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연혁의 북유럽 이야기] #미투와 노벨문학상
[최연혁의 북유럽 이야기] #미투와 노벨문학상
  • 최연혁 스웨덴 린네대 정치학과 교수
  • 승인 2018.05.02 16:55
  • 수정 2018-05-04 05:1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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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투(#MeToo·나도 말한다)’ 운동의 파급력은 상상을 초월한다. 이제 미투는 노벨문학상을 심사하는 스웨덴 학술원(Svenska akademien, 한림원)까지 집어삼켰다.

프랑스계 사진작가 장 클로드 아르노(Jean Claude Arnault)와 스웨덴 학술원의 밀월관계는 오랫동안 지속됐다. 아르노는 스웨덴 문화예술인의 산실인 ‘포럼’이라는 문화센터를 운영해왔다. 그는 스웨덴 학술원 종신회원인 카타리나 프로스텐손(Katarina Frostenson)의 남편이다. 이러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문화센터는 신진작가, 극작가, 그리고 문화예술계 기자 등 신진 문화예술인들이 모여 작품을 발표하고 토론하는 장소가 됐고, 2000년대 스웨덴의 문화명소로 서서히 자리 잡았다. 아르노는 아내의 인맥과 국제적 사진 작품 활동으로 노벨상 수상자, 세계적 저명인사와 어울리는 문화계의 황태자로 떠올랐다. 그는 파리에 있는 학술원 회원들에게만 개방된 아파트에도 자유롭게 기거하며 개인 인맥 형성과 활동에 나섰다. 그가 운영하는 포럼과, 그가 지내던 아파트에서는 2017년 노벨문학상 수상자의 이름이 발표 전부터 오르내리기 시작했다고 한다.

하지만 포럼의 명성은 언론 보도로 허무하게 막을 내렸다. 작년 11월23일자 다겐스 뉘헤테르(Dagens Nyheter) 일간신문은 아르노가 ‘미투’ 운동을 통해 성폭력 가해자로 지목됐다고 보도했다. 12월1일, 고발자 중 5명은 아르노를 성추행과 언어폭력 등으로 경찰에 고발했다. 아르노가 20년 동안 쌓아온 명성과 문화계의 아이콘이라는 지위는 한순간에 물거품이 됐다.

학술원은 이 문제와 관련해 두 가지의 방식으로 접근했다. 학술원이 포럼을 지원하게 된 배경과 내부영향력 행사 의혹, 그리고 학술원 종신회원인 프로스텐손이 노벨상 수상자를 사전에 발설했다는 의혹에 대한 내사에 각각 착수했다. 지난 3월 초 ‘의심의 여지가 있으므로 문화센터를 경찰에 고발하고 프로스텐손도 권고사퇴를 하도록 종용하라’는 조사 결과가 나왔다.

하지만 사무총장을 맡고 있던 사라 다니우스(Sara Danius)는 경찰에 이를 신고하지 않았다. 프로스텐손 권고 사퇴에 대한 내부 학술원 투표에서 잔류 의견이 더 많은 표를 얻자 프로스텐손의 해임도 진행하지 못했다. 4월12일 다니우스 사무총장은 학술원 전체회원들과의 회의를 통해 사임을 통보하고 자리를 박차고 나갔다. 국민들은 이를 전체 학술원 회원들의 무능과 권력 행사로 해석했다. 2015년 올해의 문화인상을 수상하고 파격적인 노벨상만찬장 의상으로 국민의 인기를 누리고 있었던 다니우스의 사퇴에, 국민들은 학술원 앞에서 학술회원 전체를 비판하며 사무총장 복귀를 촉구하는 집회로 힘을 실어줬다.

아르노는 현재 모든 혐의를 부정하고 있다. 며칠 전 그가 스웨덴 왕위 계승권자인 빅토리아 공주를 성추행했다는 의혹이 불거졌다. 이에 아르노는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변호사를 통해 반박하고 있다. 그의 동료들도 이번 의혹이 무고한 사람에게 누명을 씌우는 일이라며 그에게 힘을 실어주고 있다. 아르노의 항변은 프랑스인의 몸에 밴 문화적 가치관과 행태일 뿐 여성비하나 추행은 절대 아니라는 것이다.

과연 누가 진실을 이야기하고 있을까. 조사 결과에 따라 조만간 사법적 판단이 이뤄질 것이다. 하지만 한때 문화계 권력의 정점에 있었던 사람으로서 떳떳하고 당당하게 나와 설명하지 못하고 해외로 도주해 숨어 있는 아르노의 모습은 진위를 떠나 지탄의 대상이 되고 있다. 문화권력의 급속한 몰락을 보면서 ‘절대권력은 절대 부패한다’는 경구를 대하는 듯해 마음 한켠이 더 씁쓸하다.

학술원 회원 7명은 학술원 활동을 중단하겠다고 선언했다. 남아 있는 회원은 전체 18명 중 11명뿐이다. 스웨덴 학술원은 1786년 왕실재단으로 설립된 이래 알프레드 노벨의 유언에 따라 1900년부터 노벨상 심사기관으로 위촉됐고, 이후 제1차대전과 2차대전을 제외하고는 매년 노벨상 수상자를 발표해왔다. 해마다 학술원 문을 열고 나와 수상자를 발표하는 사무총장의 모습이 대중에게 진하게 각인돼 있다. 그러나 학술원의 신뢰와 평판은 이미 바닥에 떨어졌고, 올해는 어쩌면 매년 이어진 전통적 장면을 볼 수 없을 것 같아 더욱 안타깝다.

*외부 필자의 글은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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