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사회에서 가족은 결혼을 통해 결합한 이성 부모와 자녀로 구성된 가족만을 ‘정상가족’이라는 틀에 가둬왔습니다. 그러나 언제나 가족(the family)은 가족들(families)로 존재해 왔습니다. 한부모 가족, 동성애 가족, 다문화 가족, 1인 가족 등 ‘정상가족’의 틀을 넘어 다양한 형태로 우리 이웃에 존재하는 ‘가족들’을 소개합니다.

 

[인터뷰] 레즈비언 부부 노유다·나낮잠 출판사 ‘움직씨’ 공동대표

여성 퀴어 사진동호회서 만나 연인  

2008년 동반자로서 평생 약속 

10년간 함께 살아온 레즈비언 부부

“내 옆에서 같이 울어주고 

감정 이해해주는 사람

있다는 것 자체가 행복” 

“동성혼 법제화는 

동성 부부들에게 

그 자체로 의미 있어

하루 빨리 변화 이뤄지길”

“많은 이들이 

남 눈치 보지 말고 

자기 행복을 우선으로 

생각하길 바라”

 

나낮잠(왼쪽) 출판사 ‘움직씨’ 대표와 노유다 대표가 서울 연남동 ‘책방서로’ 앞에서 서로를 바라보며 웃고 있다.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나낮잠(왼쪽) 출판사 ‘움직씨’ 대표와 노유다 대표가 서울 연남동 ‘책방서로’ 앞에서 서로를 바라보며 웃고 있다.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가족’. 표준국어대사전에 따르면 가족은 부부를 중심으로 한, 혼인·혈연·입양 등으로 이뤄진 친족 관계에 있는 사람들의 집단 또는 그 구성원을 말한다. 우리 사회는 이를 흔히 ‘정상가족’이라 부른다. 그렇다면 혼인·혈연·입양 외에 다른 관계로 만나 구성된 가족은 ‘비정상가족’인 걸까. 세상에 존재하는 다양한 형태의 가족들은 묻는다. ‘정상’이란 과연 무엇이냐고.

5월 가정의 달을 맞아 다양한 가족을 소개하기 위해 퀴어독립출판사 ‘움직씨’의 공동대표인 노유다(36)·나낮잠(40)씨를 만났다. 오픈리 레즈비언(openly lesbian)인 둘은 부부로 살아온 지 햇수로 10년째다. 2007년 여성 퀴어 사진 동호회에서 만난 둘은 처음부터 대화가 술술 통했다. 문예창작을 전공하고, 펑크록을 즐겨 듣고, 좋아하는 책으로는 『호밀밭의 파수꾼』을 꼽았다. “‘이렇게 코드가 잘 맞으면 큰일 나는 거 아니야?’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잘 맞았다”(노유다 대표)는 둘은 연인이 됐고, 2008년 가을 동반자로서 평생을 함께하기로 약속했다.

 

출판사 ‘움직씨’가 펴낸 『코끼리 가면』과 『펀 홈』 ⓒ출판사 움직씨
출판사 ‘움직씨’가 펴낸 『코끼리 가면』과 『펀 홈』 ⓒ출판사 움직씨

반려자이자 동업자인 둘은 출판사 움직씨를 운영 중이다. 2015년 설립해 올해 3년 됐다. 움직씨 첫 작품은 노 대표가 직접 쓰고 그린 그래픽 메모아(Graphic memoir·그림 자서전) 『코끼리 가면』(2016)이다. 친족성폭력 피해 경험과 생존담을 담았다. 지난해에는 레즈비언 작가 앨리슨 벡델의 자전적 회고록 『펀 홈』을 냈다. 현재는 퀴어 그림책 『첫사랑』을 출간 준비 중이다. 슬로베니아 시인이자 LGBT문학 에디터인 브라네 모제티치 작가가 움직씨에 직접 편지를 보내 출간을 제의하며 한국판 출간 프로젝트가 성사됐다.

인터뷰를 위해 서울 연남동에 있는 ‘책방서로’에서 두 대표를 만났다. 책방 문을 밀고 들어오는 둘에게서 따뜻한 기운이 흘러 넘쳤다. 비슷한 헤어와 패션 스타일, 어깨에 멘 커플 가방이 눈에 들어왔다. 사진 촬영을 하는 내내 어색하면서도 즐거운 듯 둘의 얼굴에는 웃음이 떠나지 않았다. 촬영 후 근처 책방 ‘북스피리언스’로 자리를 옮겨 레즈비언 부부로 살아가는 이들의 이야기를 들었다.

-서로의 배우자가 되기로 결심하게 된 때는 언제인가요. ‘이 사람과 가족으로 살아가야겠다’고 다짐하게 된 계기가 있다면요.

노유다(이하 노): 낮잠과 깊이 있는 대화를 나누다 보니 위로를 받고 건강을 돌보게 됐어요. ‘씩씩하고 건강한 퀴어로 살겠다’는 다짐 때문에 제 마음을 돌보지 못했는데, 낮잠 덕분에 저를 돌아보게 됐고 어린 시절 트라우마에 대한 적극적인 치료 의지도 생겼죠. 요양을 위해 고향인 구미에 내려간 적이 있어요. 한 1년 여간 낮잠과 떨어져 있어야 했죠. 그러다보니 (낮잠에 대한) 제 간절한 마음을 표현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내가 건강해지고, 삶이 원하는 방향으로 흘러가면 나랑 함께 살아줄래?’라고 청혼을 했죠. 그랬더니 낮잠이 ‘몸 건강해지면 서울에서 보자’고 하더라고요. 그런데 그 고백이 함께 살게 된 결정적 계기는 아니에요. 그때 낮잠은 서른 즈음이었고, 저는 스물 예닐곱 정도였죠. 낮잠은 제가 너무 철없게 결혼이나 동거라는 단어를 입 밖에 낸다는 생각을 한 것 같더라고요.(웃음)

나낮잠(이하 나): 책임감이 필요한 일인데 가볍게 생각하고 말하는 것 아닌가 했죠.(웃음) 그런데 유다가 구미에 내려갔을 때 서울이 갑자기 쓸쓸하게 느껴졌고, 친구나 주변사람들이 다 필요 없어지더라고요. 대화가 잘 통하는 사람이 내 곁에 없다는 것만으로도 힘들었어요.

노: 낮잠과 저는 서로 소통하고자 하는 욕구가 있어요. 같은 책을 읽고 밤새워 얘기하기도 하죠. 토론을 시작하면 상반되는 견해도 있는데, 의견이 합치돼가는 과정이 좋았어요. 이렇게 끝없이 대화할 수 있다면 무슨 일이든 함께 의논하면서 살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죠.

-두 분이 함께 지내오시면서 행복했던 순간은 언제인지 궁금합니다.

노: 최근에 부친상을 겪었는데, 제 옆에 낮잠이 있어 정말 든든했습니다. 혼자 아버지의 죽음을 감당해야 했다면 더 오래 아프고 자칫 무너졌겠구나 싶어요. 부부로 살아간다는 것은 이런 의미의 든든함을 느끼게 하는 거구나 생각했죠. 내 옆에서 같이 울어줄 사람이 있고, 내 감정을 이해해줄 수 있는 사람이 있다는 게 행복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나: 저희가 시간에 별로 구애받지 않는 터라 밤에도 산책을 나가곤 해요. 산책하며 이야기 나누는 시간들이 좋아요. 또 저희 어머니가 연로하셔서 제가 책임져야 한다는 부담을 갖고 있는데, 유다가 ‘내가 언니의 고민을 함께 나눠 갖겠다’고 하더라고요. 굉장히 큰 힘이 됐죠.

 

노유다(왼쪽) 대표와 나낮잠 대표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노유다(왼쪽) 대표와 나낮잠 대표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나 대표의 부모님은 노·나 대표의 가장 가까운 지지자다. 둘은 명절에 부모님을 찾아뵙고, 함께 여행을 가기도 한다. 특히 나 대표의 어머니는 그의 커밍아웃도 자연스레 받아들였다.

나: 저희 엄마는 주변 시선보다 사랑이 더 중요하다고 말씀하세요. 유다를 만나고 엄마에게 처음으로 제가 퀴어라는 사실을 밝혔는데, 오히려 안도하셨어요. 엄마는 어릴 때부터 제가 여느 여자 아이들과 다르다고 생각하셨고 제 옆에 동반자가 생긴 것을 함께 기뻐해 주셨죠.

노: 반면 아버지는 생각이 복잡하셨던 것 같아요. 초반에는 저희에게 ‘그래도 결혼은 해야 하지 않겠니?’라는 말도 두어 번 하셨어요. 함께 시간을 보내면서 서서히 저를 가족으로 받아들이신 것 같아요. 이제는 통화도 스스럼없이 하고 집에 안 오면 ‘왜 유다는 안 왔냐?’며 챙기기도 하시죠. 저희한테 고맙다는 표현도 곧잘 해주시고요.

-우리 사회는 여전히 혈연, 결혼, 입양 등으로 이뤄진 가족을 ‘정상가족’이라고 보는 경향이 있는데요. 이로 인해 겪은 불편이 있으신지요.

노: 호명에 대한 불편감이요. 사람들은 저희가 어떤 관계인지 규정짓고 싶어 해요. 머리를 하러가도 ‘자매냐’ ‘얼굴이 닮았다’ ‘가족이냐’고 물어보죠. 모르는 사람한테 레즈비언이고 부부라고 일일이 말할 수 없잖아요. 저희는 커밍아웃하는 레즈비언으로 살아가고 있지만 세상 모든 사람들에게 저희 관계를 말하는 게 부담스러울 때도 있죠. 그래서 깊이 있는 사이가 된 분들에게 자연스럽게 얘기하곤 하는데, 그렇지 않은 분들에게 ‘저희 가족이에요’라고 말하면 단순히 ‘자매구나’라고 받아들이시더라고요.

-법·제도적 혜택을 받지 못한다는 점에서도 불편이 클 것 같습니다.

노: 지금 저희가 회사를 공동으로 운영하고 있는데 법적 권리 관계나 세금 문제 등 부부라면 간단하게 정리될 것들을 저희는 더 복잡하게 생각해야 해요. 은행 업무를 볼 때도 번거롭고요.

나: 병원에서 서로가 서로의 보호자가 될 수 없다는 것에 대한 불안감도 있어요. 주거 안정에도 힘이 들었어요. 신혼부부들은 주택 관련 대출이나 공공주택 공급 등 지원과 혜택을 받는데, 저희는 신혼부부에 해당되지 않아 수년을 기다려 겨우 임대아파트에 들어갈 수 있었죠. 보통의 신혼부부라면 당연히 얻는 것들을 저희는 얻지 못해요.

노: 처음에는 주민등록등본에 ‘동거인’이라 쓰이는 게 재미있고 좋았어요. 그런데 동거인이라는 게 제도적으로나 법적으로 아무런 기능이 없잖아요. 시간이 지날수록 이 단어가 우리를 규정하는 데 부족하다는 생각이 들었죠.

-동성혼이 법제화되지 않더라도 서로가 서로의 법적 보호자가 된다는 것을 인정해주는 법이 마련됐으면 좋겠다는 분들도 많습니다.

노: 진선미 의원이 발의한 생활동반자법의 경우도, 동거 가족이나 새로운 가족 형태에 유의미한 법이라고 생각해요. 그런데 저희처럼 연차가 오래된 동성 부부에게 동성혼 법제화는 그 자체로 매우 상징적인 의미예요. 이러한 제도 변화는 제게 간절한 일이기도 한데, 제 경우 범죄와 2차 가해를 행한 사람들이 가족이고, 제가 사망할 시 1순위 상속자가 제 법적 가족인 그들이 돼요. 제가 죽기 전에 동성 결혼이 법제화되면 배우자인 낮잠에게 유류분 권리와 법적 대항력이 생길 테니 하루 빨리 변화를 만들고 싶죠.

 

노유다(왼쪽) 대표와 나낮잠 대표가 움직씨를 통해 지난해 출간한 『펀 홈』을 보고 있다.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노유다(왼쪽) 대표와 나낮잠 대표가 움직씨를 통해 지난해 출간한 『펀 홈』을 보고 있다.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우리 사회는 동거 가족, 한부모·미혼모가족 등 소위 ‘정상가족’에서 벗어난 형태의 가족을 곱지 않은 시선으로 보는 경향이 여전합니다. 이러한 인식을 변화시키기 위해선 어떤 노력들이 필요할까요.

나: 저는 문화의 힘을 믿어요. 그래서 저희도 『펀 홈』, 『첫사랑』과 같은 종류의 책을 낸 거고요. 다양한 가족들의 이야기가 더 많아지길 바라요. 가장 효과적인 건 방송 매체나 기사 보도를 통해 다양한 가족 형태가 자주 노출되는 것인데, 아직도 터부시하거나 왜곡하는 경향이 있어 안타까워요. 저희도 서로의 상처를 보듬고 결핍을 채워주면서 진지하게 살아가는데, 매체에서는 동성애자를 쾌락만을 추구하거나 욕망의 화신들인 것처럼 묘사하잖아요. 그렇게 만들어진 이미지가 굳어져서 편견을 갖게 하죠.

노: ‘내가 이런 사람이고, 이런 가족의 구성원이고, 이 또한 자연스러운 거야’라고 얘기하는 순간순간들이 모여서 세상이 변화하고 움직이는 거라고 생각해요. ‘말하기’가 정말 중요합니다. 저희도 다양한 형태의 가족을 만나 얘기를 듣는 것만으로 생각할 힘을 얻거든요. ‘우리 삶만 절실한 건 아니야’라는 이해와 성찰의 힘도 생기고요.

나: 그래서 커밍아웃을 열심히 하고 다녀요. 가시화가 굉장히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한국사회가 규정하는 ‘정상가족’에서 벗어나 다양한 형태의 가족을 꾸리고자 하는 분들을 위한 응원의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노: ‘그냥 시작하라’는 말을 드리고 싶어요. 저희가 갖고 있는 최대한의 동력은 사랑, 연대감 그리고 삶을 함께 헤쳐 나갈 수 있다는 정서적 배짱이라고 생각해요. ‘뭔가 충분히 구성되지 않았기 때문에 우리는 불안해’ ‘우리는 아직 가족 형태가 아니야’라는 생각이 뒤집어졌으면 좋겠어요.

나: 남 눈치 보지 말고 자기 행복을 제일 우선으로 생각하길 바랍니다.

-두 분이 부부가 된 지 올해 10년이 됐는데, 10년 후에는 어떤 모습일까요?

나: 그때까지도 출판 일을 함께 하고 있었으면 좋겠어요.

노: 중년을 한창 보내고 있을 때겠군요. 동성혼 법제화도 이뤄지고 저희 같은 성소수자 가족에게도 입양 권리가 생겼으면 합니다. 인공 배아 등 과학 기술이 발달하면 노산이긴 해도 출산을 숙고해볼 거예요. 10년 후엔 반려식물, 반려동물, 또는 아이들로 가족의 범위가 좀 더 늘어나있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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