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여성민우회, ‘백래시’ 182건 분석

차혜령 변호사 “페미니즘 백래시는

당연하게 주어진 권리에 대한 반격”

손희정 “페미니즘은 민주주의 현주소를

보여준다는 점에서 정말 중요”

 

지난  19일 서울 정동 프란치스코 교육회관에서 ‘페미니즘 백래시, 그런 이유로 멈추지 않겠다’를 주제로 라운드테이블이 열렸다. ⓒ한국여성민우회
지난 19일 서울 정동 프란치스코 교육회관에서 ‘페미니즘 백래시, 그런 이유로 멈추지 않겠다’를 주제로 라운드테이블이 열렸다. ⓒ한국여성민우회

여성단체 사회관계망서비스(SNS) 계정을 팔로우했다는 이유로 계약해지를 당하고 대학 내에서 페미니즘 행사라는 이유로 장소 대관을 취소당하는 일이 발생하고 있다. 실제로 한국여성민우회가 19일 ‘페미니즘 백래시, 그런 이유로 멈추지 않겠다’를 주제로 연 라운드테이블에서 제보와 해시태그 ‘#페미니스트라는_이유로_생긴_일’로 모은 총 182건의 페미니즘 백래시(Backlash·반격) 사례를 발표했다.

최진협 한국여성민우회 사무처장은 이날 페미니즘을 이유로 한 노동권을 침해하는 경우는 14건이었다고 밝혔다. 모아진 사례 중 게임업종, 웹툰, 방송 등에 종사하는 경우 개인 SNS에 여성인권 관련 내용을 올리거나 리트윗·좋아요 누르기, 여성단체 SNS 계정 팔로우 등을 했다는 이유로 계약해지나 부서이동 등 일할 권리를 침해받았다. 학교(중고등학교, 대학, 학원)에서 페미니즘을 이유로 한 학습권, 인권 침해사례는 전체 사례 중 55%(101건)를 차지했다. 구체적으로 퇴출, 하위평가 반영 등 가시적 불이익을 비롯해 언어폭력, 공동체 내 낙인으로 인한 고립 등 다양한 형태의 불이익들이 만연했다.

발표자로 나선 웹툰작가 은송은 “웹툰계의 페미니즘 백래시는 현재진행형이며, 만화와 작가의 생각과 맥락을 삭제한 채 ‘메갈’로 묶어 분리시키는 움직임은 사그라들 기미가 없다”고 비판했다. 은송 작가는 “웹툰계에서 백래시가 중단되기 위해서는 가장 먼저 ‘메갈’낙인을 받은 작품과 작가에 대한 플랫폼의 보호가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2016년 이른바 ‘예스컷’ 사태가 종결되기까지 사이버불링을 당하는 작가와 작품을 보호한 웹툰사이트는 한 곳도 없었다는 게 은송 작가의 설명이다.

지난 3월 게임업계에 다시 한 번 사상검증의 사태가 벌어졌을 때 단 한 게임업체만이 ‘불법이 아닌 이상 직원의 개인적인 종교적, 사회적 활동에는 일절 관여하지 않는다’는 입장을 취하며 ‘이번 일로 인한 피해를 회사가 떠안고 가겠다’고 밝혔다. 은송 작가는 “콘텐츠를 판매하는 회사라면 판매하는 콘텐츠와 콘텐츠 생산자를 보호하는 것이 마땅히 수행해야 할 과제”라며 “회사가 추구하는 수익이라는 가치가 ‘옳음’의 가치보다 앞에 와서는 안된다는 자기 성찰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고려대 여학생위원회도 페미니즘 행사라는 이유로 장소 대관을 취소 당하고, 학내 혐오발언 모집을 위한 오픈채팅창에서 일방적인 혐오표현과 욕설을 듣기도 했다고 설명했다.

 

지난  19일 열린 ‘페미니즘 백래시, 그런 이유로 멈추지 않겠다’ 라운드테이블에서 차혜령 공익인권법재단 공감 변호사가 발언하고 있다. ⓒ한국여성민우회
지난 19일 열린 ‘페미니즘 백래시, 그런 이유로 멈추지 않겠다’ 라운드테이블에서 차혜령 공익인권법재단 공감 변호사가 발언하고 있다. ⓒ한국여성민우회

차혜령 공익인권법재단 공감 변호사는 “제보된 사례 중 문제가 된 리트윗, 뱃지 달기 같은 행위는 헌법상 보장되는 기본권의 행사”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차 변호사는 “대부분 제보 사례는 표현의 자유, 행복추권에서 파생되는 '일반적 행동자유권'으로 보호되는 일이며, SNS 게시물 쓰기나 공유하기, 리트윗은 표현의 자유(언론, 출판의 자유), 동아리를 만드는 것은 결사의 자유, 가방에 배지를 다는 것은 일반적 행동자유권의 행사”라며 “현재의 백래시는 당연하게 주어진 권리에 대한 반격”이라고 설명했다.

여성학자 정희진씨는 최근 페미니즘 백래시에 대해 “현재 사태는 새로운 문맹의 시대, 앎의 양극화라는 시대적 맥락이 있다고 본다”며 “모르는 게 오히려 권력이 되어, 역사를 지우는 방식으로 작동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한국사회에서 미러링 전략이 남성사회에서 통용되지 못한 배경으로 여성, 소수자의 언어를 공감하지 않고자 하는 현실이 작동하고 있다는 것에 원인을 짚었다.

문화평론가 손희정씨도 “수전 팔루디의 『백래시』에 의하면 확실하게 여성들의 진전된 권리, 커진 목소리에 대항하는 것을 백래시라고 한다”라고 설명하며 “백래시는 피해자이기 때문에 백래시를 받는 것이 아니라 여성들이 한국사회의 근본적인 변화를 말하고 있기에 오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그는 이어 “우리가 세계를 바꾸기 때문에 백래시를 받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며 “페미니즘은 여성의 문제, 소수자의 문제이기도 하지만 한국의 민주주의 현주소가 어디 있는지를 보여준다는 점에서 정말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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