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울어진 극장] 오늘은 ‘나를 위한 밥상’을
[기울어진 극장] 오늘은 ‘나를 위한 밥상’을
  • 홍재희 영화감독
  • 승인 2018.05.07 11:10
  • 수정 2018-05-09 17:3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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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리틀 포레스트’의 한 장면 ⓒ메가박스(주)플러스엠
영화 ‘리틀 포레스트’의 한 장면 ⓒ메가박스(주)플러스엠

영화 ‘리틀 포레스트’(2018, 감독 임순례)에서 가장 먼저 눈에 띈 것은 고향 집에 도착한 혜원(김태리)을 기다리는 것이 빈집이라는 것, 혜원이 ‘혼자’라는 사실이었다. 혜원은 서울에서 임용고시를 준비하며 편의점 아르바이트를 하고 편의점 도시락으로 허겁지겁 끼니를 때우는 불안정한 생활을 하는 20대 여성이다. 임용고시에 떨어지고 연애도 안 풀리고 아등바등하던 혜원은 결국 딱 겨울만 버틸 요량으로 고향으로 돌아온다. 그런데 집은 비어있다. 하지만 혜원은 엄마(문소리)가 떠난 빈자리를 의식하지 않는다. 그녀는 불안해하지도 동요하지도 않는다. 혜원은 익숙하게 난로에 불을 지피고 빈집을 청소하고 밥을 지어 먹는다. ‘배가 고파서 돌아왔다’는 혜원은 밥을 하고, 먹는 행위 자체에 온전히 집중한다. 그녀가 요리하는 순간은 마치 명상을 하고 있거나 누구도 대신할 수 없는 자신만의 자아를 찾는 과정으로 보인다.  

한국인이라면 ‘고향’이라는 두 글자에 누구나 머릿속에 떠올리는 상투적인 이미지가 있다. ‘고향의 맛’은 곧 ‘어머니의 손맛’이라는 조미료 광고처럼, 고향은 집 떠난 자식을 반기는 어머니이자 그 어머니가 해주는 밥이다. 그런데 ‘리틀 포레스트’에서 돌아온 자식을 반기는 엄마는 없다. 오히려 엄마는 딸보다 먼저 집을 나간다. 그리고 엄마가 해주는 밥을 찾는 대신 딸은 스스로 밥을 해 먹고 알아서 살림을 한다. ‘리틀 포레스트’에 나오는 두 여성은 기존에 익히 봐왔고 상상했던 여성의 이미지와 같지만 또 아주 많이 다르다. 제 삶의 방향을 찾으러 가겠다는 쪽지 한 장을 달랑 딸에게 남기고 집을 떠난 엄마와 낡고 오래된 집에 홀로 지내면서도 엄마의 부재에 연연하지 않는 혜원이 그러하다. 

버지니아 울프는 저서 『자기만의 방』에서 모든 여성에게 ‘집 안의 천사’라고 불리는 내면의 유령이 있다고 단언했다. 여성들에게 존재하는 내면의 유령은 공감 능력이 뛰어나고 이타적인 여성, 요리와 육아 등 보살핌과 돌봄, 살림이라는 기술에 정통한 여성, 그리하여 매일 남편과 자식, 즉 가족 또는 남을 위해 항상 자신을 희생하는 여성이다. 그러나 천사표 아내, 가족에게 헌신적인 엄마와 며느리, 현모양처라는 ‘집안의 천사’는 남편, 아버지, 곧 남자들을 위한 관념이며 상상적 투사에 불과하다. 보살핌과 돌봄은 사람이 사람답게 살기 위해서라면 누구에게나 요구되는, 삶을 영위하는 필수적 행위지만 현실에서 이 기술은 성별을 구분해 오직 여성이라는 한 성에게만 부과되며 여성만이 담당해야 할 의무이자 역할로 규정된다. 아이러니하게도 사람을 살리는 ‘집안의 천사’는 여성 자신에게만은 천사가 아니라 유령이다. 내면의 유령에 사로잡힌 여성은 정작 자신을 보살피고 살리기 위해 이 기술을 쓰는 데 죄책감을 느낀다. 결과적으로 이 ‘유령’은 여성이 자신을 돌보고 자아를 탐색하고 창조적 활동에 전념하는 것을 가로막는다. 

그러나 혜원은 피폐해진 제 몸과 영혼을 살리기 위해, 그녀 안에서 유령 대신 천사를 일깨운다. 자신을 먹이고 먹이며 밥으로써 자신을 살린다. 어느 소설가는 ‘밥벌이의 지겨움’이라 했지만 ‘밥상 차리기의 지겨움’이 더 끝없는 노동이다. 밥벌이는 언젠가 은퇴할 수 있지만 밥하기에 은퇴란 없다. 살아있다면 죽는 그 날까지 계속해야 한다. 사람을 살리는 밥상이 고역이 된다면 배고픔은 면할지라도 삶의 허기는 결코 채워지지 않는다. 겨울을 지나 봄, 여름, 가을을 거쳐 다시 겨울에 이르기까지 혜원에게는 그 허기를 채우기 위해 자기만의 방이, 자신을 살리는 시간이 필요했다. 

어쩌면 우리 사회에 무수히 많은 또 다른 혜원(들)에게도 자신을 위한 밥상이 절실할 것이다. 여성 역시 남이 아니라 자신을 위해 먹을거리를 준비하고 요리하며 그 순간을 즐기는 기쁨을 충분히 누려야 한다. 자기만의 세계에서 완전함을 느낄 때 밖을 향해 나아갈 힘을 얻는 것이다. 그것이 나를 살리고 남을 살리고 삶을 살리는 길이다. 자기만의 방에서 자라는 작은 나무 한 그루가 무럭무럭 자라나 거대한 숲을 이룰 때까지 그 ‘작은 숲’은 오롯이 자신을 위해 남겨둬야 하지 않을까. 여성에게는 자기만의 방뿐만이 아니라 자기만의 ‘작은 숲’도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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