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현애 오월어머니집 이사장

여성 민주화 운동의 기지

광주 ‘녹두서점’ 이끌어

전교조·시의원 활동도

숨겨졌던 성폭력 문제

제대로 규명돼야

 

정현애 오월어머니집 이사장 ⓒ오월어머니집
정현애 오월어머니집 이사장 ⓒ오월어머니집

매년 5월이면 광주시민들은 지독한 ‘오월 앓이’를 한다. 광주트라우마센터의 2017년 설문조사 결과, 응답자의 72.3%가 ‘오월이 되면 무언가 불안하고 우울하다’고 답했다. 38년 전 겪은 분노와 아픔, 소외감은 가슴속 한으로 남았다. 정현애(66) 오월어머니집 이사장도 그렇다. 5·18민주화운동 당시 남편과 여동생, 시누이 등 가족 5명이 구속됐다. 광주항쟁 지도부 여성대표였던 정 이사장 역시 구치소에 수감되며 고초를 겪어야 했고, 무기징역을 선고받은 남편(김상윤 윤상원열사 기념사업회 이사장)과 동료들을 위해 석방운동을 펼쳤다. 오월어머니집의 출발도 구속자 석방 운동을 하던 가족모임이다. 정 이사장은 “오월어머니집은 자녀와 남편, 가족이 희생당한 여성들이 위로받고 편안한 마음으로 지낼 수 있는 쉼터이자 가족들의 죽음이 헛되지 않도록 민주, 인권, 평화를 뜻하는 ‘오월정신’을 계승하고 전파하는데 앞장서고 있다”고 설명했다. 역사교실을 열고 세계민주화와 근현대사를 배우는 시간도 마련하고 있다. 현재 오월어머니집은 100여명의 여성들이 참여하고 있다.

중학교 교사였던 정 이사장은 전교조 활동으로 해직당한 후 2002년 광주시의원으로 활약했다. 시민사회 활동만으로는 5·18 문제가 제대로 해결되지 않자 법제도를 바꿔야 한다는 생각에 직접 정치에 뛰어든 것이다. 교육, 여성, 5·18 이슈를 중심으로 적극 활동했던 그는 다시 사회운동가로서 ‘현장’으로 돌아왔다.

특히 5·18 민주화운동의 기지 역할을 했던 ‘녹두서점’ 주인으로도 유명하다. 그는 낮에는 중학교 교사로 역사를 가르치고, 밤에는 광주의 진실을 알리기 위해 회보를 만들고 상황일지를 정리하고 민주화운동가들을 지원했다. 녹두서점은 특히 민주여성단체 ‘송백회’를 중심으로 한 여성 민주화 운동의 기지 역할을 했다.

광주 출신인 고정희 시인은 『광주민중항쟁과 여성의 역할』에서 “녹두서점은 청년운동권의 논의 구조가 모아지는 장소였고 대부분의 광주 민주여성 세력들이 대거 집결해 있는 장소”이며, “전남 구속청년협의회의 모임터였으며 각종의 독서그룹을 통하여 학생운동 인자들을 배출시켰고 다른 지역의 다양한 정보통로를 교통정리하는 역할을 수행했다”고 썼다. 그러면서 “녹두서점의 실제적인 주인이요 송백회 총무를 맡고 있던, 정현애는 광주민주청년 운동권의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는 문지기였다”고 설명했다.

정 이사장은 당시 여성들의 역할에 대해 “당시 예비검속으로 연행된 선배와 동료들의 아내들이 녹두서점에 모여들면서 여성들이 구속자 석방운동에 나서게 됐다”며 “정보 수집부터 물품 공급, 가두방송, 취사활동, 시체를 염하는 일까지 여성들은 다방면에서 적극적으로 활약했다”고 회상했다.

당시 활동한 50여명의 여성들은 광산경찰서 유치장에 끌려가 고문을 겪었다. 정 이사장은 그곳에서 당시 전남도청에서 안내방송을 맡았던 김선옥씨를 만났다. 김씨는 최근 당시 수사관에게 성폭행을 당했다고 38년 만에 밝혔다. 김씨의 증언 이후 5·18 민주화운동 당시 계엄군과 수사관에 의해 자행된 성폭력과 성고문에 대한 고발이 잇따르고 있다. 정 이사장은 “김씨와 나는 유치장에 마지막까지 남았고, 같은 날 석방됐지만, 성폭력 피해 사실을 눈치채지 못했다. 이번 증언을 통해 알게 돼 놀라고 미안했다”고 말했다. 그는 석방 이후 구속자 석방 운동에 집중하느라 또 다른 피해를 입은 여성들을 돌아보지 못했다고 했다. 그러면서 “그런 아픔이 있었다는 것을 몰랐다는 사실에 미안하고 마음이 무겁다”며 죄책감을 드러냈다. 오는 9월 특별법을 계기로 출범하는 5·18 민주화운동 진상규명위원회에 그동안 쉬쉬하며 드러나지 못했던 성폭력 문제도 제대로 포함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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