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여성신문
  • 승인 2005.05.12 16:29
  • 수정 2005-05-12 16:2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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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문 제호 바로 밑의 발행인, 편집인, 그리고 주필. 한국에선 30여

년쯤 뒤에나 여성 편집국장이 등장할 것이라는 일부 ‘비관적’ 견

해에 반하는 ‘낭보’가 최근 전해졌다. 장명수 한국일보 이사겸 편

집위원(56)이 지난 1월 1일자로 이사겸 주필로 발령났던 것이다. 이

로써 장 주필은 한국일보 내 10인 논설위원의 사령탑으로 신문 논조

를 대변하게 됐다.



논설위원 사령탑으로 신문논조 대변

한국일보내 기자 총수는 2백68인인데 반해 여기자 수는 19인, 그중

에서도 여성간부진은 장 주필을 빼고 여성생활부 차장대우 1인, 여

론독자부 차장 1인, 여성생활부 부장 1인 등 다섯 손가락으로 헤아

릴 수 있는 소수다.



<’97 한국신문방송연감>은 일간지 편집국의 여성비율을 14%로

밝힌다. 그러나 편집국 내 취재 담당기자만을 떼낸다면 그 수는 1

0% 미만일 것이다. 그나마도 직급이 높아지면 이 수마저 급감한다.

언론인 장명수씨가 주목받는 것은 바로 현재 여성언론인으로서 최고

의 자리에 올랐다는 데서 의미를 지닌다.그도 후배여기자들을 위해

‘이정표’를 세울 수 있다는 데서 우선 의미를 찾는다.



“여성에겐 다소 보수적인 직장에서 일하다보니 선배 여기자가 어떻

게 길을 개척했느냐가 무척 중요하다는 것을 실감하게 됐습니다. 내

가 기자생활을 시작한 35년전엔 여성이 편집국장이나 주필이 되는

것은 상상하기 어려웠지만 이제 다른 언론사들도 여기자가 임원이

되는 것을 생각하게 됐죠. 여기자들은 공통적으로 서로 연결돼 보완

하고 돕기에, 제 주필 발령이 다른 여기자들에게 ‘하나의 문’을

열어놓았다는 점에서 무척 기쁩니다.”

90년대 들어 8%를 웃돌 정도로 여기자 수가 증가했고, 연합통신의

이정희 외신국 고문이 최초의 여성 이사대우가 된 이래 장명수 현

주필이 ‘대우’자를 뗀 정식 이사, 한겨레의 김선주 본부장이 이사

대우로 승진하는 등 여성언론인들도 ‘유리천정’을 뚫고 승진가능

성을 엿보게 됐다. 그러나 그 수는 여전히 극소수다. 한국여기자클럽

이 97년 펴낸 무크지 <여기자>(통권 7호)에 실린 여기자 실태를 보

면, 평기자가 부국장까지 승진하는 데 걸리는 평균 소요기간은 거의

20년에 가깝다. 그러나 “운이 좋았다”라고 표현하는 그마저도 편

집국의 꽃인 편집국장 자리까지는 끝내 못올랐다. 이는 본인 뿐 아

니라 후배여기자들 조차도 여전히 아쉬워하는 부분이다.



남편은 광주실상 처음 알린 외신기자

장 주필은 63년 한국일보에 입사, 문화부장, 편집국차장 등을 거치

며 최은희여기자상, 여성동아대상, 관훈언론상 등을 수상, 명칼럼니

스트로 입지를 굳혀왔다. 그에겐 유난히 ‘최초’라는 수식어가 많

이 따라 붙는다. 우선 이화여대에 신문방송학과가 신설된 해 입학해

1호 졸업생이 됐으며, 16년간 ‘장수’하고 있는 ‘장명수 칼럼’은

최초의 기명칼럼이자 여기자칼럼이다. 장 주필은 자신의 언론인으로

서의 성공을 “여기자들에게 특히 유연했던 신문사 분위기와 사주의

여기자 육성의지”에 돌린다.



장기영 창업주부터 정광모, 이영희 두 여기자를 동시에 세계일주를

기획하게 하는 파격적 조치를 취했고, 82년 당시 장재구 사장(현 회

장)은 그에게 여기자칼럼을 매일 연재하도록 하는 또 한번의 ‘파격

적’ 시도를 감행했다. 이는 미주지역에서 한국일보를 맡았던 장 사

장이 그곳에선 인기있는 생활칼럼이 한국신문들에는 왜 없느냐는 의

문에서 당시 기자들의 글을 면밀히 검토한 데서 시작됐다. 이 시도

는 성공해 우리언론사에 새 장을 열게 됐다. ‘생활칼럼’이란 장르

를 통해 독자들의 공감을 얻는 것은 ‘거창한’ 정치 경제 현안보다

오히려 일상 삶에서 얻어지는 ‘작은’ 교훈들이라는 것을 인식하는

계기가 됐기 때문이다.

“칼럼의 장수비결을 생활 주제로 ‘시민의 양식’을 대변했다는 데

서 찾고 싶습니다. 82년 시작 당시 아이들을 젊은 부모들이 애지중

지, 공공장소에서 막 뛰고 난리치는 것을 그대로 두는 것에 대해 썼

을 때 독자들의 반응이 대단했죠. 이후 고부관계등 독자들 생각엔

‘중요’했지만 신문들은 그냥 ‘넘어갔던’ 문제들을 다뤄 생활의

중요함을 신문지면을 통해 처음 역설했던 것이 호응을 얻었다고 생

각합니다.”



그의 칼럼주제는 ‘생활’에만 한정돼 있지 않다. 정치 경제 현안

도 이를 수용하는 국민의 상식에서 써내려갔다. 이러한 ‘원칙’은

그에게 많은 도움이 됐다. 그는 의외로 정치·사회부 경험을 거치지

않았기에 기자로서의 경험이 국한될 수 밖에 없어 타부서 기자들이

전문영역이 아닌 것을 쓴다고 “위험하다”는 반대의사를 피력하기

도 했다. 그러나 결국 이를 극복할 수 있었다.



장 주필은 자신의 언론인생에 큰 영향을 끼친 사람으로 아버지와

이화여중고 시절 교장이었던 신봉조씨를 꼽는다. 일본유학에서 영화

연극을 전공, 진보적이었던 부친은 그에게 <새벗>, <소년>등의 잡

지를 사다줘 읽고 토론하는 훈련을 자연스럽게 시켰다. 그러나 당선

가능성이 희박한 국회의원에 두번이나 출마, 낙선한 좌절감을 술로

풀어 장 주필은 비판을 가하곤 했다고 회상한다. 부친은 그의 비판

에 결코 야단친 적이 없어 “칼럼을 통해 신랄히 비판해도 남이 저

를 해치지 않을 것이란 기본적 신뢰감을 심어줬죠”라고 회상한다.



또 신봉조 선생은 학생들에게 공부를 잘 하라고 강조하기 보다는

“개성을 찾아 발전시켜라”라고 역설하곤 했다. “신 선생님은 4,5

년 전 작고하시기 직전까지도 제 칼럼이 마음에 드시면 ‘참 글을

잘 썼다’고 칭찬해주실 정도로 열성적으로 제자들을 키우신 분입니

다”라고 장 주필은 새삼 고마워 한다. 광주민주항쟁을 <뉴욕타임스

> 1면에 게재함으로써 그 실상을 서방세계에 처음 알렸던 언론인으

로 유명한 <파이스턴이코노믹 리뷰> 서울지국장인 남편 심재훈씨

(58) 역시 장 주필의 언론인생에서 빼놓을 수 없는 존재. “일단 언

론인이 된 이상 기사를 잘 쓰는 것이 첫째 덕목이다”고 격려하는

남편이 있었기에 같은 길을 걷는 동지로서 서로 자극과 격려를 주고

받을 수 있었다. 심씨는 외신기자로서 다소 ‘정’에 약한 한국의

언론풍토를 가차없이 비판해 종종 장 주필과 격론을 벌이기도 하지

만, 남편의 철저한 직업의식엔 그도 역시 공감을 표한다.



장 주필은 여기자가 살아남는 길은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전문성

확보라고 본다. 반면 정치 사회부 등으로 경력을 쌓고 싶어도 성차

별적 관행으로 여의치 않을 경우엔 “지속적으로 부서이동 희망을

적극 피력하고 아울러 상사에게 그 길로 나가도 잘 할 수 있을 것이

란 신뢰감을 심어주도록 능력을 발휘해야 합니다”라고 선배로서 충

고한다. 근본적으로는 남성위주의 조직일수록 스스로 ‘여성’임을

의식하면 한층 위축되므로 중성적 사고로 업무에 임해야 된다고 권

고한다.



여기자 생존무기는 전문성 확보

지난 8일 정부조직개편위 심의위원에 추가위촉돼 다시 한번 주목을

끈 장 주필은 “여성문제를 역설하는 것이 여성입장을 대변한다기

보다는 편파적 의식을 버리고 양식을 가지고 당면과제를 바라봄으로

써 우리 삶의 질을 높이는 것이라는 관점에서 최선을 다하겠습니

다”라고 밝힌다. 주필이란 자리를 ‘논설위원실 반장’으로 생각한

다는 장 주필은 “바로 오늘도 논설위원실에서 여성부 신설문제가

제기됐는데, 대부분의 위원들이 ‘그럼 남성부도 필요하지 않느

냐?’는 분위기였어요. 저는 지난 대선에서 3당이 일제히 여성부 신

설을 공약으로 내세운 건 그만큼 정치적 의미가 크기때문이 아니냐

고 반문했죠. 후에 담당위원이 기꺼이 여성부 존속 필요성을 사설로

썼을 때 기뻤습니다”는 일화를 소개하기도 한다.



토론 활성화를 목표로 논설위원실을 이끌어가겠다는 장명수 주필은

업무파악이 끝나는 대로 2월 초부터 칼럼연재를 재개할 계획이다.



박이 은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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