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23일 세계 여성 누공 퇴치의 날

난산·여성할례로 인한 ‘누공’에

인권 유린 당하는 개도국 여성들

가족에 버림받고 ‘마녀’로 불려

매년 5만~10만명 환자 발생

코트디부아르에만 8000명 달해

코이카, 7년간 1862명 무료 수술

 

산과적 누공 환자였던 오딜씨는 현재 여성 누공 환자의 회복을 돕는 동료교육가가 됐다. ⓒ코이카
산과적 누공 환자였던 오딜씨는 현재 여성 누공 환자의 회복을 돕는 동료교육가가 됐다. ⓒ코이카

# 다정하던 이웃들이 하나둘 오딜(Odile, 50)씨를 ‘마녀’라 부르기 시작했다. 코트디부아르 아비장 지역에 살던 그는 평범한 주부였다. 사산한 뒤 누공이라는 병을 얻기 전까지. 남편을 시작으로 이웃과 친정 여동생조차 그가 저주를 받았다며 배척했다. 여성 누공이라도 불리는 산과적 누공(fistula)은 태아가 질벽, 방광, 직장 항문을 오랫동안 누르면서 구멍이 발생해 대소변이 새는 질환이다. 난산이나 여성 할례을 경험했거나 의료 환경이 열악한 곳에서 출산한 여성들이 많은 걸리는 질환이다.

산과적 누공을 겪는 여성들의 삶은 비참하다. 누공에서 소변과 대변이 수시로 흘러나와 심한 악취가 발생하기 때문이다. 누공은 외과 시술을 통해 치료가 가능하지만, 인식 부족으로 여성이 정결하지 않았다거나 저주를 받았다고 여기는 경우가 많다. 이로 인해 많은 환자들이 가정과 지역공동체에서 쫓겨나고, 경제활동이 불가능해져 빈곤의 늪에 빠진다. 환자들은 우울증과 소외감으로 인해 심한 경우 스스로 생을 마감 하기도 한다. 산과적 누공은 단순한 질환이 아닌 여성의 인권과 존엄성에 대한 문제인 것이다.

오딜씨도 세상과 단절된 채 혼자 아들을 키우며 나무를 베어 시장에 팔며 생계를 유지했다. 고립된 삶을 살던 그를 다시 세상으로 이끈 것은 지구 반대편에서 온 한국인들이었다. 코이카 지원으로 누공 수술을 받은 그는 곧 완쾌했다. 오딜씨는 “완전히 새로운 인생을 사는 것 같다”고 했다. 코이카의 소득증대활동(IGA)에 참여하면서 돈을 벌수 있게 되면서 아들을 학교에 보내기 시작했다. 과거 자신을 버렸던 여동생의 자식들까지 그가 거둬 키워주고 있다. 특히 그는 수술 받은 여성 누공 환자들의 회복을 돕는 동료교육가(Peer Educator)로서 코트디부아르 내 가족계획, 출산, 피임 등을 지원하는 협회(AIBEF)를 도와 봉사 중이다. 오딜씨는 “누공은 겪어본 사람만이 그 고통을 알 수 있다”며 “저는 누공으로 괴로워하는 여성들을 격려하고, 수술의 두려움도 이겨낼 수 있도록 용기를 주고 있다”고 했다.

코이카(KOICA)는 2010년부터 유엔인구기금(UNFPA)과 함께 코트디부아르에서 ‘여성 누공 치료 및 예방 사업’을 펼치고 있다. 21일 코이카에 따르면 매년 전 세계적으로 발생하는 5만~10만명의 누공 환자 중 95%가 개발도상국 출신이다. 특히 코트디부아르에는 약 8000명의 환자가 있는 것으로 추산된다. 조기 출산, 열악한 모성보건 시스템, 가정 분만, 산파에 의한 전통적 출산방식, 여성 할례 등이 질환의 주된 원인이다. 하지만 이러한 수치는 빙산의 일각이다. 질환의 특성상 환자들이 질병을 숨기기 때문이다.

 

코이카 ‘여성 누공 치료 및 예방 사업’ 담당자가 수혜자와 대화를 나누고 있다. ⓒ코이카
코이카 ‘여성 누공 치료 및 예방 사업’ 담당자가 수혜자와 대화를 나누고 있다. ⓒ코이카

코이카는 1차 사업(2010년~2015년)을 통해 지역 진료소와 이동의료시설에서 여성 환자 1208명에게 무료 수술을 제공했다. 2016년부터 진행 중인 2차 사업은 질환 치료를 넘어 △치료 여성의 사회복귀 △질환 예방을 위한 보건시설과 의료진 역량 강화 △질환에 대한 사회적 인식 개선을 포함한 총체적인 접근 방식으로 진행되고 있다. 이를 통해 2017년 12월 기준 654명의 여성들이 산과적 누공 수술을 받았다. 산과적 누공 수술의 질을 나타내는 지표인 ‘첫 수술로 성공한 누공환자의 완치율’은 87%이며, ‘수술 받은 환자 중 요실금을 동반하지 않은 완치율’도 92%이다. 이는 세계보건기구(WHO)의 권장 기준인 85%, 90%를 웃도는 수준이다. 치료받은 여성들의 사회복귀 성과도 긍정적이다. 소득증대 사업에 참여한 여성 315명 중 96%가 가족으로 복귀해 지역사회 활동에 참여하거나 학업을 재개했고 소득증대 사업에 참여하는 등 사회에 복귀했다.

코이카는 주요 의사결정권을 갖는 남편의 태도와 관념이 여성 건강에 큰 영향을 미친다는 점에 주목해 현지에서 남편학교를 70회 운영하며 누공질환과 모성보건에 대한 인식을 제고하기도 했다. 오딜씨처럼 120명의 동료교육자(peer educator)와 80명의 전통 산파도 교육해 지역사회의 행동변화를 촉진했다(2017년 기준). 이외에도 4개 산과시설의 개보수와 장비 및 소모품 보급, 보건인력 훈련도 계획대로 진행되고 있다.

거시적인 사업 성과도 나타나고 있다. 코트디부아르 정부는 ‘2016-2020 국가보건개발계획’에 산과적 누공의 예방과 치료에 관한 전략을 포함시켰다. 현재는 ‘여성누공치료의 확산을 위한 국가전략’을 수립 중에 있다.

코이카는 내년 6월까지 산과적 누공환자 1200명을 수술하고, 500명의 여성들에게 소득증대 교육을 실시한다는 계획이다. 산과적 누공이라는 생소한 질병을 국내에 알리고, 사업 성과를 공유하기 위해 오는 10월 컨퍼런스도 개최할 예정이다.

최영미 코이카 서아프리카실 실장은 “이번 사업은 코트디부아르 내 많은 모성보건사업 중 여성누공치료를 지원하는 유일한 사업으로, 지역사회 내 인식제고와 성생식보건 서비스 접근 개선을 병행해 모성보건에 대한 사회문화적 장벽을 낮추는데 기여하고 있다”며 “실제 10대에 임신과 출산을 경험하며 누공으로 인해 학교를 그만뒀던 소녀가 완쾌 후 학교 공부를 지속하고, 누공으로 인해 가족과 커뮤니티로 버림받고 고통 받았던 여성들이 완쾌 후 새로운 가정을 꾸리고 경제적 자립에 성공한 사례들을 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 만큼 우리 국민들도 사업의 성과와 여성 누공 질환 퇴치에 많은 관심을 가져주길 바란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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