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읽기] 자기만의 책방
[세상읽기] 자기만의 책방
  • 노유다 출판사 ‘움직씨’ 공동대표·작가
  • 승인 2018.04.23 20:51
  • 수정 2018-04-26 18:15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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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방 아스트로북스를 알게 된 건 지난해 가을이었다. 첫 부산퀴어문화축제가 열린 해운대에서 우리는 각자의 북 트렁크를 끌고 만났다. 부산 성소수자를 가시화하는 축제가 혁명처럼 일어난 그 곳에서 퀴어 페미니즘 서적들을 소개하고 싶었다. ‘움직씨’는 두 권의 책을 창작·제작했을 뿐이어서 부산 책방과의 콜라보레이션 부스를 원하고 있었는데, 마침 아스트로북스에서 제안을 받아줘 협업할 수 있었다.

부산에서는 퀴어문화축제 개최에 대한 찬반양론이 팽팽히 대립했기에 상업 공간으로서의 책방은 축제에 참여하는 데 심적 부담도 있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퍼레이드 행렬에 섞여 함께 길을 걸었던 서점인들의 연대를 기억한다. 우리는 아스트로북스의 북 트렁크에 있던 리베카 솔닛의 책 『걷기의 인문학』을 샀다. 페미니스트이자 인권·반핵·환경 운동가인 솔닛은 책의 부제를 ‘가장 철학적이고 예술적이고 혁명적인 인간의 행위에 대하여’라 쓰고, 걷기라는 행위에 세계를 더 나은 방향으로 보내는 일, 즉 진보의 의미를 부여했다.

그로부터 얼마 뒤 서울의 한 책방에서 우리는 다시 만났다. 연남동 책방 ‘북스피리언스’에서 대구의 ‘책방이층’과 부산의 ‘아스트로북스’ 책방지기들이 모였다. 그날 ‘여행하는 책방’이란 기획으로 모인 세 명의 책방지기는 모두 여성이었다. 그들은 경계 없이 서로의 일을 돕는 중이었다. 여성 서점인의 연대라는 거창한 해석을 붙이지 않아도 여성이 다른 여성을 돕고 약자가 다른 약자의 생업을 돕는 현상 앞에서 ‘우리는 연결될수록 강하다’는 페미니즘 구호를 자연스레 떠올렸다.

북스피리언스의 서가에서는 미스터리의 여왕 애거서 크리스티가 쓴 마지막 소설을 샀다. 무한 경쟁을 부추기는 신자유주의 속에서 작은 책방들의 협동은 미스터리에 가까웠다. 그들은 소설 속 명탐정 미스 마플 할머니처럼 평범하지만 비범한 능력의 소유자임에 분명했다. 예컨대 동네 사정을 꿰거나 편견 없이 타자를 대하는 태도 같은 것.

 

앨리슨 벡델이 자신의 책 『펀 홈(Fun Home』에 그린 실비아 비치(오른쪽)와 셰익스피어 앤드 컴퍼니의 모습 ⓒ출판사 움직씨
앨리슨 벡델이 자신의 책 『펀 홈(Fun Home』에 그린 실비아 비치(오른쪽)와 셰익스피어 앤드 컴퍼니의 모습 ⓒ출판사 움직씨

세 작은 책방에 매료된 후로도 여성 책방지기들을 여럿 만났다. 주로 출간도서를 매개로 연결됐고, 한 책방이 다른 책방을 소개하기도 했다. 서울 책방 사춘기, 밤의서점, 고요서사, 분당 좋은날의책방, 대구 커피는책이랑, 차방책방, 더폴락, 구미 책봄, 부산 책방밭개, 카프카의밤, 산복도로북살롱, 커뮤널테이블, 군산 마리서사, 제주 책방무사, 달리책방, 미래책방, 라이킷, 라바북스, 파파사이트 등은 서점 대표가 여성이고, 은평 불광문고, 서촌 서점 림(林), 수원 오피큐알은 기획과 실무를 여성이 맡고 있다. 북카페 두잉(Doing), 달리봄, 펨(femm), 꼴 등 페미니즘 책방까지 더하면 그 수가 상당할 것이다.

1919년 여성 서점인인 실비아 비치는 프랑스 파리의 레프트뱅크에 작은 책방 ‘셰익스피어 앤드 컴퍼니(Shakespeare and Company)’를 열었다. 그의 책방은 온갖 창조적 에너지를 가진 여성 독자들, 문학에 열정을 품은 여성 작가들, 남편과 아이에게 구속 받지 않는 여성 예술가와 출판인들의 공간이 됐다. 역사학자이자 다큐멘터리 감독인 안드레아 와이스의 책 『파리는 여자였다』의 기록 복원에 의하면 여성 모더니스트 주나 반스, 콜레트, 래드클리프 홀, 거트루드 스타인, 화가 로메인 브룩스, 칼럼니스트 재닛 플래너의 세계는 작은 책방을 중심으로 만들어진 여성 사회에서 탄생했다. 이들은 서로 다른 국적과 계급, 경제력과 재능, 섹슈얼리티, 정치적 견해를 갖고도 자립을 위한 자생적 공동체 안에서 우정을 나누고 작품에 경의를 표하면서 오래 친구와 연인, 동료와 후원자로 남았다.

올해는 문화체육관광부가 지정한 ‘책의 해’다. 여성 출판 서점인들의 고군분투에 응답해 출판과 유통에 관한 정부 제도와 정책에 성인지적 관점이 반영되길 바란다. 아울러 ‘자기만의 방’에 대한 버지니아 울프의 1928년 논의를 서점의 공동 공간으로 확장해 “모든 여성에게는 자기만의 책방이 필요하다”는 제안을 덧붙인다. 각종 권력의 지배에 위축되지 않고 온전히 자유로운 생각을 펼칠 수 있는 공간에서 비판할 수 있는 지성과 영향력을 함께 소유하는 일 말이다. 수많은 여성 서점인은 대형 서점이나 인터넷 서점은 할 수 없는 ‘해방구’로서의 가능성을 열어두고, 각자의 책방에서 함께 성장할 여성, 독자이자 친구 혹은 동료가 될 당신을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외부 필자의 글은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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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은진 2018-12-11 00:45:38
좋은 글 정말 잘 읽었습니다. '자기만의 책방'이라는 구절이 '자기만의 방'만큼이나 와닿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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