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경애의 시골살이] ⑤ 마을에 살고 있는 귀신과 사라진 도깨비
[김경애의 시골살이] ⑤ 마을에 살고 있는 귀신과 사라진 도깨비
  • 김경애 편집위원
  • 승인 2018.04.24 09:49
  • 수정 2018-04-30 09:2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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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깃불이 들어오고 난 후 요즈음 시골에는 도깨비가 어디로 갔는지 사라졌다. 그러나 좋은 귀신과 나쁜 귀신은 아직도 동네 이웃의 마음속에서 같이 살고 있다.

 

노을 지는 경남 합천군 대양면 일대 ⓒ김경애 편집위원
노을 지는 경남 합천군 대양면 일대 ⓒ김경애 편집위원

아촌댁(가명)이 71세의 나이로 1년여 동안의 암 투병 끝에 작년 이맘때 사망했다. 아촌댁의 남편은 내 남편보다 나이는 손 위지만 남편과 어릴 적에 같이 놀던 친구였다. 장례식은 화장한 뒤 살던 집에 잠시 들렀다가 집안의 산소에 묻히는 것으로 진행됐다. 아촌댁의 친인척과 문상객, 동네 이웃들이 모여 오전 10시경에 아침 겸 점심을 먹었다. 저녁에는 남은 육개장과 돼지고기 수육 등으로 동네 이웃들이 함께 식사한다고 해서 나도 가서 먹었다. 날씨가 크게 덥지는 않았으나 오전에 만든 음식을 저녁에 먹어도 괜찮을까 하는 걱정을 하면서 조금 먹었다. 식사 후 수박을 먹고 마을회관에서 이웃과 이런저런 얘기를 하고 있는데 명치 근처가 아프기 시작했다. 다른 사람들은 다 괜찮은데 나만 아팠다. 처음 겪는 일이었다. 갈골댁(가명)이 집으로 달려가 침을 가져와 손가락을 따고 검은 피를 뽑고 등을 쓸어내려 주었다. 그리고는 나보고 집으로 가서 생쌀을 입에 넣고 조금 씹다가 대문 밖으로 세 번 퉤퉤 뱉고, 간장을 조금 마시고 난 다음 보통 자던 방향과 반대로 잠자리에 누워 있으라고 시켰다. 나는 집으로 와서 시키는 대로 했다. 거기다가 내 나름의 처방으로 매실청을 조금 마셨다.

배탈 났는데 귀신 붙었다고 믿는 주민들

이튿날 아침 일찍 갈골댁이 괜찮은지 걱정된다며 찾아왔다. 이웃들은 내가 아플 때는 아무 말 하지 않았지만 나에게 귀신이 붙었다고 생각하고 걱정을 많이 했다고 말했다. 나도 그들이 나에게 귀신이 붙었다고 생각하고 있다는 것을 눈치채고 있었다. 아촌댁과 나는 그리 친한 사이가 아니었다. 금자아지매가 돌아가시고 1년 뒤 제삿날에 그 자녀들이 동네 분들에게 대접한다고 제사음식을 많이 장만해왔는데, 마침 농번기라 일손이 없다고 나에게 찾아와 도와달라고 했다. 그런데 돼지고기와 떡과 과일을 썰어 놓고 접시에 담아내는 것 등 내가 하는 것마다 잘못됐다고 지적하는 것이었다. 내가 가사 일을 잘 못할 것이라는 선입견으로 나를 가르쳐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그 이후로 나는 아촌댁과는 별로 관계를 맺지 않고 살았는데, 평소에 별로 친하게 지내지 않아서 장례식 날 나에게 귀신이 붙은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내가 응급실로 갈까 생각했다고 하니 안금댁(가명)은 응급실에 가도 낫는 병이 아니라고 말했다. 옛날에는 동네마다 점쟁이가 있어 얼굴에 물을 뿌리고 칼을 휘둘러 귀신을 쫓아내는 의식을 하면 나았는데 지금은 점쟁이가 없어 걱정했다고 한다. 예전에는 귀신이 떨어지지 않아 죽기도 해서, 내가 계속 아프면 갈골댁이 내게 그 의식을 하려고 했다는 것이다. 남편도 어렸을 때 할머니가 자신의 얼굴에 물을 뿌리고 칼을 휘두른 적이 있다고 했다.

 

경남 합천군 대양면 ⓒ김경애 편집위원
경남 합천군 대양면 ⓒ김경애 편집위원

점쟁이 ‘천자할매’

이 동네의 점쟁이는 점을 쳐서 그 사람의 미래를 예언해줄 뿐만 아니라 무당의 역할을 했다. 그런데 갈골댁과 안금댁은 각각 옛날에 있었던 우리 동네 점쟁이 덕에 지금까지 살아있다고 말했다. 갈골댁은 결혼해 첫아이를 임신했을 때 시집 쪽 친척이 남편이 때린다면서 자신의 집으로 도망 왔는데, 그 남편이 뒤따라와서 죽인다고 난리를 치고 간 이튿날 딸을 낳았다. 당시는 출산 예정일도 계산할 줄 몰라 언제 아기가 나올지 잘 모르고 있었는데, 그 소동을 겪으면서 충격으로 아이를 낳았다. 그런데 산후조리 과정에서 먹지 못해 거의 죽어가게 됐다. 모두 가망이 없는 것 같다고 포기하다가 동네의 점쟁이인 ‘천자할매’에게 가서 물어보니 여러 가지 약초를 처방해줘 그대로 약초를 달여 먹었더니 감쪽같이 나았다고 했다.

안금댁은 첫 아들을 낳았을 때, 젖이 탱탱 불어오면서 젖몸살이 심해 고통받게 되자 동네 사람들이 남편이 힘차게 빨면 괜찮아진다고 해서 그렇게 했는데 그때부터 젖이 썩어가기 시작했다고 한다. 남편은 당시 동네 정미소에서 일했는데, 정미소의 동료가 죽어서 그 뒤처리를 도맡아 했는데, 아마 그 과정에서 좋지 않은 기운이 붙어서 자신에게 전해진 것 같다고 생각했다. 당시 집에서 아기를 낳았고, 아기 낳자마자 병원 가기가 육체적으로 힘들고 교통편이 불편하고 가난해서 병원에 가볼 엄두도 못 냈다고 한다. 젖은 점점 색깔이 시퍼렇다 못해 검게 변해서 젖에서 피와 고름이 섞여 나왔다. 그런데도 아기에게 따로 먹일 우유가 없어, 아기는 그 젖을 빨았다. 아기는 피와 고름이 섞인 젖을 먹었고, 아기가 젖을 빨면 안금댁은 너무 아파 눈물을 줄줄 흘렸다고 한다. 마지막으로 하는 수 없이 ‘천자할매’에게 의논했더니 읍내 한의원에 가서 야생 짐승의 털을 얻어다가 태워서 바르라는 처방을 받아 그대로 했더니 거짓말처럼 나았다고 한다. 갈골댁과 안금댁는 ‘천자할매’를 생명의 은인으로 여기고 고마운 마음을 간직하고 있다. 예전에는 새해가 되면 한 해 신수를 보기 위해 줄을 서서 기다릴 정도로 점쟁이 할매에게 기대고 살았는데, 이제 우리 동네에 그런 할매가 없다면서 아쉬워했다. 내가 체했을 때 바로 이 ‘천자할매’를 아쉬워한 것이다.

신과 동네 사람을 연결해주고 병을 고쳐주던 점쟁이 할매는 사라졌지만, 해마다 초겨울이 되면 이 마을에 살다가 떠난 사람이 돌아와서 동네 사람들과 함께 이 동네에서 제일 높은 산 꼭대기에 올라가 산신제를 지내는 전통을 지키고 있다. 작년 늦가을에 가뭄이 심해서 산신제에 참석하는 동네 사람에게 신령님께 비와 눈을 내려주십사 빌어달라고 부탁했는데, 거짓말같이 그다음 날에는 비가, 또 그다음 날에는 보기 드물게 눈이 내렸다. 용하시고 선하신 귀신이 살고 있다.

더이상 도깨비는 없다

시골에는 아직 귀신이 사는 것이 분명해진 사건이 일어났다. 얼마 전 이웃마을에서 활달하고 털털한 성격의 60대 여성이 마늘을 매달아 놓는 봉에 목을 매어 자살한 사건이 일어났다. 그 여성은 성격이 좋았을 뿐만 아니라 자식들도 잘됐고 재산도 있고 또 동네에서 봉사활동에도 적극 참여해 자살할 이유가 없다는 것이 중론이었다. 그래서 동네 사람들이 모여 앉아 자살할 이유가 없는 사람이 자살한 것은 귀신이 씌지 않고는 그럴 리가 없다는 것으로 결론 내렸다. 나는 그 여성이 겪었을 남모를 고민에 대한 동정이나 안타까움 없이 귀신에 씌었다는 결론을 내리는 것이 왠지 부당한 생각이 들어 이의를 살짝 제기했지만, 귀신에 씌었다고 결론짓는 것이 돌아가신 분이나 가족들의 아픔을 덜어주고 허물을 덮어주는 것이 아닌가 싶기도 했다. 달걀귀신과 처녀귀신은 사라졌으나 아직 나쁜 귀신이 살아서 무고한 사람을 데려가고 있다.

그런데 더 이상 도깨비는 없다. 예전 시골에는 도깨비에 대한 공포가 안개처럼 가라앉아 있었으나 전기가 들어오자 안개가 걷히듯이 사라졌다. 그래서 누구나 하나쯤 간직하고 있는 도깨비 이야기는 전설로 남게 됐다. 하루는 저녁을 같이 먹고 난 후 갑자기 도깨비 이야기가 나오기 시작했다. 도깨비가 씨름하자 해서 사투를 벌인 끝에 도깨비를 나무에 묶어놓고 왔는데 다음 날 가보니 빗자루를 묶어놓았더라는 이야기는 고전이다. 상촌댁은 자기 남편이 깜깜한 밤에 논두렁을 지나는데 불이 커졌다 작아졌다 해서 도깨비인 줄 알고 무서워서 큰 돌을 주워서 던지려고 하는 순간 보니 이웃 사람이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고 한다. 안금양반은 도깨비에게 홀렸던 자신의 친구 이야기를 했다. 한 친구가 소에게 풀을 먹이러 산에 갔는데, 저녁이 되자 소를 몰고 집으로 와야 하는데 반대 방향의 가시덤불로 피가 나는데도 계속 들어가더라는 것이었다. 같이 있던 친구가 집으로 뛰어가 그 아버지에게 알려서 아버지가 뺨을 때리고 강제로 집으로 데려왔는데 3일 정도 정신을 못 차리고 있었다고 한다.

이 이야기는 도깨비가 있었다는 강력한 증거로 받아들여졌다. 하지만 내 생각에는 영양실조와 과로로 정신 착란이 일어난 것이 아니었나 싶기도 하다. 송 회장은 자신이 겪은 일을 얘기했는데, 전기가 처음 들어왔을 때 멀리서 보니 불빛이 두 개로 보였다 세 개로 보였다 해서 도깨비불인가 하고 공포에 떨면서 가까이 가봤더니 가로등 전기 불빛이 개울물에 비치면서 물이 출렁이는 걸 따라 두 개 또는 세 개의 불빛으로 보였다고 한다. 전깃불이 들어오고 난 후 요즘은 시골의 도깨비가 어디로 갔는지 사라졌다. 그러나 좋은 귀신과 나쁜 귀신은 아직도 동네 이웃의 마음속에서 같이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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