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일 서울 여의도 전경련회관에서 저출산 극복을 위한 기업의 대응 세미나가 열렸다. 왼쪽부터 김혜숙 유한킴벌리 상무, 김영미 연세대 사회학과 교수, 정재훈 서울여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이의준 한국여성경제인협회 상근부회장, 정지현 SAP코리아 비즈니스 파트너. ⓒ여성신문
23일 서울 여의도 전경련회관에서 저출산 극복을 위한 기업의 대응 세미나가 열렸다. 왼쪽부터 김혜숙 유한킴벌리 상무, 김영미 연세대 사회학과 교수, 정재훈 서울여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이의준 한국여성경제인협회 상근부회장, 정지현 SAP코리아 비즈니스 파트너. ⓒ여성신문

배우자 경력단절·가구소득 감소 걱정 

워라밸 때문에 남성도 출산 기피 

기업들, 이상적·표준 근로자로  

육아·돌봄 하는 ‘부모근로자’ 설정해야 

 

“현재 기업들이 생각하는 이상적 근로자는 개인생활과 가정을 포기하고 일에만 몰입하는 근로자입니다. 기꺼이 야근을 하고, 24시간 카톡으로 연락이 가능한 근로자를 표준적인 근로자로 상정하고 업무를 진행할 때 모성은 방해되고, ‘유자녀 여성’은 주변화 될 수밖에 없습니다. 이 과정에서 임신은 ‘민폐’가 돼 버리죠.”  

23일 오후 서울 여의도 전경련회관에서 ‘저출산 극복을 위한 기업의 대응’을 주제로 세미나가 열렸다. 이날 세미나에선 저출산 극복을 위해 기업의 표준적, 이상적 근로자 유형을 ‘무자녀 남성근로자’에서 ‘육아·돌봄 부모노동자’로 바꿔나가야 한다는 주장이 나왔다. 

이날 ‘여성고용률과 출산율의 관계’를 주제로 발제를 맡은 김영미 연세대 사회학과 교수는 “임신과 육아에 적대적인 기업들의 일하는 문화를 획기적으로 바꾸지 않고선 출산율의 반전을 기대하기 어렵다”고 강조했다.

김 교수는 “워라밸은 현재 청년층 남녀의 출산 결정에 매우 중요한 조건이 되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출산율 반등의 키는 기업이 갖고 있다”며 “저출산의 원인은 동일한 조건의 무자녀여성과 유자녀여성 간에 발견되는 임금 차이인 ‘모성페널티(motherhood penalty)’에만 있지 않다”고 주장했다.

이어 “맞벌이가 아니고는 중산층 생활을 유지할 수 없는 최근 세대 남성들은 배우자의 평생 경력을 당연시하는 태도를 보이며, 배우자의 경력단절과 가구소득의 감소를 야기할 수 있는 자녀 출산에 그다지 적극적이지 않다”며 “직장 내 워라밸은 현재 청년층 남녀의 출산 결정에 매우 중요한 조건이 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김 교수는 특히 기업의 인사관리(HR)가 혁신적으로 확대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기업이 이상적 근로자를 자녀 없는 남성근로자로 설정하는 대신 육아와 돌봄을 하는 부모근로자로 설정하고, 전반적인 업무과정을 부모근로자들이 유능하게 일할 수 있는 방식으로 바꿔야 한다는 것이다.

여성이 대부분인 중소기업의 ‘워라밸’(Work and life balance) 지원을 위한 종합대책 수립의 필요성 또한 제기됐다. 김 교수는 “특히 대부분의 여성이 일하고 있고, 제도적 규제의 사각지대에 있는 중소기업에서 표준 인사관리제도를 개발, 보급하는 경영지원정책이 필요하다”며 “사회 전체적으로 성평등 인사관리 가이드라인을 개발해 중소기업 경영지원정책에 패키지로 제공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유자녀 근로자의 육아기 10년간 ‘시간임금연동근무제’를 도입해야 한다는 의견도 대안으로 제시됐다. 이의준 한국여성경제인협회 부회장은 “우리나라는 육아기 1년만 근로시간 단축을 허용하고 있어서 제도가 현실을 반영하지 못한다”며 “자녀 육아기 동안(10년간)에 부모가 사용할 수 있는 ‘시간임금연동근무제’를 도입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시간임금연동근무제는 근로자가 주 40시간 이내 자율적으로 근로시간을 선택할 수 있고, 사업주는 근로시간을 반영한 적정임금을 산정해 지급하는 제도다. 예를 들어, 이케아는 주당 16시간, 20시간, 25시간, 28시간, 32시간 등으로 탄력근무가 가능하며 보수는 근로자에게 차등 지급하지만 복지는 동일하게 제공하고 있다.

이와 관련 김영미 교수는 “‘성평등 주의 확산’ ‘양극화 해소’ 두 가지 모두를 충족시키지 못 하는 정책”이라며 “가사노동이 여성의 부담으로 가중될 가능성이 크고, 중산층 가구소득 유지에도 바람직하지 않다. 임금 삭감을 동반한 근무제가 아닌 ‘정규직 일자리 기반’의 단축근무 제도가 더욱 바람직하다”고 주장했다.

저출산 대응을 위한 기업의 일·생활 균형 사례로는 SAP 코리아와 유한킴벌리의 예가 소개됐다. 정지현 SAP코리아 HR 비즈니스 파트너는 “지난해 SAP는 여성 임원 비율을 25%까지 늘렸고, 해마다 1%씩 늘려 2020년 30% 달성을 목표로 한다”며 “여직원과 여성임원 비율 목표를 구체적으로 정하고 관리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김혜숙 유한킴벌리 상무는 “유한킴벌리는 스마트오피스 구축 후 야근과 휴일 근무가 거의 사라지고 있다”며 “공통 업무시간인 오전 10시부터 오후 4시를 제외하곤 각자가 생활패턴에 따라 자유롭게 근무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한편 이날 세미나에는 권태신 한국경제연구원 원장,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 부위원장인 김상희 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 ‘일생활균형과 일하는 방식의 혁신 추진을 위한 국회포럼’ 대표인 정춘숙 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도 참석했다.

권태신 원장은 “‘저출산·고령화’ 현상은 우리 경제의 활력을 위협하는 최대 요인”이라며 “오늘 이 자리를 통해 기업들이 저출산의 위험성을 인식하고, 이를 긍정적으로 대응 할 수 있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고 밝혔다.

김상희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청년들이 일하고 싶어 하는 ‘워라밸 기업’을 확산해 일자리의 미스매치를 줄이고 기업 경쟁력을 높일 수 있는 정책 등을 준비하고 있다”고 말했다.

정춘숙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저출산의 주요 원인인 ‘워라밸’과 ‘경력단절’ 문제 모두 기업들과 깊은 관련이 있다”며 “오늘 나온 의견들을 세심히 살피고 도움이 되는 정책을 수립할 수 있도록 국회에서 최선을 다하겠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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