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니 리의 소설 『다크 챕터』(한길사, 2017) ⓒ한길사
위니 리의 소설 『다크 챕터』(한길사, 2017) ⓒ한길사

최근 번역, 출간된 위니 리의 소설 『다크 챕터』(한길사)에는 저자 스스로 밝혔듯 자신이 겪은 성폭력의 경험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주인공 비비안은 타이완계 미국인으로 하버드를 졸업한 수재이고, 졸업 후에는 런던에서 영화 제작자로 일하며 바쁜 나날을 보낸다. 또한 여행을 사랑하며 하이킹을 즐기는 활발하고 용감한 여성으로 묘사된다. 그러나 어느 날 하이킹 도중 알 수 없는 한 남자에게 강간을 당하게 되고 그 이후, 삶이 완전히 바뀌는 체험을 한다. 

위니 리는 실제 2008년 벨파스트 힐즈를 하이킹하던 도중 15세 남성에게 성폭행을 당했다고 밝힌 바 있다. 이후 그는 하던 일을 모두 그만두어야 할 정도로 고통을 받았으며 자신의 경험을 『다크 챕터』라는 소설로 쓰기까지 5년의 시간이 걸렸다고 고백했다. 그럼에도 가해자는 법정에서 8년 형을 선고받았으나 4년 만에 출소했다. 

소설 안에는 피해자(위니 리의 말에 의하면 이런 표현은 적절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그에 말에 따르면 생존자라는 표현은 영웅처럼 보이고, 피해자는 힘없는 약자의 이미지로 비칠 가능성이 있다)의 고통스럽고 분노에 찬 목소리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이 소설에선 놀랍게도 가해자 남성의 이야기가 교차 서술되기 때문이다. 

놀랍게도 위니 리는 이 소설을 쓰기 위해 실제 성폭력 가해자들을 취재했다고 한다. 그를 성폭행한 가해자가 ‘아일랜드 유랑민’이었다고 알려지는데, 작가는 그런 사람들을 만나 인터뷰를 하고 그들의 삶을 가까이서 지켜보는 일을 마다하지 않았다. 한 인터뷰에서 작가는 왜 한 사람이 여성을 혐오하게 되는지, 어떻게 성폭행을 저지르게 되는지 알고 싶었다고 말했다. 그것을 알아야만 그런 끔찍한 일이 일어나는 걸 막을 수 있다는 이유에서였다.

소설 속에 등장하는 가해자, 15세 소년의 삶은 순탄하지 않다. 그의 부모는 캐러밴을 타고 다섯 명의 아이들을 데리고 이 도시, 저 도시를 정처 없이 떠돈다. 그의 형은 어린 나이에 또래의 아이들과 함께 절도를 저지르는데 정착민들에게 위협이 된다는 이유로 번번이 관용의 대상에서 제외된다. 가혹하고 냉혹한 처벌은 그를 점점 더 사회의 테두리로 내몰고 15세 소년은 형의 삐뚤어진 가치관을 그대로 답습하게 된다. 그리고 생활이 버거운 부모에게는 이들 형제의 일탈을 막을 힘이 없다.

독자로서는 가해자가 처한 이러한 세세한 상황들을 읽어나가는 게 혼란스럽고 힘든 일일 수 있다. 15세 소년이 마땅히 누려야 할 삶과는 동떨어진 이들의 구차하고 궁색한 형편들이 동정심을 불러오고, 자칫하면 그래, 너도 또 다른 피해자구나, 하는 식으로 가해자 소년의 잘못을 덮어버릴 위험도 존재한다. 그렇지만 소설을 읽다 보면 이 이야기가 가진 힘이 바로 이 지점에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작가의 말에 의하면 이 소설은 철저하게 스스로의 경험을 바탕에 두고 있고, 가해자를 바라보고 서술하는 작가가 바로 피해자인 자기 자신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일련의 취재 과정들이 이 작가에게 얼마나 힘든 일이었을지 짐작하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소설을 쓰면서 작가가 마주해야 했던 감정들을 떠올리기도 어렵긴 마찬가지다. 그러나 한편으로 작가로서, 여성으로서, 한 개인으로서 그가 회피하지 않고 마주했던 그 모든 것들을 상상하면 한 편의 소설을 완성하는 일은 삶의 어떤 순간들을 극복하고 이겨내는 과정들과 크게 다르지 않음을 생각하게 된다.

소설은 허구의 뼈대 위에 세워진 가상의 이야기지만 때로는 현실을 보다 더 현실적으로 투명하게 바라보게 만든다. 『다크 챕터』는 읽고 쓰는 문학적 행위가 나로부터 물리적으로, 심리적으로도 아주 멀리 있는 나 자신과 타인에게 가닿을 수 있는 아주 어려운 도전이자 두려운 시도이고 끈질긴 실천이라는 사실을 새삼 깨우치게 만든다. 우리는 모두 한 사람의 유일한 개인이지만 사회라는 거대한 그물 안에서 밀접하고 복잡하게 연관되어 있다는 사실도 함께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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