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원 스쿨미투를 지지하는 시민모임이 3일 서울 도봉구 서울시 북부교육지원청 앞에서 스쿨미투를 지지하는 시민 기자회견을 열었다.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노원 스쿨미투를 지지하는 시민모임이 3일 서울 도봉구 서울시 북부교육지원청 앞에서 스쿨미투를 지지하는 시민 기자회견을 열었다.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서지현 검사의 ‘#미투(#MeToo·나도 말한다)’ 폭로 이후, 여성 정책 관련 총괄부서인 여성가족부뿐 아니라 고용노동부, 교육부, 인사혁신처, 법무부, 국방부, 문화체육관광부, 경찰청 등 정부 부처들은 경쟁적으로 대책을 발표하고 장관이 브리핑을 하고 대책위원회, 자문위원회를 꾸리느라 최근 3개월간 꽤나 분주했다. 

그런데 홍수처럼 쏟아지는 대책들 중 과연 진정성 있는 대책은 얼마나 될까? 지난 10여년 동안 정부 부처가 ‘젠더 주류화’에 나서기는커녕, 젠더업무를 주변부 업무로 취급해 제대로 기능하지 못했다. 부처 내 전담부서도 없는 상태에서 ‘미투’가 폭발하니 알맹이 없는 면피성 대책만 쏟아내는 경우가 많다. 

최근 고용노동부는 성희롱 사건 전담 근로감독관을 배치하겠다고 발표했다. 전담근로감독관 배치도 중요하지만, 핵심적인 문제는 고용노동부 내 성희롱 사건 전담부서가 없다는 것이다. 고용노동부에 여성고용정책과는 있으나, 각 지방노동청의 고용평등과는 2009년 폐지됐다. 일선에서 사업장 내 성희롱 사건에 대해 조사하고 감독하는 주체는 지방노동고용청의 근로감독관이다. 고용평등 전담 근로감독관을 지청에 배치하더라도 전담부서 없이는 속칭 ‘앙꼬 없는 찐빵’이나 마찬가지다. 

성희롱이 발생하는 배경은 다양하지만, 가장 주요한 문제는 성별 권력 구조의 불균형에서 발생하는 일터에서의 성차별·고용차별이다. 직장 내 성희롱을 규율하고 이를 감독하는 법과 제도를 ‘남녀고용평등법’에 먼저 마련한 이유이다. 무엇보다 일터에서 떨려 나지 않을까 하는 노동권·생존권의 문제와, 피해자를 오히려 ‘문제유발자’, ‘내부 고발자’로 바라보는 직장 문화의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가 관건이다. 따라서 ‘남녀고용평등과 일·가정 양립지원에 관한법률’의 소관부처인 고용노동부의 역할이 가장 중요하다. 고용노동부가 ‘미투’ 대책에 대한 진정성을 보이려면 사라졌던 고용평등과를 다시 살리려는 노력을 보여야 할 것이다. 

학교 성희롱의 주무부처인 교육부도 TF를 꾸리고 간담회를 연다고 요란하다. 학교는 직장에 이어 성희롱이 가장 많이 발생하는 영역이다. 인권위는 2012년 ‘대학교 성희롱, 성폭력 실태조사’ 후 2013년 12월 교육부에 “대학 내 성희롱․성폭력 예방 및 피해자 권리구제 강화“ 정책 권고를 했다. 보통 정부 부처에 권고하면 3개월에서 6개월 이내에는 수용여부를 회신한다. 그러나 당시 교육부는 담당자와 담당부서가 없다는 이유로 회신을 미루다가 인권위가 수차례 독촉하고 언론에 공표하겠다고 한 이후 2015년 5월에나 형식적인 답변을 보내왔다. 당시 교육부가 인권위 권고를 충실히 이행했다면 학교 성희롱·성폭력이 조금이나마 줄지 않았을까 안타깝기만 하다. 교육부에는 여성교육담당관실이 있었으나 역시 10여년 전 폐지된 후 성희롱, 성차별 관련 전담부서가 없다. 이러한 과정을 지켜봤기에 현재 내놓는 대책들의 진정성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전담부서가 없기는 인권위도 마찬가지다. 과거에는 성차별팀이 별도 부서로 존재했으나, 2009년 중반 정부의 인권위 강제 축소로 폐지된 후, 인력과 예산이 회복되지 않고 있다. 인권위가 수년간 전담부서 설치를 행정안전부에 요구하고 협의한 결과, 오는 6월 작지만 별도 부서가 신설될 예정이다. 늦었지만 그나마 다행이다. 

혹자는 성희롱 시정 관련 업무가 국가인권위원회, 고용노동부, 여성가족부 등 3개 기관으로 흩어져 있는 것이 문제이니 일원화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요즘처럼 혼란스러울 때는 일원화라는 주장이 뭔가 선명해 보이고 그럴듯해 보일 수도 있다. 그러나 성차별·성희롱 시정기관인 인권위에서 오랫동안 조사관으로 일한 경험으로 볼 때는 현실성 없는 주장이다. 왜냐면 각 기관별 구제수단이나 영역에 차이가 있기 때문에 피해자 입장에서는 구제기관이 많을 경우 선택의 폭이 넓어지므로 일원화보다는 각 기관별 장점을 강화하고 한계를 보완하는 방식이 더 효과적이지 않을까 싶다.

전담부서가 있다고 다는 아니다. 최근 성폭력 예방시스템을 신설해 전담부서를 만든 모 부처의 변화에 대해 놀라워하자 사정을 잘 아는 어느 전문가가 했던 말이 잊히지 않는다. “위에서 지시하면 금방 뚝딱 껍데기는 잘 만들어요. 신나게 만들고는 그것으로 승진도 하죠.” 성인지적 관점을 지닌 전담자가 필수적이지만, 조사 차 면담할 때 전담자가 “요즘 여성차별 없어요. 여성상위 시대잖아요”라고 정색하며 말했던 것을 보면 참으로 갈 길이 멀다. 유례없이 쏟아지고 있는 정부의 미투 대책들, 그 중 알맹이는 얼마나 될지 자꾸 의심이 드는 것은 지나친 우려일까, 합리적 의심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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