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동작구의 한 아파트 단지 내 놀이터가 텅 비어 있다. ⓒ강푸름 기자
서울 동작구의 한 아파트 단지 내 놀이터가 텅 비어 있다. ⓒ강푸름 기자

“저기, 저기…!”

23일 오전 9시 반, 어린이집에 등원하던 승호(가명·만1세)가 놀이터를 가리키며 외쳤다. 하루가 멀다 하고 기승을 부리는 미세먼지에 한동안 야외활동을 하지 못한 탓이다. 최근 연일 ‘나쁨’을 기록하는 미세먼지 때문에 아이들의 바깥활동도 자유롭지 못하다. 한창 뛰어놀 나이에 실내 체육활동에 만족해야 하는 아이들을 보는 보육교사들의 마음도 안타까움으로 가득하다.

이날 기자는 미세먼지로 인해 변화한 원아들의 체육활동을 살펴보기 위해 서울 동작구에 있는 한 어린이집을 방문했다. 오전 9시에서 10시까지 자유등원을 한 아이들은 실내 놀이 후 오전 간식을 먹고 11시 즈음 체육활동에 나섰다. 만2세 원아들이 있는 열매반은 비눗방울 놀이를 진행했다. 보육교사가 비눗방울을 불자 아이들은 비눗방울을 잡기 위해 폴짝폴짝 뛰며 이리저리 움직였다. 만1세 아이들이 모인 꽃잎반은 공놀이에 여념 없었다. 아이들은 천으로 된 공을 발로 차거나 선생님과 주고받기 놀이를 했다. 기자가 반에 들어가자 아이들은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쳐다보며 기자 쪽으로 공을 굴리기도 했다.

열매반 담임을 맡고 있는 전성희(49) 교사는 “미세먼지가 심한 날은 교사 재량껏 실내 체육활동 계획을 세운다. 공놀이를 하거나 노래를 틀어놓고 체조를 하게 해 아이들이 에너지를 해소할 수 있도록 한다”며 “저희는 책상을 한 쪽으로 민 후 아이들이 뛰어놀 수 있게 하고 있다”고 했다.

 

열매반 아이들이 실내에서 비눗방울 놀이를 하고 있다. ⓒ강푸름 기자
열매반 아이들이 실내에서 비눗방울 놀이를 하고 있다. ⓒ강푸름 기자

 

꽃잎반 아이들이 실내에서 공놀이를 하고 있다. ⓒ강푸름 기자
꽃잎반 아이들이 실내에서 공놀이를 하고 있다. ⓒ강푸름 기자

아이들은 체육활동을 하며 넘치는 에너지를 분출하는 듯했다. 하지만 공간이 한정된 어린이집 안에서는 활력을 충분히 풀어내기에 부족해보였다. 꽃잎반의 박미정(50) 교사는 “최근에는 미세먼지가 심해 밖에 나가지 못할 때가 많다. 실내에선 아무래도 제약이 있다 보니 야외에서 노는 것만큼 자유롭지 못하다”며 “그럴 때면 아이들이 답답해하는 게 보여 안쓰럽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앞으로 미세먼지가 더 심해질 텐데, 정부나 지자체에서 교육현장에 있는 전문가들의 의견을 반영해 대책을 마련하거나 아이들이 실내에서도 충분한 체육활동을 할 수 있도록 지원해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서울시는 지난해부터 미세먼지 저감대책 중 하나로 시내 모든 어린이집 보육실에 공기청정기를 설치할 수 있도록 지원하고 있다. 지난해에는 어린이집 당 최대 3대였지만, 올해부터는 보육실에 각 1대씩 지원한다. 아울러 미세먼지·초미세먼지 등 7개 실내공기 정보를 통합 제공하는 ‘공기질 간이 측정 시스템’을 서울소재 전체 어린이집에 단계적으로 공급한다는 계획이다. 그러나 관련 대책들은 실내 공기질 개선에는 도움이 되지만, 실질적으로 아이들의 체육 활동을 지원하는 데는 큰 역할을 하지 못한다는 게 현장의 목소리다.

해당 어린이집의 이근배(51) 원장은 “서울시가 어린이집에 해준 건 공기청정기 설치 지원과 올해 초 한 번의 마스크 보급뿐이다. 미세먼지가 약한 날에는 마스크를 쓰고 잠깐이라도 외출할 수 있지만, 심한 날에는 아예 나가지 못한다. 아이들이 아직 어려 미세먼지의 심각성을 모르다보니 답답하면 마스크를 바로 벗어버리기 때문”이라며 “그래서 요즘에는 안에서 체육 활동을 할 수밖에 없다. 공간이 작은 어린이집은 실내 활동도 쉽지 않을 텐데 앞으로가 걱정”이라고 말했다. 

전 교사는 “어린이집은 일일보육계획에 맞춰 교육을 진행하기 때문에 매일 일정한 시간에 실외활동을 한다. 그러다보니 아이들도 특정 시간이 되면 야외활동을 하는 걸 안다. 그 시간에 나가지 않으면 ‘왜 안 나가냐’고 묻거나 ‘밖에 나가자’고 한다”며 “실외에서 충분히 체육활동을 하지 못한 날에는 낮잠 시간에 뒤척일 때도 있다. 그럴 때 보면 안타깝다”고 토로했다. 그러면서 그는 “요즘에는 미세먼지 때문에 놀이터가 텅 빈 날이 많다. 앞으로는 실내 놀이터 비율을 늘이는 게 하나의 방안이 될 수 있지 않을까”라며 “가령 가구 1000명당 놀이터 2개를 설치한다고 한다면, 그중 하나는 실내 놀이터를 짓도록 하면 좋겠다”고 제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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