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평법 시행 30년, 법은 있지만 작동 않는다
고평법 시행 30년, 법은 있지만 작동 않는다
  • 이하나 기자
  • 승인 2018.05.09 15:49
  • 수정 2018-05-14 10:5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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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8년 남녀고용평등법 시행

고용상 성차별 여전하고

성별임금격차도 세계 1위

직장 성희롱·유리천장 등

해결 과제 산더미

 

지난 3월 열린 ‘신세계그룹&파트너사 채용박람회’에서 구직자들이 채용공고를 살펴보고 있다. 남녀고용평등법이 제정된지 30년이 흐른 지금, 여성들은 과연 안전하고 평등한 일터에서 일하고 있을까.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지난 3월 열린 ‘신세계그룹&파트너사 채용박람회’에서 구직자들이 채용공고를 살펴보고 있다. 남녀고용평등법이 제정된지 30년이 흐른 지금, 여성들은 과연 안전하고 평등한 일터에서 일하고 있을까.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법은 있는데 작동하지 않는다. 남녀고용평등법(‘남녀고용평등과 일·가정 양립 지원에 관한 법률’) 시행 30년의 진단이다. 심각한 여성의 경력단절과 부동의 세계 1위 성별임금격차, 참다못해 터져 나온 직장 내 성폭력 피해자들의 목소리 #미투, 제대로 보호받지 못하는 여성노동자의 건강권까지. 견고한 남성중심 문화가 법의 작동을 막았다. 이제 남녀고용평등법이 작동되는 현실을 만들어가기 위한 진정한 노력이 있어야 한다.

50% 대에서 경활율 정체

우리나라 여성 경제활동참가율은 1982년 43.4%에서 90년대까지 조금씩 늘어 2005년 처음으로 50%를 넘어섰다. 그러나 IMF 경제위기를 겪은 이후 50% 중후반에서 정체 상태다. 지난 3월 한국은행이 발표한 ‘주요국의 여성 경제활동 참여 증가 배경 및 시사점’ 보고서를 보면 한국의 여성 경제활동참가율은 58.4%(2016년 기준)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19개국 중 15위로, 평균치인 63.6%에 미치지 못했다.

노동시장에 뛰어드는 여성들이 절반 이상으로 늘었지만 이들의 노동환경은 그리 녹록치 않다. 한국노동연구원 김복순 전문위원이 3월 펴낸 ‘비정규직 고용과 근로조건’ 보고서에 따르면 2017년 8월 기준 전체 임금근로자 가운데 여성 비정규직 비율은 41.4%로, 남성(24.3%)보다 두 배 가까이 높았다. ‘비정규직의 여성화’ 현상이라고 부를 정도다. 성별 비정규직 비중 격차는 국제금융 위기 이전보다 확대된 것으로 나타났다. 20~24세를 제외하고는 모든 연령층에서 여성 비정규직 비중이 상대적으로 높다.

 

경력단절여성 190만 시대

여성의 낮은 경제활동참가율과 비정규직의 증가는 여성의 경력단절 현상으로 나타났다. 결혼과 임신, 육아를 이유로 회사에 사표를 내는 여성들은 190만6000명에 달한다(2016년 통계청). 이중 30대가 약 100만명에 이른다.

여성의 경력단절은 높은 수준의 성별임금격차로 이어졌다. 한국 남녀의 평균 임금격차는 36.7%(2016년 기준)로 세계 최고 수준으로 OECD가 관련 통계를 작성하기 시작한 2002년 이래 16년째 부동의 1위다. OECD 평균인 15%와 비교해 볼 때 두 배 이상 격차가 벌어진다.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임금격차는 더 벌어진다. 한국노동사회연구소가 통계청이 2017년 발표한 ‘경제활동인구조사 부가조사’를 분석한 결과를 보면, 남성 정규직의 월 평균 급여는 342만원(100%) 였고, 여성 정규직은 242만원(70.6%), 남성 비정규직은 188만원(55.0%), 여성 비정규직은 129만원(37.7%)이었다. 여성 비정규직의 임금은 심지어 2017년 최저임금인 132만원보다 낮다. ‘동일가치 노동의 동일 임금’은 남녀고용평등법(제8조 1항)에 담겨 있지만, 제대로 실현되고 있는지 의문이다.

남녀고용평등법을 시작으로 모성보호 제도와 일·가정 양립 제도는 강화됐다. 여성 노동자에게 출산전후 휴가를 포함해 1년의 육아휴직을 부여하는 내용이 포함됐고, 1995년에는 남성 노동자의 육아휴직이 법에 명시됐다. 배우자 출산휴가, 임신기근로시간 단축, 유연근무제 등도 잇따라 시행되며 ‘워라밸’ 확산의 토대가 됐다.

 

#미투가 터져 나온 이유

‘성희롱’이 처음 남녀고용평등법에 명시된 것은 1999년이다. 1993년 서울대 신교수 성희롱 소송 사건을 계기로 법에 성희롱 관련 조항이 신설됐다. 직장 내 성희롱이 법제화된 지 19년이 지났지만 성희롱이 발생한 뒤 처리과정에서의 2차 피해가 사회적으로 심각한 문제로 제기되고 있다. 성희롱 구제신청에 신속하고 공정하게 조사하지 않는 행위부터 피해자에 대해 근거 없고 악의적인 소문이 돌고, 피해자를 ‘꽃뱀’ 취급하거나, 업무상 불이익과 해고, 집단 따돌림이나 괴롭힘 모두 2차 피해에 해당한다.

직장 내 성희롱 피해자 10명 중 7명은 회사를 떠나고 있다(서울여성노동자회 2016년)는 통계 결과가 보여주듯, 가해자는 남고, 피해자는 떠나는 모순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직장 내 성폭력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시스템이 전혀 작동하고 있지 않다는 방증이다. 성희롱 2차 피해를 구제할 권한을 가진 고용노동부가 적극 나서지 않는 사이 참다 못한 여성들은 자신의 생계와 명예를 걸고 미투(#Metoo)를 외치고 있다. 미투 운동의 기폭제가 된 서지현 검사도 2차 피해에서 예외가 아니다. 서 검사는 자신을 성추행한 안태근 전 법무부 검찰국장으로부터 인사상 불이익을 받은데 이어 피해 사실을 공론화하자 각종 루머와 악플에 시달려야 했다. 안희정 전 충남지사의 성폭력을 폭로한 충남도 전 정무비서 김지은씨는 “거짓 이야기를 유포하지 말아달라”고 호소한데 이어 경찰에 2차 피해에 대한 고발장을 접수하기도 했다.

최근 개정된 남녀고용평등법은 “사업주는 직장 내 성희롱과 관련하여 피해를 입은 근로자 또는 성희롱 피해 발생을 주장하는 근로자에게 해고나 그 밖의 불리한 조치를 하여서는 아니 된다”고 사업주의 책임을 강화했다. 회사에서 자체적으로 사건을 제대로 처리할 수 있으려면 무엇보다 고용노동부의 지도와 감독, 규제가 필수적이다. 그러나 구제 권한을 가진 고용노동부는 직장 내 성희롱 문제에 매우 소극적이라는 비판이 이어지고 있다. 실제로 2013~2016년 노동부는 남녀고용평등법 제14조 2항 위반으로 26건의 사건을 접수했지만 단 2건만 기소했다 일터에서 공공연하게 자행되는 성희롱, 성폭력에 여성들은 행복하지 않다.

 

채용 성차별도 여전

법으로 금지된 채용 시 성차별은 대기업에서 조차 공공연히 벌어지고 있다. KB국민은행은 2015년 상반기 채용과정에서 특별한 이유없이 남성 지원자 100여 명의 서류 전형 점수를 여성보다 높게 준 사실이 폭로됐다. 남성을 채용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점수를 조작한 것이다. KEB하나은행은 심지어 최종합격자 성비를 애초부터 남성 4, 여성 1로 정해놔 여성 지원자의 합격 커트라인만 48점이나 높게 설정하고 공채를 진행했다는 것이 드러났다. 남녀고용평등법 제7조 1항은 “사업주는 근로자를 모집하거나 채용할 때 남녀를 차별하여서는 아니 된다”고 명시하고 있다. ‘채용 성차별 금지 조항’을 어겨도 처벌은 벌금 500만원으로 솜방망이에 그친다. 채용 면접에서 성차별 소지가 있는 질문을 하거나, 이른바 ‘펜스 룰’을 명분으로 여성을 배제하는 행위도 모두 성차별이지만 모두 법 위반이지만, 면접장과 직장에서 공공연하게 이뤄지고 있는 게 현실이다.

입직 단계에서부터 부딪치는 장벽은 승진을 할수록 더욱 견고해진다. 이코노미스트지가 발표하는 ‘유리천장지수’에서 한국이 OECD 국가에서 꼴찌를 면하지 못하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귀결이다.

박선영 한국여성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남녀고용평등법은 여성관계법 가운데 굉장히 중요한 실체법인데도 불구하고, 현실에서 제대로 작동되지 않고 있다”며 “법이 현장에서 작동되기 위해서는 법이 갖고 있는 미비점을 보완하는 작업과 함께 사업장에서 벌어지는 고용차별 등을 예방하고 노동현장에서 사법경찰 역할을 하는 근로감독관의 역할이 강화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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