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경애의 시골살이] ⑧ 짙어가는 봄에 피는 꽃 이야기
[김경애의 시골살이] ⑧ 짙어가는 봄에 피는 꽃 이야기
  • 김경애 편집위원 / 전 동덕여대 교수
  • 승인 2018.05.15 09:10
  • 수정 2018-05-17 12:32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매화를 시작으로 개나리와 벚꽃과 동백 등 초봄의 꽃들은 혹독했던 겨울의 추위를 견뎌내고 피어나서, 그 아름다움에 대한 경탄과 함께 짠한 마음이 더해진다. 이른 봄 피는 꽃들이 경이롭게 피었다 사라질 즈음에는 또 다른 예쁜 꽃들이 피기 시작한다. 따뜻한 봄에 피는 꽃들은 왠지 마음 놓고 즐기기만 해도 된다는 허락을 받은 것 같다.

오월이 되면 어느 때보다 화려한 꽃들이 피고 오월이 계절의 여왕으로 등극하는 데는 이 아름다운 꽃들의 몫이 크다. 우리 마당에도 일찍이 개나리, 자목련, 영산홍, 모란이 순서대로 피었다 졌다. 흰 으아리가 피었다 지고 나니 보라색과 자주색의 으아리가 피기 시작했다. 이어 금낭화와 하늘메발톱이 한창 피어있고, 불두화는 흰꽃송이를 가득 달고 있다. 인동초꽃와 꽃창포도 피기 시작했다. 그런데 오월에 피는 꽃 중에 우리 마당을 가장 화려하게 장식하는 꽃은 등나무꽃과 작약과 장미, 그리고 애기 달맞이꽃이다.

 

등나무꽃

내가 재직한 동덕여대에서 벤치를 둘러싼 등나무가 꽃을 제대로 피우는 것을 보지 못했는데, 읍내 화원 앞을 지나다 화분에 화려하게 피어있는 것을 보고 탐나서 값을 물어보니 50만원이라고 했다. 나도 그렇게 키워보겠다는 생각에 그 길로 조그마한 새싹을 얻어 화분에 심었다. 그런데 몇 해가 지나도 꽃은 피지 않았다. 그래서 이 등나무는 꽃을 안 피우는 장애 나무인 줄 알고 버릴까 하다가 마당 한구석에 심었다. 두어 해가 지나고 나니 무럭무럭 자라서 꽃을 피우기 시작했고 작년과 올해는 연보라색 꽃을 한껏 피웠다. 등나무꽃은 향기도 좋고 벌이 좋아해 앵앵거리면서 들끓는다.

요즈음 시골길에는 도로를 내기 위해 깎아낸 산의 옆구리의 민낯을 가리려고 등나무를 심어놓아 차창 밖으로 보이는 보라색 꽃이 예쁘다. 서울 정동의 미국대사관저 담에도 등나무 꽃이 아름답게 드리워져 있었다. 크로아티아에서 헝가리로 가는 기차의 차창 밖을 무심히 쳐다보고 있는데 노란 유채꽃밭을 지나 헝가리의 시골 마을이 나타나기 시작하자 집마다 울타리에 하얀 싸리꽃과 함께 등나무가 꽃을 주렁주렁 매달고 울타리를 만들고 있었다. 나도 여기에 자극받아 우리 집 대문 위에 등나무 꽃이 주렁주렁 달린 것을 보겠다는 희망으로 우리 마당의 등나무가 낳은 묘목을 옮겨 심고 들여다보고 있다.

 

작약 ⓒ김경애 편집위원
작약 ⓒ김경애 편집위원

작약

이맘때가 되면 피는 작약은 디지털리스와 함께 ‘타샤의 정원’의 시그니처 꽃으로, 작약이 피어있는 집 전경이 타샤의 정원의 대표 사진이다. 작약의 아름다움을 생각하면 타샤가 자신의 정원의 시그니처 꽃으로 작약을 삼은 것은 당연한 것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우리 집에 있는 분홍색 작약은 남편이 어릴 때부터 있었다고 한다. 분홍색 작약이라고 했지만 피는 정도에 따라 색깔이 달라지는데 봉우리일 때에는 진한 분홍색이고 활짝 피었을 때 속 꽃잎은 흰색으로 분홍색이 함께 어우러져 있다. 작약이 활짝 피었을 때 보고 있자면 프랑스 귀족 여성들이 입었던 드레스의 색깔과 흡사하다는 생각이 든다.

나는 흰 작약을 작년 5월 파리에 여행 가서 처음 봤다. 중동 계통의 소녀가 꽃다발이 잘 안 팔렸는지, 시들어버릴 꽃 때문인지 걱정스러운 얼굴로 작약 꽃다발을 사라고 나에게 재촉했다. 한국으로 돌아올 날이 며칠 남지 않았고 또 나는 꽃을 꺾어 화병에 꽂는 것을 좋아하지 않아 주저하다 흰 작약 꽃다발을 하나 샀다. 흰 작약 꽃 한 다발도 예뻤지만 활짝 웃는 그 소녀도 흰 작약만큼이나 예뻤다. 작약은 꽃 중에 가장 화려한 꽃이 아닌가 싶지만 그 아름다운 자태가 불과 1주일 정도밖에 지속되지 않는다. 금방 사라지는 그 아름다운 자태는 나를 초조하게 한다.

 

프랑스 파리의 로뎅박물관 내 장미 정원 ⓒ김경애 편집위원
프랑스 파리의 로뎅박물관 내 장미 정원 ⓒ김경애 편집위원

장미

장미는 ‘꽃의 여왕’이라는 말이 식상하지만 그 말이 틀리지는 않는 것 같다. 보통 향기가 있는 꽃은 작거나 외양의 아름다움에서는 조금 떨어지는데, 장미는 향기가 있으면서 꽃 모양도 아름답다. 특히 봉우리로 피어나고 있는 장미는 정말 아름답다. 장미는 영국의 국화이지만 유학시절 영국에서는 별로 보지 못했다. 키르기스스탄을 여행했을 때 척박한 땅 여기저기에 장미를 키워 가꿔 놓은 것을 보고 놀랐다. 검은색 장미를 비롯해 우리나라에서는 볼 수 없는 장미를 호텔의 마당에 가꾸어놓았다. 그런데 가장 아름다운 장미는 5월의 파리에서 볼 수 있지 않았나 싶다. 파리 도심에 여기저기 장미가 아름답게 피어있었다. 특히 로댕박물관의 정원에는 처음 보는 짙은 보라색과 옅은 분홍색 장미를 비롯해 흔히 보지 못한 장미로 아름답게 가꿔져 있어, 장미에 홀려 조각품을 보는 것은 뒷전이 됐다. 그래도 조각품을 둘러보면서 까미유 끌로델의 흔적을 찾아보려고 했으나 찾을 수가 없었다. 페미니스트들이 로댕이 까미유 끌로델을 가혹하게 대한 처사를 비난한 점을 의식한 것은 아닌가하고 의심해보기도 했다. 오히려 내가 장미꽃을 오래 보려고 정작 조각품은 너무 후딱 봐서 그런지도 모르겠다.

우리나라에도 봄이 되면 여기저기 덩굴장미가 아름답게 피어있다. 대부분이 붉은 색이지만 국회의사당 담벼락에는 노란색 덩굴장미가 예쁘다. 우리 집 울타리에도 붉은 덩굴장미만 피어있어서 일산 장미축제 때 같이 간 친구들의 핀잔이 두려워 몰래 분홍색과 흰색 덩굴장미를 사서 낑낑대면서 시골까지 가져와 심었다. 대견하게도 예쁘게 피어나서 해마다 꽃을 피운다. 장미는 손이 많이 가고 잘 죽어서 키우기가 쉽지 않다. 애기달맞이꽃이 장미 밭을 침범해 싹을 틔우면서 미니 장미를 에워싸니 어느새 장미가 죽어버렸다. 장미는 벌레에도 취약해서 때때로 약을 쳐야 한다. 상한 잎은 빨리 제거해야 꽃이 온전하게 핀다. 또 장미는 아래에서부터 줄기가 말라 죽고 그 옆에서 새로운 줄기를 올리는데, 죽은 줄기는 전지 해줘야 한다. 5월 장미의 계절에 장미는 가장 많은 꽃송이를 피우지만 그 이후에도 시든 꽃가지를 잘라주면 11월이 되기까지 몇 송이씩 계속 꽃을 피운다.

그러나 장미꽃이 스스로 완전히 시들어 꽃잎이 떨어지도록 기다려주면 장미는 봉곳한 씨방을 만든다. 사람들은 장미의 아름다운 자태와 향기를 즐기기 위해 시들기만 하면 잘라 버리지만, 실은 장미는 자신의 자손이 번성하도록 씨방을 만들기 위해 있는 힘을 다해 다시 꽃을 피우는 것이다. 살아있는 것은 모두 살아남기 위해 처절하게 노력하고 있다.

 

애기달맞이꽃1 ⓒ김경애 편집위원
애기달맞이꽃1 ⓒ김경애 편집위원

달맞이꽃

우리 마당에는 달맞이꽃 종류로는 노란색 꽃을 피우는 일반적인 달맞이꽃과 핑크색 꽃을 피우는 애기달맞이꽃이 있다. 일반적인 달맞이꽃은 장날에 4000원을 주고 5년 전에 사서 마당 한구석에 심어놓았는데 6월이 되면 노랑꽃을 예쁘게 피우고 번식도 잘해 번져나갔다. 그런데 2~3년째 되던 해에 달맞이꽃은 원래 심었던 곳에는 다 없어지고 그 옆으로 1m 정도 떨어진 곳에 자리를 옮겨 잡은 것을 발견했다. 원래 심었던 곳은 햇볕이 적게 드는 곳이었는데 그 옆에 햇볕이 더 많이 드는 곳으로 어느새 옮겨간 것이다. 자기가 좋아하는 곳으로 찾아가는 이 놀라운 생명의 능력에 감탄했다.

애기달맞이꽃은 달맞이꽃과 이름만 나누었지 꽃 모양은 전혀 다르다. 작은 분홍색 꽃잎에 흰줄이 있고 수술은 십자가 모양이다. 애기달맞이꽃은 구례에서부터 합천까지 이주해 온 것이다. 친구들과 함께 구례에 놀러 갔다가 저녁 먹으러 간 식당 마당에 처음 보는 분홍색 꽃이 흐드러지게 피어 있었는데 애기달맞이꽃이라고 했다. 식당 주인에게 조금만 나눠달라고 부탁했더니, 주인은 커다란 삽을 들고나와 마당의 한 부분을 듬뿍 파서 우리에게 나눠줬다. 꽃을 나누어 가진 친구들은 화분에 심고 모두 아파트 베란다에서도 꽃이 잘 피고 있다고 서로 사진을 공유하면서 좋아했다. 그러나 피어있던 꽃이 지고난 후에는 다시는 꽃송이가 맺지 않았다. 애석하게도 모두 죽어버린 것이다. 햇살과 물과 영양 많은 흙에서도 살아남지 못했다. 애기달맞이꽃은 바람이 필요했던 것이었다. 바람이 있어야 피는 꽃들이 의외로 많은데 애기 달맞이꽃도 그런 꽃이었다. 나는 얻은 꽃 일부를 바람이 부는 우리 마당에 가져다 심었다. 그 꽃이 살아서 5월이 되면 분홍색 꽃을 흐드러지게 피운다. 번식도 잘해서 봄이 되면 여기저기 올라오는 싹을 캐서 나눠주기도 한다. 구례에서 함께 꽃을 얻어 나눠 가졌으나 모두 죽인 친구들에게 빠짐없이 그때 그 꽃이 살아있다는 소식을 전한다. 꽃이 있어 행복하게 짙어가는 봄이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 서울 서대문구 충정로 50 (3가 222번지) 골든브릿지빌딩 1층, 9층
  • 대표전화 : 02-318-9300
  • 청소년보호책임자 : 신준철
  • 제호 : (주)여성신문사
  • 사업자등록번호 : 214-81-03304
  • 대표이사 : 김효선
  • 발행·편집인 : 김효선
  • 여성신문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 2018 여성신문. All rights reserved. mail to admin@womennews.co.kr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