 수 있는 곳이어야 하지 않을까? 다양성이라는 가치를 이뤄내야만 대학도 혁신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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