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읽기] 근로시간 규제와 성평등
[세상읽기] 근로시간 규제와 성평등
  • 윤자영 충남대 경제학과 교수
  • 승인 2018.05.15 09:31
  • 수정 2018-05-20 10:2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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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 노동시간 6시간으로 줄여 

노동-돌봄-여가의 시간 배분으로

남성 생계부양자 모델 넘어서야 

 

 

윤자영 충남대 경제학과 교수
윤자영 충남대 경제학과 교수
자본주의 사회에서 시간은 곧 돈이다. 안정된 삶을 유지하기 위해 필요한 돈을 벌기 위한 시간 이상으로 지나치게 많은 시간을 시장에 쏟아 붓는다. 돈이 되지 못한 시간을 많이 갖고 있는 자에게는 ‘잉여’ 딱지를 붙인다. 누구는 너무 오래 일하고 누구는 너무 적게 일하는, 과로와 일중독, 빈곤과 사회적 배제가 공존하는 사회다. 희소한 자원인 시간인 모든 사람에게 24시간이 주어졌다는 점에서 공평하지만, 권력을 가진 집단과 그렇지 못한 집단의 관계에서 가장 불평등하게 배분되는 것이 시간이기도 하다.

얼마 전 근로시간과 관련 근로기준법 개정안이 국회 논의 시작 5년 만에 통과됐다. 자본-노동 관계를 지배해 오던 불평등한 시간 배분을 둘러싼 투쟁의 결과이자 또 다른 시작이다. 주 7일을 모두 근로일로 정의하기로 합의해 주당 법정 근로시간을 68시간에서 최대 52시간으로 단축했다. 공무원과 공공기관 직원들에게만 적용되던 법정공휴일 유급 휴가를 민간 근로자에게도 확대하기로 했다. 사실상 무제한 근로를 허용했던 ‘특례업종’은 운송업과 보건업만 남겨두었다. 시간 배분에서 우세한 지위를 놓치지 않으려는 자본은 탄력근무제를 요구하고 있다. 일거리가 집중되는 시기에 일정 기간 내에서 근로시간을 자유롭게 조정할 수 있는 탄력근무 기간을 확대해 달라는 것이다.

자본-노동 간의 시간 배분에 관한 법적 규제는 일반적으로 세 가지 형태를 취한다. 여성, 아동과 같은 특정 근로자 집단에 대한 보호를 목적으로 하는 법적 규제, 주당 근로시간, 휴식, 휴가에 관해 제한을 두어 근로시간의 표준을 설정하는 법적 규제, 그리고 시간제나 호출형 근로와 같이 표준적인 근로시간에서 벗어난 새로운 고용형태에 대한 법적 규제가 그것이다.

첫 번째 형태는 산업화 시기 공장 여성 근로자를 장시간 근로에서 보호하기 위해 영국에서 처음 도입됐다. 두 번째 유형의 근로시간 규제는 2차 대전 이후 OECD 가입 국가들을 중심으로 보편화됐다. 포디즘적 생산관계가 지배적인 시대에 정규직 중심의 고용 관계에서 주당 40시간이라는 근로시간 표준은 남성생계부양자에게 제공되던 가족 임금과 사회권의 기초를 제공했다. 이러한 규제는 근로자의 건강 및 산업 안전을 위해서, 임금 노동을 제외한 다른 노동, 즉 가사노동을 위한 시간은 존재하지 않으며 근로자에게 오직 충분한 ‘여가’가 필요하다는 것을 부분적으로 수용한 것이다. 즉 남성 생계부양자와 가사노동을 하며 경제적으로 의존하는 아내가 있는 가구경제 모델을 기반으로 한 것이다. 따라서 남성생계부양자 모델을 근간으로 한 근로시간 모델에 여성을 끼워 넣는 ‘일가정 양립’ 모델이 오늘날 남녀 모두로부터 노동 밖의 여유로운 삶을 박탈한 것은 불가피한 결과이다.

듀크대학교 여성학 교수인 케이시 윅스는 저서 『우리는 왜 이렇게 오래, 열심히 일하는가?』에서 페미니스트는 단순히 더 많이 일할 수 있게 혹은 더 나은 일을 할 수 있게 해 달라고만 요구할 것이 아니라, 더 적게 일할 수도 있도록 요구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페미니즘은 노동이 신비스럽고 도덕적인 것이라는, 자본의 확장에 봉사하는 노동윤리를 재생산하며 여성이 임금노동에 동등하게 접근할 권리를 추구했다. 여성이 노동시장에 참여할 기회와 권리를 위해 싸우는 것은 중요하지만 페미니즘이 임금 노동을 이상화하는 것을 비판적으로 살펴야 한다고 강조한다. 페미니즘이 택한 두 번째 전략인 살아가는 데 반드시 필요한 가사와 돌봄 노동의 기치를 재고하면서 젠더 간에 보다 공평하게 분배되도록 하는 일도 중요한 기획임에 틀림없지만, 임금 노동에 대한 지배 담론에 이의를 제기하지 못했다는 점에서 마찬가지로 한계가 있다고 지적한다. 그는 노동윤리가 설파하는 노동신화에 기대지 않으면서 가사와 돌봄노동이 폄훼되고 주변화되는 것에 맞서기 위해서, 노동 바깥에서의 삶을 누리기 위한 시간을 더 많이 만들어내기 위해 싸워야 한다고 주장한다.

근로시간 관련 근로기준법 개정은 자본에게서 노동으로 시간을 재분배했다는 점에서 일보 전진이다. 주당 52시간의 근로시간만 제대로 지켜져도 ‘저녁’과 ‘주말’있는 삶을 누릴 수 있을 거라 기대한다. 그러나 성평등을 위해 필요한 다음 일보는 하루 노동시간을 6시간으로 단축해 노동-돌봄-여가의 시간 배분으로 포디즘 시대의 남성 생계부양자 모델을 넘어서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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