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동진·조동익 동생’ 아닌 ‘20년차 싱어송라이터 조동희’의 길
‘조동진·조동익 동생’ 아닌 ‘20년차 싱어송라이터 조동희’의 길
  • 이세아 기자
  • 승인 2018.04.30 15:39
  • 수정 2018-05-08 09:2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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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대에도 왕성하게 활동하는 여성 싱어송라이터는 보기 드물다. 조동희 푸른곰팡이 대표가 여성 음악인들의 ‘롤 모델’로 불리는 이유다. 그가 묵묵히 자신의 길을 만들어온 지 20여 년이 흘렀다.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40대에도 왕성하게 활동하는 여성 싱어송라이터는 보기 드물다. 조동희 푸른곰팡이 대표가 여성 음악인들의 ‘롤 모델’로 불리는 이유다. 그가 묵묵히 자신의 길을 만들어온 지 20여 년이 흘렀다.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인터뷰] 싱어송라이터 조동희

음악 레이블 ‘푸른곰팡이’ 대표

작사가로 데뷔해 20여년간 음악활동

‘아줌마, 애는 누가 봐’ 편견 부딪혀도

여성들 ‘롤 모델’ 응원에 힘냈죠

“우리 시대 이상향·사랑 계속 노래할 것”

사람들은 그를 ‘조동진·조동익 형제의 동생’으로 기억한다. 싱어송라이터 조동희(45) 씨에겐 오래도록 “불편한 꼬리표”였다. ‘포크음악의 전설’ ‘음유시인’으로 불린 오빠들의 무게를 견디면서, 자신만의 노래를 만들고 부른 지 20여 년 됐다. “이젠 불편하지 않아요. 저는 그들과 다른 사람이고, 다른 노래를 하니까요. 저만 자신 있게 잘 하면 되죠.” 겸손하지만 또렷한 어조로 그가 말했다. 

영화학도였던 조씨가 음악인이 된 것은 음악가 집안의 ‘소명’을 따른 당연한 귀결인지도 모른다. 그는 20대 때부터 오빠들이 몸담은 ‘하나음악’에서 작사를 시작했다. 하나음악은 조동진, 조동익, 장필순, 이규호 등 1990년대 언더그라운드 음악을 선도한 음악인들의 공동 기획사다. 조씨는 1993년 김정민 1집의 ‘지난날 그대로’, 조규찬 1집의 ‘조용히 떠나보내’를 시작으로 김장훈 4집의 ‘나를 잊고 살아줘’, 장필순 5집의 ‘나의 외로움이 널 부를 때’ 등의 가사를 썼다. 1998년 자작곡 ‘너는 자꾸’ ‘잠수함’을 발표하며 싱어송라이터로 데뷔했다. 2000년 신윤철의 밴드 ‘원더버드’에 합류해 2집에서 보컬·작사·작곡을 맡았다. 솔로 앨범을 준비하다가 결혼했고, 약 10년간은 육아에 바빠 음악 활동을 접었다. 

2011년 11월 ‘조동희’의 이름을 내건 첫 정규앨범 ‘비둘기’를 발표했다. 지난해 11월 싱글 ‘애틋하다’까지 10여 장의 싱글과 앨범을 발표했다. 나지막한 목소리, 서정적 멜로디, 한 편의 시 같은 가사로 포근한 위안을 전하는 노래를 쓰고 불렀다. tvN 드라마 ‘시그널’(2016), 영화 ‘무현’(2016) 등 여러 TV 프로그램·영화 음악 작업에도 참여했다. 최근 JTBC 예능 ‘효리네 민박’ 삽입곡인 장필순의 ‘소길 3화-집’ 가사도 그가 썼다. 5월엔 자라섬 포크 페스티벌에 출연한다. 지난해 하나음악의 정신을 이은 음악 레이블 ‘푸른곰팡이’의 대표가 됐다. 싱어송라이터 시와는 “동희 언니는 내 ‘롤 모델’이다. 여성 싱어송라이터가 마흔 넘어서도 활발히 활동할 수 있음을 보여주는 드문 사례”라고 했다. 지난 13일 서울 마포구 연남동에서 그를 만났다.

 

지난 13일 서울 마포구 연남동에서 만난 조동희 씨.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지난 13일 서울 마포구 연남동에서 만난 조동희 씨.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 “귀 있는 사람은 듣겠지” 하는 마음으로 노래를 만드셨다고 SNS에 쓰셨습니다.

“생전 조동진이 한 말이에요. ‘귀 있는 사람은 듣는다. 그러니 모든 노래를 정성스럽게 만들어라’ 했죠. 무작정 유행을 좇지 말고, 의지를 갖고 만들어 놓으면 누군가는 들어줄 거라고 생각해요.”

- ‘조동진·조동익 동생’ 꼬리표가 따라붙는 게 지겹지 않나요.

“지겨웠어요. ‘원더버드’ 시절엔 그런 꼬리표가 안 붙는 조건으로 활동했죠. 당시 앨범 ‘땡스투’(앨범 수록 감사 메시지)에도 그들의 이름은 안 썼어요. 이젠 불편하지 않아요. 그게 불편하다고 하는 것 자체가 가식, 위선인 것 같아요. 저는 그들과 다른 사람이고, 다른 노래를 하니까요. 어떻게 보면 행운이고 감사할 일이고, ‘더 잘해야겠다’ 다짐케 하는 채찍이죠. 저만 자신 있게 잘 하면 되죠. 

2015년 세월호 참사는 그의 ‘터닝 포인트’였다. “너무 이상한 세상이라고 생각했다. 힘들고 두려울 때가 많았지만 얘기하지 않을 수 없었다.” 박근혜 정권은 세월호 시국선언에 나선 문화예술인들을 공공연히 검열·지원 배제했다. 조씨도 세월호 추모곡을 발표했다는 이유 등으로 압력을 받았다고 했다. 2015년 음악채널 ‘엠넷’은 그의 세월호 추모곡 ‘작은 리본’ 뮤직비디오가 노란 리본, 팽목항 풍경 등을 담았다는 이유로 ‘심의 보류’했다. 이 비디오는 방송과 음원 사이트에서 차단됐다. 주변 관계자들이 ‘일 다 끊기니 그만하라’ 했지만 그는 꿋꿋이 추모곡을 발표했다. 2015 ‘작은 리본’ 2016 ‘너의 가방’에 이어 올해도 ‘바다로 가는 기차’를 선보였다. 

- 세월호 참사 이후 개인적으로도, 사회적으로도 큰 변화를 겪었다고 하셨습니다.

“세월호를 노래하고, 노무현 전 대통령을 다룬 다큐영화 ‘무현’ 음악 작업을 하며 ‘블랙리스트’의 존재를 실감했어요. 오빠들이 유신 독재 치하에서 사회 비판 메시지를 담은 음악을 만들었고, 아버지도 정치적인 영화를 만들다 돌아가셔서(편집자주 : 조동희 씨의 부친 고 조긍하(1919-1982) 감독은 유신 치하에서 ‘잘 돼 갑니다’ 등 사회비판 영화를 만들어 잦은 검열을 당했다) 검열이라면 치를 떠는데, 요즘 시대에도 정권이 이렇게 예술계를 억압할 수 있구나 하고 분노했죠. 지금은 안심하고 활동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세월호 참사는 아닌 건 아니라고 말할 수 있는 사회를 만들 기회가 됐다고 봐요. 더 나은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라기보다는 내가 받을 불이익을 피하기 위해 고통을 외면하는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2014년 한국에 왔을 때 ‘세월호 유족의 고통 앞에서 중립을 지킬 수 없다’고 말했죠. 우리에겐 그런 자세가 필요하지 않나 싶어요.

노래를 하면서 이 시대를, 이 사회를 간과할 수 없다는 생각도 했어요. 오빠도 ‘지금 네 나이에 부를 수 있는 것들을 건너뛰지 말라’고 했죠. 요즘 세대는 시위할 때 ‘피’ ‘투쟁’이 나오는 운동가 대신 소녀시대 노래를 부르지요. 조동진은 정치적 의미를 중의적·우회적으로 한 편의 시처럼 표현했고요. 저도 그렇게 이 시대의 이상향과 사랑을 노래하고 싶어요.”

 

조동희 씨가 2017년 12월 4일 EBS ‘스페이스 공감’ 공연 무대에서 오빠 고 조동진을 추모하며 노래하고 있다. ⓒEBS 스페이스 공감 홈페이지 캡처/김정인
조동희 씨가 2017년 12월 4일 EBS ‘스페이스 공감’ 공연 무대에서 오빠 고 조동진을 추모하며 노래하고 있다. ⓒEBS 스페이스 공감 홈페이지 캡처/김정인

- 결혼 후 10여 년의 공백기를 갖고 다시 음악 활동을 시작하셨는데요. 

“쉽지 않았죠. 남편은 절 이해하지 못했어요. 엄청 싸웠죠. 주변 남자들도 ‘아줌마, 공연 또 하려고?’ ‘이러고 다니면 애는 누가 봐?’라고 하더군요. 같은 뮤지션들이고, 제 팬이라면서도요. 큰 상처가 됐죠. 마음고생이 많았어요. 그래도 씩씩하게 잘 자라준 아이들, 여러 여성 팬들과 동료 뮤지션들의 응원 덕에 힘을 냈죠.”

최근 음악계의 성폭력을 고발하는 ‘미투(#MeToo·나도 말한다) 운동’에 대해 조씨는 “이제라도 여러 구조적 차별과 폭력이 공론화돼 잘 됐다. 피해자들을 응원한다”고 했다. “제가 20대 때부터 작사가로 활동하면서 보고 듣고 겪은 일을 말하자면 ‘미투’ 100개도 댈 수 있어요. 성폭력 가해자들은 엄벌을 받아야 해요. 미투 운동 이후 ‘앞으론 (남자들이) 여자들에게 함부로 못 하겠구나’라는 믿음이 생긴 것 같아요. ‘여자가 쪽팔려서 그런 걸 말하겠냐?’라는 인식이 만연했는데, 이제 ‘여자들도 말할 수 있다’는 걸 알게 된 거죠.” 

 

조동희 씨가2월28일 서울 구로아트밸리예술극장에서 열린 2018 한국대중음악상 시상식에서 축하 공연을 하고 있다. ⓒ유튜브 영상 캡처
조동희 씨가2월28일 서울 구로아트밸리예술극장에서 열린 2018 한국대중음악상 시상식에서 축하 공연을 하고 있다. ⓒ유튜브 영상 캡처

그는 꾸준히 여러 사회공헌활동을 해왔다. 배우 김혜수 등과 함께 10여년째 비영리단체 (사)호아빈의 리본을 통해 베트남 푸옌성에 학교와 도서관을 짓고 장학금을 전달하고 있다. 푸옌성은 베트남전쟁 때 한국군이 민간인을 집단학살한 지역 중 하나다. “과거사 해결을 위해 민간 차원에서 할 수 있는 일을 해보자”는 마음으로 시작한 후원이다. 지난 2월 직접 푸옌성을 찾아 지역민과 학생들을 만났다. 또 아시아 빈곤 여성을 돕는 비영리단체 (사)아시아위민브릿지 두런두런, 비영리단체 ‘아시안골수기증협회(A3M)’ 등도 후원·공연 등을 통해 지원해왔다. 그는 “남들에게 알리고 싶진 않다. 대단한 것도 아니고.... 그저 조용히 하고자 하는 것을 꾸준히 하는 것뿐”이라고 말했다.

“음반을 내고 나면 모든 게 다 서럽고, 아쉽고, 서운하고, 부끄러워요. 하지만 그런 감정에 사로잡혀 있으면 다음 걸음을 옮길 수 없죠. 내 노래가 10년, 20년 후 어떤 옷을 입고 나타날지도 모르는 일이고요. 더 넓은 시야를 가지려 합니다. 어떻게 죽을 것인가를 자주 생각해요. 음악 하는 사람으로 죽고 싶어요. 흔들리는 배도 멀리서 보면 어지럽지 않지요. 제 주변에 기댈 수 있는, 지표가 되어줄 좋은 이들이 있어서 다행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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