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찌민에 등장한 노점 음식 거리

지난해 8월 28일, 호찌민 최대 번화가인 1군 시내 응웬 반 치엠(Nguyễn Văn Chiêm)에 퍼 항 좀(phố hàng rong:행상 거리)이라는 이름의 노점 음식 거리가 개장했다. 영세한 상인들을 대상으로 호찌민시에서 세금을 감면해주며 마련한 퍼 항 좀 거리에는 쌀국수, 반미, 음료수 등의 먹을거리를 판매하는 노점 20여개가 약 40m에 달하는 도로에 나란히 자리 잡고 있다.

베트남에선 드물게 보안을 위한 폐쇄회로(CC)TV까지 설치된 데다 가격과 식품 안전, 위생 등을 모두 당국에서 철저하게 관리·감독하고 있는 까닭에 개장 첫날부터 고객들에게 호평을 받으며 붐비기 시작해 현재까지 성황을 이루고 있다.

 

응웬 반 치엠(Nguyễn Văn Chiêm)거리의 퍼 항 좀(phố hàng rong) 개장 첫날 모습. 
사진 유튜브 캡처 - 작성자 : VTC14 - Thời tiết - Môi trường & Đời sống
응웬 반 치엠(Nguyễn Văn Chiêm)거리의 퍼 항 좀(phố hàng rong) 개장 첫날 모습. 사진 유튜브 캡처 - 작성자 : VTC14 - Thời tiết - Môi trường & Đời sống

판매가 허용된 시간(6-9시와 11-14시로 1시간 추가 가능)이 지나치게 짧은 데다 지방에 거주하는 상인들은 혜택을 보기 어려워 실효성이 없다는 지적도 있지만 현재로선 베트남의 고질적인 문제로 대두되어 온 거리 음식의 위생 관리와 가난한 이들의 생활 안정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고 있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첫 번째 퍼 항 좀 거리의 인기에 힘입어 같은 해 10월 2일, 벤 응에(Bến Nghé)의 박 뚱 지엡 공원(Công viên Bách Tùng Diệp)에 약 30m길이의 두 번째 퍼 항 좀 거리가 생겼다고 하니 아직까지는 해당 프로젝트가 성공적으로 안착한 것으로 풀이된다.

가격과 편리함을 모두 갖춘 노점

베트남을 처음 방문한 사람들은 흔히 두 가지를 보고 놀란다는 이야기가 있다. 하나는 도로를 달리는 압도적인 숫자의 오토바이이고, 다른 하나는 길거리에 즐비한 여러 형태의 노점상이다.

도로를 점령하고 있는 간이식당뿐 아니라 차도에 아슬아슬하게 자리 잡은 오토바이 상점, 물건을 짊어지고 행인 사이사이를 도보로 오가며 판매하는 행상 등 베트남에서는 길거리에서 여러 가지 판매 행위가 자연스럽게 이뤄지는 것을 볼 수 있다. 거리에서 판매하는 물품도 다양해서 커피, 쌀국수를 비롯한 음식에서부터 우비, 장난감 등의 소모품, 그리고 금붕어, 새와 같은 애완동물까지 온갖 종류에 이른다.

연중 따뜻한 날씨와 건기가 길게 지속되는 기후, 그리고 국민의 대다수가 오토바이를 소유한 덕에 어디서든 정차할 수 있다는 점이 길거리 소비문화를 만들어낸 것으로 분석되는데 실제로 오토바이를 주행하는 중에 노점에서 물건을 구매하는 사람들을 흔히 발견할 수 있고 거리를 달리며 오토바이 위에서 음료를 마시거나 식사를 하는 모습 역시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뿐만 아니라 많은 이들이 거리에서 구두를 수선하거나 이발을 하고, 작은 욕조에 물을 담아 간이 수영장으로 이용하기도 하는 등 노점 문화는 베트남의 생활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노점상의 음료수 메뉴판. 한 잔에 한화 약 350원 - 650원 정도로 무척 저렴하다. 
사진 유튜브 캡처 - 작성자 : VTC14 - Thời tiết - Môi trường & Đời sống
노점상의 음료수 메뉴판. 한 잔에 한화 약 350원 - 650원 정도로 무척 저렴하다. 사진 유튜브 캡처 - 작성자 : VTC14 - Thời tiết - Môi trường & Đời sống

베트남 사람들이 노점상을 이용하는 가장 큰 이유는 물론 가격이다. 커피나 주스, 신또(sinh tố:과일 스무디)와 같은 음료를 기준으로 노점에서는 전문 매장의 반도 안 되는 가격에 구입할 수 있고 쌀국수의 경우는 유명 식당과 노점의 가격이 열 배 가까이 차이가 나기도 한다.

매장에서 줄을 설 필요 없이 빠르게 이용이 가능하다는 점도 장점이다. 오토바이에서 내리지 않고도 이용할 수 있는 편리성과 고급 쇼핑몰 내의 상점과 비교해 음식의 질이 그다지 떨어지지 않는 점도 많은 이들이 노점을 찾는 이유로 꼽힌다.

노점 문화와 여성의 사회 진출

베트남 사람들은 베트남의 노점 문화가 여성들의 사회 참여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고 말한다.

우선 베트남에서 행상을 하는 상인들 가운데 상당수를 여성이 차지하고 있다. 이는 노점을 시작할 때 초기 자본금이 많이 필요치 않은 데다 시간을 탄력적으로 이용할 수 있다는 이유로 여성들이 가사 일과 병행할 수 있는 노점상 영업을 선택하기 때문인 것으로 분석된다.

노점 문화가 여성의 사회 참여에 기여하는 다른 측면은 값이 저렴하고 편리한 노점 식당이 여성들을 요리에서 벗어나게 해줬다는 점이다.

호찌민에 거주하는 맞벌이 부부의 경우 하루 세 끼를 모두 매식으로 해결하는 경우가 많은데 그들이 주로 아침 식사를 해결하는 곳이 바로 노점에 차려진 식당이다. 이곳 호찌민에서는 이른 아침에 아이들을 데리고 노점 식당에 앉아 아침 식사를 하는 여성들의 모습을 쉽게 찾아볼 수 있고 또한 여성들이 업무를 마친 후 퇴근길에 가족들의 저녁거리를 구매해가는 모습이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진다. 그들은 시간과 비용, 에너지를 절감하게 해주는 노점이 자신들의 사회생활을 돕고 있다고 말한다.

 

그러나 긍정적인 측면만 있는 것은 아니다. 노점상이 성행할수록 여러 가지 부작용도 함께 발생한다. 상인들에게 보호세 명목으로 돈을 받아 챙긴 일당이 적발되기도 했고 판매하는 음료에 발을 담그고 열을 식히는 상인의 모습이 관광객의 카메라에 포착돼 노점의 위생문제가 대두되기도 했다. 불법으로 영업을 하는 노점상들과 이를 단속하려는 경찰들 사이에서 종종 몸싸움이 벌어지기도 한다.

이러한 문제점들을 해결하기 위해 당국이 고안한 것이 앞서 언급한 퍼 항 좀이다. 쩐 테 투언(Trần Thế Thuận)제 1군 인민위원회 위원장은 퍼 항 좀에 대한 반응이 좋으면 호찌민 시내 다른 지역까지 이를 차츰 늘려나갈 계획이라고 밝혔다. 불법 영업 중인 노점상들을 무조건 철거하는 대신 합법적인 형태로 변경하여 노점으로 인해 불거지고 있는 여러 문제들을 바로 잡겠다는 목표인데 서민들의 생활과 노점 문화를 분리하기 어렵다는 인식이 엿보인다.

여러 문제점들을 안고 있지만 노점은 현재 서민들의 생존 수단이자 생활의 한 부분으로 깊숙하게 자리 잡았다.

최근 들어 건강과 위생에 관한 관심이 생기며 길거리 노점에도 많은 변화가 생기고 있다. 손 세정제를 구비한 노점들이 등장하고 일회용 식기를 구비한 곳들도 눈에 띈다. 무게를 속이지 않겠다며 여러 개의 저울을 준비해놓은 과일 행상도 있다.

노점의 필요성을 인정하고 문제점을 개선하려는 호찌민시의 제도적 뒷받침과 상인들의 노력이 점차 베트남의 노점 문화에 긍정적인 변화를 가져다주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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