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에서 22년 동안 일하고 임원이 된 필자가 직장생활을 잘하기 위해 고민하는 여성 직장인들에게 선배로서 직접 현장에서 보고 듣고 경험한 이야기를 들려드립니다. <편집자주>

[나도 승진하고 싶어요] ⑥

 

1995년 회사에 입사할 때, 제가 회사 내에서 어느 정도의 직급까지 승진하기를 원하는지, 어떤 업무를 하고자 하는지 뚜렷한 목표를 생각해본 적이 없었습니다. 당시에는 누구도 제게 회사에서 승진해 어디까지 올라갈 것인지에 대해 물어 본 사람도 없었습니다. 당시는 승진에서 여성의 누락률이 워낙 높았고, 같은 직급에서도 여성의 급여가 더 낮았기 때문에 그런 욕심을 부리는 것을 감히 생각조차 못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도 듭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제게 “왜 회사에 입사했는가?”를 질문하면 저는 “늙지 않을 거 같아서요”라고 대답하곤 했습니다. 그 의미는 다음과 같습니다.

저는 입사 전에 S그룹의 소비자문화원에서 작은 프로젝트를 수행한 바 있습니다. 제가 논문을 위해 활용했던 조사 데이터를 재분석해 당시 뜨기 시작하던 ‘신세대 소비자의 라이프 스타일’ 분석결과를 도출하는 프로젝트였습니다. 제가 박사학위를 받고서 단독으로 수행한 첫 프로젝트이기도 했습니다. 최종 보고서를 발표하는 자리는, 아침 7시 반이었고, 당시 소비자문화원의 원장님 과 이사님들 몇 분에게 보고를 드렸습니다. 제 보고서는 학교에서 제출하는 보고서처럼 고급 통계 분석결과를 활용했고, 전문적인 학술용어까지 다양하게 구사한 보고서였습니다.

“조 박사, 질문이 있어요!!” 약 30분 정도 보고서에 대해 설명해 드린 제게 당시 원장님이 하신 말씀입니다. 저는 깜짝 놀랐지요. ‘통계 용어도 잘 모르시는 분이 어떻게 전문 통계를 활용한 분석결과에 대해 질문을 한단 말인가? 게다가 이 분은 이미 50을 훌쩍 넘긴 나이 많은 아저씨 아닌가?’라고 저는 생각했습니다. 그 자리를 마치고 나오며 저는 ‘흠… 회사에 입사하면 늘 새로운 것을 경험하고 변화를 강요받으니, 늙지 않겠구나!’라고 생각했습니다. 회사는 끊임없이 혁신하고 변화하니 구성원도 사회에서 도태되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리고 그런 생각 때문에 저는 늘 ‘늙지 않고 새로운 것에 도전하는 삶’을 저의 목표로 삼았나 봅니다.

제가 후배 사원들과 함께 일하는 위치에 오게 된 후, 후배들과 면담을 했습니다. 후배들의 커리어 개발을 위해 “회사에서의 목표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했는데요. 놀랍게도 여성 후배와 남성 후배의 답이 달랐습니다. 여성 후배들은 “조직에 소금과 같은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소금은 모든 음식의 맛을 내는 데 필수적인 것이라서요”, “조직에 도움이 되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등의 대답을 했습니다. 그에 비해 남성 후배들은 “(경영진의 성함을 구체적으로 언급하며) ㅇㅇㅇ 사장과 같은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S전자에 입사했으니, 임원 승진은 한 번 해봐야 하지 않을까요?” 등의 대답을 했습니다.

그 때 저는, 저나 다른 여성 후배들도 회사 내에서 가진 목표가 그리 뚜렷하거나 구체적이지 않았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아마 저를 포함한 여성 후배들은 ‘임원 승진’ 등의 목표를 설정한다는 것이 다소 겸손하지 못하고 오만해 보일까 해서 그랬을 수도 있고요. 또는 임원이나 사장 직급까지 오른 여성 선배를 본 적이 없으니 그랬을 수도 있습니다. 누구도 그런 방식으로 목표를 수립해보라고 알려주지 않아서 그랬을 수도 있지요. 또는 여성들 중에는 가정 내에서 ‘생계를 책임지는 가장’이기 보다는 ‘보조적인 역할’을 하는 사람도 있기 때문에 회사 내에서 승진에 대한 욕심이 남성들보다 낮은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제가 임원 승진을 한 후에는, 역시 남성 선배들로부터 저의 목표에 대해 다음과 같은 조언을 들었습니다. “여기 여성 임원 중에서 사장도 나와야지…”, “해외 법인장도 한 번 해 보고, 최소한 전무까지는 승진해야지!” 등의 조언들이었습니다. 그대로 됐느냐고요? 저는 그대로 하지 못했습니다. 저 자신이 미흡했던 점도 있고, 당시 회사 여건이 충분치 못했던 점도 있습니다. 지금 돌이켜봐도 아쉬운 점이 있지요. 분명한 것은, 목표가 구체적이고 뚜렷할수록 업무에 대한 열정이나 힘든 상황을 견디는 힘은 더 강하다고 생각됩니다. 그래서 특히 여성 후배들에게 “아주 구체적인 커리어 목표를 수립하라, 어디까지 승진할 것인지 구체적인 직급을 설정하라”고 조언합니다. 그래야 하루하루 도전 의식도 더 강해지고, 내가 하는 모든 일을 그 목표에 맞춰서 생각해볼 수 있으니까요.

조은정

서울대학교 가정관리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소비자학 박사 학위를 받은 조은정 박사는 1995년 삼성그룹 소비자문화원에 입사해 22년간 삼성전자 글로벌마케팅 연구소장, 프린팅사업부 마케팅그룹장 등 삼성전자의 마케팅 및 역량향상 업무를 진행했다. 여성신문에서 재능기부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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