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에서 22년 동안 일하고 임원이 된 필자가 직장생활을 잘하기 위해 고민하는 여성 직장인들에게 선배로서 직접 현장에서 보고 듣고 경험한 이야기를 들려드립니다. <편집자주>

 

[나도 승진하고 싶어요] ⑦

 

저는 수학을 잘 못 했습니다. 그래서 대학도 문과를 선택해서 갔습니다. 대학 시절에 통계학과 사회조사법 관련하여 몇 개 과목을 수강했는데, 회사 생활 동안 여러 가지 소비자 조사 프로젝트에서 참으로 유용했습니다.

소비자 조사를 해서 통계 데이터를 분석하게 되면, 많은 숫자가 나옵니다. 총 몇 명을 대상으로 조사했고, 설문마다 어떤 결과가 나왔고, 신뢰도가 어떻고, 유의성을 검증할 수 있는 확률이 어떻고 등등. 소수점 몇째 자리까지 숫자가 복잡합니다. 신기하게도 전 통계 데이터를 읽고 기억하는 것은 잘 했습니다.

그런데 회사의 매출과 이익, 비용 등에 관련되는 데이터는 왜 그리 한눈에 잘 안 들어 오던지요? 회사에서는 무슨 일을 하건 간에 ‘돈’이 왔다 갔다 합니다. 기업뿐 아니라 NGO나 공무원 업무에서도 ‘돈’이라는 것은 매우 매우 중요한 요인입니다. 돈을 버는 영업 담당자는 매출을 따져야 하기 때문에 당연히 그렇고, 나머지 부서 업무에서도 비용이 발생하기 때문에 다들 돈에 대한 감각이 필수입니다.

전 회사 입사 초기에, 그런 ‘돈 돌아가는 구조’를 잘 몰랐습니다. 그저 제 업무를 열심히 하면 된다고 생각했지요. 어느 날 프로젝트 기획안을 준비했더니, 제 상사의 결재만이 아니라 지원팀의 합의를 해야 한다고 하더군요. 그래서 제 기획안을 들고 지원팀에 합의를 하러 갔습니다.

“이 프로젝트를 왜 하는가요?”, “비교 견적을 받은 건가요?”, “이런 프로젝트를 하면 회사에 무슨 도움이 되나요?”, “부서의 1년 예산이 지금 얼마 남아 있나요?”, “연초에 확정한 예산 범위에서 실행하는 건가요? 아니면 그 예산과 다르게 별도 집행하는 건가요?”, “프로젝트 추진에 드는 비용을 언제 언제 얼마씩 집행할 건가요?”

지원팀에서 쏟아지는 질문에 저는 당혹스러웠습니다. 제가 프로젝트 기획할 때는 그런 내용을 포함하지 않았습니다. 그저 프로젝트에 어느 정도의 비용이 든다. 정도만 정리해 두었지요. “왜 나한테 이런 것을 추궁하지?”라고 생각했지만, 이것은 모든 직원에게 동일하게 진행되는 일종의 ‘심문’이었습니다. 통계 분석 숫자는 잘 기억하면서 예산이나 회사의 사업 성과에 관련된 숫자는 왜 그리 생소하던지요?

지원팀의 질문에 제대로 답을 하지 못 한 제 기획안은, 당연히 퇴짜를 맞았습니다. 그리고 부서로 돌아와서, 그 답을 채웠습니다. 지원팀 실무자보다 직급이 더 높은 나의 상사가 프로젝트를 승인해도, 예산 실무자가 합의를 해 주지 않으면 프로젝트는 진행할 수 없었습니다. 전 그 이후부터, 나름대로 몇 가지 원칙을 지키려고 노력했습니다.

1. 어떤 일을 하든지, 내가 다니는 조직의 최고경영자 사장님이 내게 이 일을 왜 하는지 질문해도 자신 있게 대답할 수 있도록 프로젝트의 목적이나 기대효과를 명료하게 해야 한다.

2. 모든 프로젝트에는 투입 자원과 결과가 있는데, 투입 자원은 돈과 사람이다. 돈과 사람을 확보해 업무를 진행하지 않으면, 아무리 좋은 아이디어도 실행이 어렵다.

3. 돈과 사람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지원팀과 인사팀의 신뢰를 얻어야 한다.

4. 신뢰를 얻기 위해서는 해당 부서의 눈높이에 맞춰서 그들의 용어로 프로젝트의 의미를 설명하고 입증하도록 노력해야 한다.

5. 마지막으로 “나의 돈이라면 이렇게 쓸 것인가?”를 생각해 본다

그 덕분이었을까요? 회사 생활을 하는 동안 대체로, 지원팀의 합의를 원활하게 받을 수 있었습니다. 나중에 어떤 지원팀장은 “조은정이 하겠다고 하면 너무 따지지 마라. 그 사람은 회삿돈을 자기 돈보다 더 아껴서 효율적으로 쓰고, 꼭 필요하지 않은 프로젝트는 하지 않는 사람이다”라는 말을 했다고 하더군요.

대학에서 마케팅 강의를 하거나, 작은 회사에 재능기부를 하면서 가장 강조하는 점 중의 하나가 바로 “마케팅은 돈을 쓰는 업무라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내가 이 돈을 집행하면 나중에 어떤 성과로 되돌아올 것인지에 대해서 확신과 목표 숫자를 가지고 일을 해야 한다”입니다. 쉽지 않지요. 그러나 그런 생각을 하면 이미 효율과 효과를 따지는 사고를 하게 됩니다.

학생들에게 전공에 더해서 ‘회계에 대한 기본 지식, 숫자에 대한 감각, 엑셀 다루는 스킬’은 꼭 준비하라고 당부합니다. 그래야 회사에서 성과를 생각하면서 일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내가 하는 일이 얼마나 비용을 투입하는 것이고 그로 인해 어떤 성과를 내려고 하는 것인지, 늘 생각하면서 일 할 수 있어야 한답니다.

조은정

서울대학교 가정관리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소비자학 박사 학위를 받은 조은정 박사는 1995년 삼성그룹 소비자문화원에 입사해 22년간 삼성전자 글로벌마케팅 연구소장, 프린팅사업부 마케팅그룹장 등 삼성전자의 마케팅 및 역량향상 업무를 진행했다. 여성신문에서 재능기부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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